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법정 고적에 등재된 구찬육병원, 광복사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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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법정 고적에 등재된 구찬육병원, 광복사는 어떤 곳?

홍콩의 고적문물자문위원회는 이달 13일에 회의를 열어 새로 법정 고적에 등재될 역사적 유산을 심의했다. 이날 선정된 두 곳은 홍콩섬에 위치한 사이잉푼의 구찬육(舊贊育)병원 본관, 셩완의 광복사(廣福祠)이다. 

 

최초의 중국인 전용 산부인과 구찬육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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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의 양와이싱은 “구찬육병원이 법정 고적에 등재된 이후 주변의 관련 건축물들은 새로운 역사 관광 명소가 될 것이라 자신한다”고 밝혔다. 2009년, 이 건물은 홍콩 1급 역사 건축물로 지정된 바 있다. 

 

런던 선교사회에서1922년 건립하였으니 103년의 역사를 보유한 건물이다. 붉은 벽돌과 경석(화강암의 일종)으로 지어진 외관이 특징이다. 현재는 지역 사회 센터로 용도 변경되었다. 또한 비정부 기관으로서 여전히 공공 의료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구찬육병원이 세워진 사이잉푼 일대는 예전에 중국인들이 밀집해 거주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럽식 건축물들이 거리를 채운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 구찬육병원도 이중의 하나이다.

 

이 병원은 중국인을 위한 최초의 산부인과라는 역사적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당시 홍콩의 의료 및 위생 수준을 끌어올린 기여도 역시 높다. 문물위원회의 윤시우반은 “중국 전통 사회에서는 출산된 아기를 받아주는 간호사의 전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찬육병원은 최초로 이 분야의 전문 훈련이 진행된, 홍콩 특유의 중국과 서양 문화 혼합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영어를 못 하는 여성이 사회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구찬육병원은 지하실을 보유한 4층 건물이다. 대칭 구조로 건설된 내부 설계를 기초로 최소한의 보수 공사만을 거쳤다. 

 

이 병동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에 설치된 나선형 계단이다. 이후 시멘트로 방화용 계단이 가설되는 등 용도에 맞게 다소 변경되었지만, 원 상태의 모습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39년에는 본관의 양쪽으로 기숙사가 추가로 건립되었다. 나중에 지어졌음에도 원래 있던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러운 외관을 갖췄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양호한 보존 상태를 보이고 있다. 

 

구찬육병원 설립 당시에는 단지 28개의 침상만이 갖춰져 있었다. 이후 늘어나는 출생아를 수용할 수 없게되자, 1955년 인근 지역으로 이전하게 된다. 홍콩인들 중에 찬육병원 출생자가 적지 않은데, 5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났다면 신병동에서 생명을 얻은 셈이다. 

 

위치 : 36 Western Street, Sai Ying Pun

 

 

동화병원의 탄생을 이끈 광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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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법정 고적에 등재된 또하나는 광복사이다. 셩완의 태평산에 세워졌다. 169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예전에는 광복의사(廣福義祠), 백성사(百姓祠)라 불렸다. 현재는 동화삼원이 관리하고 있다. 

 

‘홍콩의 역사 연구는 광복사에서부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역사적 의미도 깊다. 2024년 1급 역사 건축물로 지정되었다. 

 

1895년에 세워졌지만 광복사 건립에 대한 건의는 18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업가였던 탐초이와 13명의 중화권 엘리트들에 의해 제안되었다. 

 

19세기 중반, 홍콩은 중국인들에게 떠오르는 기회의 땅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많은 중화권 사람들이 홍콩으로 건너온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객사한 백성들 또한 적지 않았다. 

 

타향에서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광복사에 위패를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이것이 광복사 설립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척이 방문하면 위패를 가지고 고향에 돌아갔다.  

 

이후 광복사는 갈 곳 없는 사람, 환자, 노인, 과부 등을 대거 수용했다. 또한 이들에 대한 의료 활동도 진행되었다. 건립된 초창기에는 지역 사회 봉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문제는 최악의 위생 상태였다. 내부의 위생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한때 죽은 사람의 관이 21개나 보관되었고, 그 중에는 5년 동안이나 방치된 시체도 있었다. 최악의 위생 상태와 충격적인 모습을 한 광복사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는 최초의 중국인 전용 병원인 동화의원을 탄생시킨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다. 결국 광복사는 정부의 명령에 의해 1869년 문을 닫았다. 난민과 환자들을 품었던 수용소는 2017년 리노베이션 당시 철거되었다. 

 

광복사는 높은 단 위에 지어졌다. 위층은 사당, 아래층은 제사를 지내는 단상으로 건설되었다. 삼진양원식(三進兩院式)으로 설계되었는데, 3개의 건물과 중간에 2개의 마당이 들어선 구조이다. 

 

삼진양원식은 사찰로는 홍콩에서 보기 드문 양식이다. 2017년 목재 기둥을 바꾸는 등의 내부 수리를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위치: 40 Tai Ping Shan Street, Sheung Wan


오늘 소개한 두 곳은 근접 거리에 있다. 셩완의 유명한 사찰인 만불사를 포함시켜 홍콩 역사 유적 여행 코스로 함께 둘러볼 만하다. 


< 참고자료 >

https://www.hk01.com/ 18區新聞/60217789/舊贊育醫院-103年歷史紅磚主樓-首間華人產科醫院擬納法定古蹟

https://www.aab.gov.hk/filemanager/aab/tc/content_4/202403_1092_Eng.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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