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면서
홍콩에 한인 워킹홀리데이 젊은이들이 제대로 정착하게 된 것은 2014년부터이다. 한국과 홍콩이 워킹홀리데이 연간 쿼터를 200명에서 500명으로 확대하면서 주홍콩총영사관과 홍콩한인상공회가 주도하기 시작했다. 상공회는 해외로 나오려는 학생들과 이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 기관을 매칭시켜 주었다. 크게 인턴십과 워킹홀리데이로 구분됐다. 인턴십은 4,000~5,000HKD 월급으로 회사 주니어 업무를 배우며 경험했고, 워킹홀리데이는 6,000~12,000HKD 월급으로 실질적인 업무를 감당했다. 업무 및 거주 혜택에 따라 임금 차이가 있었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많은 일들도 있었다. 홍콩 시위와 팬데믹이 지난 지금은 인턴십은 거의 사라지고, 일부 한인 식당들이 개별적으로 약 20,000~25,000HKD 월급으로 채용하고 있다.
홍콩 워홀러의 외침 1
때는 2015년 여름. 영준은 한 지방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이었다.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홍콩 인턴십을 신청했다. 아직 한 번도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학과실 공고판에 붙은 인턴십 안내문을 보고 가장 먼저 신청했다. 전공과 관련된 홍콩 회사에서 마지막 학기를 인턴십으로 대신하고 성적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게다가 항공료도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비용으로 충분히 가능하고 시청에서도 취업지원금 형식으로 100만 원 정도를 준다고 하니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인턴십으로 주는 월급을 아끼면서 6개월을 버티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한 학기일 뿐인데 뭘 어때, 하면서.
경제학과에서는 처음으로 모집하는 해외 인턴십이었다. 교수와 조교도 이 내용을 잘 모르는 듯했다. 영준은 조교가 급히 이력서를 쓰라고 해서 인터넷에 올라온 샘플들을 따라 작성했다. 그리 쓸 것이 없어서 동아리 활동까지 다 써넣었다. 자기소개서도 막막했지만, 어찌어찌 마무리하고 제출했다.
일주일 뒤, 영준은 홍콩 A 물류회사에 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홍콩에 인턴십으로 간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 교수는 해외 취업이라도 된 것처럼 영준보다 더 기뻐했다. 그러면서 기회를 잘 살려보라고 말했다. 열심히 하면 홍콩 취업도 가능할 거라고 교수는 말했다. 인턴십이란 게 회사에서 열심히 하면 채용하는 거니까, 맞는 말 같았다. 홍콩에서 정말 나 취업할 수 있는거야? 갈데까지 가보는거야! 속으로 외쳤다. 교수는 영준이 잘 해야 다음 학기에 더 많은 후배들이 홍콩에 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니 아빠는 잘됐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벌써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영준은 걱정하지 마시라, 자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카톡 프로필 사진부터 홍콩 야경으로 바꿨다. 인터넷에서 홍콩의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고 음식, 날씨 등을 검색하며 들떠 있었다.
영준의 대학에서 함께 채용된 학생은 4명이었다. 기업 인턴십 2명, 워킹홀리데이 2명. 대학에서 사전 모임을 가지면서 넷은 처음 만나게 됐다. 다른 인턴십 지원자는 유일한 여자인 마케팅학과 희진이었다. 희진은 영준와 마찬가지로 매우 기대에 차 있어 보였다. 한국 식당 워킹홀리데이를 지원한 기영과 명호는 휴학생이었다. 그 둘은 친한 친구 사이로 해외여행도 하고 돈도 모으고 싶다고 말했다.
넷은 함께 가지만 목적이 달랐다. 인턴십 과정은 모든 업무 참여가 성적으로 평가된다. 해당 기업 담당자가 직접 평가하여 교수에게 전달한다. 또 다른 차이점은 월급이었다. 인턴십은 5,000홍콩달러, 워홀러는 6,500홍콩달러였다. (참고 2015년 7월 환율 1HKD=145.9원) 영준은 한 학기 인턴십이니 월급은 적게 주어도 상관없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군대도 다녀왔는데 뭐가 겁나겠냐 생각했다.
이들은 인천국제공항에서 LCC 항공편으로 함께 출국했다. 아침 일찍 출발한 비행기는 점심때쯤 도착했다. 홍콩 이민국 심사 부스에서 방문비자 3개월짜리 스탬프가 찍혔다. 출국 전에 담당 교수로부터 안내 사항을 다 받고 숙지했지만, 막상 홍콩 공항에 들어서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소 두려운 마음으로 공항 입국장에 나섰다. 한국상인연합회 사무장이 이들을 한눈에 알아보고 맞아주었다. 사무장은 오느라 수고 많았다며 희진의 캐리어를 끌어주었다.
공항 밖을 나오니 갑자기 사우나 공기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희진은 햇볕을 피해 그늘로 움직였다. 넷은 우르르 캐리어 소리를 즐기며 공항버스에 올랐다. 영준은 2층 맨 앞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벌써 다른 사람이 차지했다. 큰 다리를 지나 홍콩섬이 멀리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홍콩에 왔구나, 나 성공했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담았다.
연합회 사무실에 가방을 두고 맥도날드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었다. 사무장은 여러 가지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면서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줬다.
"여러분은 지금 여행자 신분이어서 아프시면 안 돼. 당분간 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에 조심해라. 특히 차 방향이 반대니까 길 건널 때 양쪽을 꼭 봐야돼."
보험? 영준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에 아뿔싸 싶었다. 출국 전에 해외 단기여행자 보험이 있다고 말은 들은 것 같은데 가입하지 않았다. 홍콩은 의료보험이 무료라고 들은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워홀러 두 명은 사무장을 따라 침사추이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면서 인턴십 두 명과 헤어졌다. 한식당 직원들이 머무는 숙소는 따로 있다고 했다. 영준과 희진은 조던(Jordan) 지역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했다. 영준은 이미 도착해 있는 다른 대학 남자와 한 방을 쓰고, 희진 역시 다른 여학생과 같은 방을 쓰게 된다고 들었다.
조던 MTR 역을 나와 작은 전통 시장을 지났다. 땡볕을 피해 건물 처마 밑으로 걸었다. 지나치는 상점에서 에어컨 바람이 느껴졌다. 한국상인연합회 사무실이 있던 거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80년대 홍콩 영화에서 보던 낡은 건물들이 점점 많아졌다. 이런 건물에서 잠을 자야 한다는 게 조금 겁이 났다. 설마, 우리 숙소는 좋을 거야, 좋아야 해…. 걱정 반 두려움 반이었다.
사무국장이 인솔한 곳은 해피호텔(Happy Hotel). 10층 정도 되는 낡은 건물에 간판도 작은 모텔 같았다. 영준과 희진은 서로 잠시 얼굴을 마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전혀 해피하지 않았다.
(다음주 '홍콩 워홀러의 외침 2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