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현 목사의 생명의말씀] 봄에 생각하는 죽음과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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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현 목사의 생명의말씀] 봄에 생각하는 죽음과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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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기준, 대한민국의 한 해 사망자 수는 대략 20여만 명입니다(2024년 현재 358,400명).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 원인 1등은 암입니다. 1년에 8만여 명이 암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많은 사망 원인은 무엇일까요? 자살도, 당뇨병도 아닙니다. ‘사인 불명’입니다. 사망을 했지만 원인을 모르는 경우, 의사는 ‘사인 불명’으로 기재합니다. 그러면 국가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검시를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밝힐 필요도 없고 밝히려 하지도 않은 채 장례를 진행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사인 불명인 사람이 2만 8천여 명입니다. 


왜 원인을 밝히지 않을까요? 혼자 사는 사람.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 학력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밝히지 않아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사람들인 것이죠. 가정폭력과 아동 학대로 인한 사망이 이 안에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통계를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법의학자인 이 호 교수가 쓴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에 나옵니다.

죽음에 대한 입장은 다양하지만, 내세의 유무에 따라 주장하는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기계의 전원을 내리는 것과 같다 

2) 죽으면 내세가 있다. 죽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는 다르더라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살아 있을 동안에 잘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세가 없다는 사람은 내세가 없으니 지금 잘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내세가 있다는 사람은 내세를 생각하며 지금 잘 지내며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출간된 죽음학 책을 많이 읽어보았습니다만,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주장과 결론에 이르는 것을 봅니다.


“죽음 뒤에 어떻게 될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의 삶이다. 그러므로 현재를 충실하게 잘 살아야 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현재를 잘 살수 있도록 하는 동력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방향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그와 관련된 책도 많이 나옵니다. 현대 사회서 죽음은 우리 생활과 분리되었습니다. 돌아가시는 모습을 직접 보기는 어렵습니다. 돌아가신 이후에도, 시신을 보지 못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어떤 경제학자들은, 죽음과 삶을 분리시킬수록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시에, 죽음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종합병원에서 가장 흑자를 내는 곳은 장례식장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가장 큰 수입원입니다. 


저는 장례사역을 맡으며 국가적인 장례도 했었고, 가족 모두 연락을 끊고 돌아가신 분은 저 홀로 장례식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임종을 맞이하시는 분을 마지막까지 옆에서 보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죽음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합니다. 항상 죽음에 패배하여, 끌려갑니다. 슬픕니다. 단절과 절망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이제는 ‘이 세상’에 없음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는 죽음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사람의 죽음이 기독교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십자가는 가장 무서운 벌이었습니다. 40kg이상 되는 통나무를 지고 언덕을 올라갑니다. 손과 발에 못을 박습니다. 체중을 이기지 못해 몸이 쳐지면 횡경막이 눌리고, 숨을 쉴 수 없습니다. 극심한 탈수와 고통 속에 며칠동안 매달려 있다 죽습니다. 예수는 아무 잘못 없었지만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면서도 사람들을 용서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보여주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죽은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아무도 이기지 못한 죽음을 이긴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가 부활함으로, 죽음이 죽었습니다. 절망이 사라졌습니다. 단절이 회복되었습니다. 죽은 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지만, 예수가 살아나서 그 모든 일들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을 기념합니다. 기독교인은 죽음에 대해서 가장 깊이 생각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지만, 죽음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삶을 위해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지, 죽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돌아오는 주일인 4/20은 부활절입니다. 교회서 부활을 기념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연합예배도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이라도, 이 날 예배에 참여하여 기쁨을 함께 나눠보시면 어떨까요? 죽음을 생각하며 인생이 더욱 의미있어지고, 맛있는 계란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따뜻해지는 봄날. 우리가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차가운 죽음을 이기고 따뜻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어둠이 아니라,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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