[경제칼럼] 2026 월드컵, 우리가 잃은 것은 경기가 아니라 광고판이다 - 박완기 홍콩법정변호사

[경제칼럼] 2026 월드컵, 우리가 잃은 것은 경기가 아니라 광고판이다 - 박완기 홍콩법정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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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싼 광고는 돈으로 살 수 없다. 그런데 그 광고가 걸리는 무대에는 기업과 방송사가 수조 원을 쏟아붓는다. 정작 참가국들은 돈을 내지 않는다. 출전만으로 오히려 보상을 받는다. 그 자리의 진짜 값어치는 따로 있다. 우리 선수가 세계의 화면 위를 달리는 그 시간, 한국이라는 이름도 함께 달린다. 그 노출은 어떤 광고비로도 환산되지 않는다.


오늘날 가장 값나가는 자원은 금도 기름도 아니다. 관심이다. 기업도 국가도 그 한 줌의 시선을 얻으려 천문학적인 돈을 쓴다. 그런데 월드컵은 그 시선이 한 달 가까이 한곳으로 쏟아지는 유일한 무대다. 단일 종목이 이토록 오래, 이토록 강하게 세계의 눈을 붙잡는 경우는 월드컵이 유일하다.


물론 축구는 광고이기 이전에 스포츠 경기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건 승부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함성이다. 다만 그 순수한 경기가 끝나는 순간 그라운드 밖에서는 또 다른 경기가 시작된다. 카메라가 어디를 비추느냐의 경기다.


그래서 선수는 이 무대에 모든 것을 건다. 한 경기가 몸값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기 때문이다. 월드컵은 축구 경기이기 전에 전 세계가 동시에 지켜보는 공개 오디션이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카메라는 선수를 비추고, 그 화면 위로 한국이라는 이름이 함께 걸린다. 화면 너머에서는 우리의 거리가 들끓고, 우리의 노래가 울리고, 우리의 얼굴이 하나로 모인다. 그 시간 동안 한국이라는 이름은 세계인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 잡는다. 그 풍경은 값을 매길 수 없다.

지금 한국은 그 무대를 가장 잘 쓸 수 있는 국가 중 하나다. 세계는 이미 한류에 열광하고 우리 음악도 드라마도 음식도 세계의 일상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만 유행은 본래 머물지 않는다. 사람은 늘 새것을 찾고 남들이 아직 모르는 것을 먼저 발견하고 싶어 한다. 오늘의 정상은 내일의 내리막일 수 있다. 우리 한류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은 더 중요했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세계가 이미 이름을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들은 단지 전력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의 화면 앞에 세울 수 있는 자산이었다. 그들이 오래 뛸수록 한국의 기업도 콘텐츠도 도시도, 그리고 한국이라는 이름 자체도 더 오래 노출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패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존재감이 채 알려지기도 전에 스스로 화면을 꺼 버렸다.


누가 화면을 껐는가


남아공전 0-1 패배. 마흔여덟 나라 가운데 서른네 번째. 한국 축구 역사에 남을 처참한 성적표다. 물론 공은 둥글고 경기에는 운이 따른다. 그러나 정황은 운으로 돌리기 어렵다. 우승 후보들을 비껴간 유리한 대진, 역대 최고로 꼽히던 선수 면면, 그리고 최악의 결과. 이 셋이 한자리에 모이면 그것은 그날의 운이 아니라 준비와 설계의 문제다. 다른 모든 나라처럼 우리에게도 철저히 준비할 4년이 있었다. 그 단 세 경기를 위해서.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누가 이 무대를 닫았는가.

홍명보 한 사람만의 문제인가. 그의 자질은 이미 2014, 2026 두 차례 월드컵 본선에서의 조기 탈락이라는 참담한 결과가 말하고 있으니 더 보탤 것이 없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벤치에 밀어 넣는 순간 더 중요한 질문이 사라진다. 누가 그 감독을 선택했는가. 어떤 기준으로 골랐는가. 위험 신호가 울렸을 때 누가 판단했고 누가 침묵했는가.


세계가 인정하는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그들을 뒷받침할 검증된 지휘 체계를 세우지 못했다면 책임은 벤치보다 더 위에 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결과로 말한다. 그러나 프로는 결과만 보지 않고 결과에 이르는 과정도 봐야 한다. 과정이 무너졌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다음 실패를 이미 예약한 것이다.

그러니 대한축구협회는 감독과 협회장의 사퇴로 일을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 감독 선임과 대표팀 운영에 관여한 모든 사람이 어떤 판단을 했고 어떤 경고를 무시했으며 왜 실패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책임은 처벌이 아니라 설명에서 시작된다. 설명조차 못 한다면 그들은 축구 행정에서 영구히 물러나야 한다.


빙산의 한 귀퉁이


더 큰 문제는 이 장면이 한국 축구계만의 일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국 체육계를 잠깐이라도 겪어 본 사람은 안다. 다른 종목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왜 같은 얼굴이 오래 자리를 지키는가. 왜 실패한 결정이 다음 결정으로 이어지는가. 왜 성과는 선수에게 요구하면서 책임은 조직이 나누어 지지 않는가. 대한축구협회는 빙산의 한 귀퉁이일 뿐이다.


선수는 경기 결과로 감독은 대회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협회와 체육 행정도 같은 저울 위에 서야 한다. 권한은 명예가 아니라 책임을 전제로 허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패배는 며칠간의 분노로 태울 일이 아니다. 한국 모든 스포츠협회의 의사결정 구조를 들여다볼 계기여야 한다. 선임 기준의 공개, 권한과 책임의 일치, 그리고 결정의 기록. 추상적 각성이 아니라 이 셋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대표팀 감독의 연봉을 해외 언론을 통해 처음 듣고 온 국민이 놀라는 상황이 


과연 정상인가


진정한 프로는 자신의 결정과 그 결과를 끝까지 끌어안는다. 끌어안지 못할 거라면 자리를 비워야 한다. 자리가 비어야 조직이 다시 숨 쉬고 그제야 실력 있는 사람이 일할 무대가 열린다.


우리가 잃은 것은 단순한 1승이나 32강, 16강 진출권이 아니다.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던 세계의 시선을 우리는 스스로 꺼 버렸다. 세계의 모든 눈이 우리에게 머물 수 있었던 그 시간, 우리는 그 무대를 설계하고 지켜야 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채 전원 플러그를 뽑았다. 우리가 잃은 것은 한 경기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이름이 더 멀리 더 오래 달릴 수 있었던 시간이다.


우리가 스스로 닫은 것은 세계가 우리를 바라보던 창이었다. 그 창을 다시 열려면 권한의 크기만큼 정확하게 책임을 묻는 구조부터 세워야 한다. 리더십의 본질은 자리를 지키는 데 있지 않다. 결과의 무게를 끝까지 끌어안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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