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끼는 동생 변호사들이 줄줄이 결혼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 한창 연애 중이다. 청첩장을 주겠다며 마주 앉은 자리에서 둘은 자꾸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눈빛을 보는데 17년 전 내가 아내를 처음 바라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는 불이었다. 나는 식사 내내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사랑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그들의 사랑이 입 안에서 톡 쏘는 달콤한 칵테일이라면 17년을 함께한 우리의 사랑은 빈티지를 더해가는 레드 와인이 되었다. 처음의 화려한 단맛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묵직한 향과 깊이가 들어찼다. 좋은 와인이 그러하듯 세월을 견딘 만큼 향은 길어지고 끝맛은 오래 남는다. 식은 것이 아니다. 다른 모양으로 깊어진 것이다. 그러나 혀로 닿지 않는 사랑도 있다. 마시는 순간이 아니라 다 비운 뒤에야 목이 메는.
사랑의 향이 깊어지는 동안 몸은 정직하게 세월의 무게를 받아내고 있다. 결혼식 참석차 서울에 들렀다. 핑계가 하나 더 있었다. 5월 들어 일이 몰려 잠을 설쳤더니 오른쪽 귀 아래 림프절이 퉁퉁 부었다. 마흔 중반. 이제는 못 자고 버티는 재주가 없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시더니 한숨을 내쉬셨다. “병원에 같이 가자.” 진료를 받고 피를 뽑고 약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둘이서만 보낸 시간이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늘 손자들이 곁에 있었고 아버지와 함께했다. 이제 아들이 오십을 바라보는데도 어머니 눈엔 나는 여전히 어린 아들이다.
“잘 자고 잘 먹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너무 걱정 말고 기도 많이 하고.” 어머니의 긴 주문이 이어졌다. 어릴 적엔 잔소리였다. 이제는 가슴에 새겨지는 말이다. 잔소리는 늙지 않는다. 다만 듣는 귀가 자랄 뿐이다.
칠십을 훌쩍 넘긴 어머니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나도 같은 말을 돌려드렸다. “어머니도 건강 챙기세요. 고기 좀 드시고 잠도 잘 주무시고 무리하지 마시고.”
서울에 오면 꼭 들르는 곰탕집이 있다. 부모님과 마주 앉았다. 식사 도중 어머니가 당신 그릇의 고기를 내 그릇으로 옮기셨다. 그렇게 고기 드시라 했건만 그 말은 어머니 귀에 닿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남 그만 챙기시고 어머니를 챙기세요.” 나는 도로 옮겼다. 허허 웃으시더니 고기는 다시 내 그릇으로. 젓가락으로 오가던 그 몇 점. 사랑은 그렇게 그릇과 그릇 사이를 끝없이 오갔다. 누구의 그릇에도 끝내 머물지 못한 채. 고기를 다시 밀어 넣으며 나는 다시 깨닫는다. 내리사랑은 거슬러 올라가는 법이 없다는 것을. 자식은 그저 받기만 하는 자리라는 것을.
식사 후 홍콩으로 돌아가는 길. 인천공항 게이트로 걸어가는데 카톡이 울렸다. “아덜 생각하면 늘 가슴이 시려옵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핸드폰 스크린을 한동안 쳐다봤다. 어머니는 나를 생각하며 시리다는데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시렸다. 우리는 같은 추위를 서로 다른 쪽에서 앓고 있었다.
답장을 쓰다 지웠다. 결국 하트 하나만 보냈다.
누가 사랑이 달콤하다 했는가. 사랑은 시린 것이다. 아리게, 날카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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