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동요가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 나~는~ 000 / 그 이름 아름답구나~” 서로 소개하며 친해지기 위해 불렀던 노래지만, 사실 깊이 있는 질문입니다. 모두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답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제 친구가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오십이 넘은 나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어떻게 살 것인가? … 떠나는 것에도 남아 있는 것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찮게 여기지도 말고. 그저 감사히, 순간순간을 진실되게 살아보자고 생각해본다”
어릴 때는 이름만 말하면 됩니다. 성장할수록, 이름에 여러가지를 덧붙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말하며 소개합니다. 무엇인가 많이 붙이는 사람일수록, 직업과 위치로 자신을 드러내려 합니다. 이름을 듣는 사람이 잘 모르니, 자신을 알리려고 계속 덧붙이죠. 덧붙인 결과, 오히려 더 초라해집니다. 제가 예전에 받은 명함이 생각납니다. 한 면 전체가 그분을 소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00회장. 00총무. 00대표… 단체 이름은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고작 몇 명 모이는 모임이었습니다.
정영진의 “시대유감”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 명함 내용입니다. “삼성. 이병철” 회사 이름과 본인 이름만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일수록 덧붙일 말이 필요 없습니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이름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이런 사람이 되기를 꿈꿉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니 자꾸 덧붙이죠. 덧붙이다보니, 오히려 자기가 누구인지 잊게 되는 모순을 경험합니다. 자신을 알리려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활동을 많이 합니다. 그것이 정말 그 자신일까요? 인터넷에는 멋진 이야기를 쓰는데, 만나보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실제와 보여주는 모습이 다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잘못된 대답을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른 채 살아갑니다. 내가 누구인지 감추며 살아갑니다. 해외 생활을 하면 이 질문에 답하기 더욱 어렵습니다. 한국과 다른 언어, 환경 속에서 정체성을 찾기 힘듭니다. 그런 사람이 성경에도 나옵니다.
출애굽기라는 성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노예로 태어난 모세를 이집트의 공주가 양자로 삼아, 이집트 왕자로 살아갑니다. 그는 성장하며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깨닫습니다. 민족을 구하겠다고 이집트 사람을 죽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살인범이 되어 광야로 도망갑니다. 그는 혼란스럽습니다. 이스라엘 노예인가? 이집트 왕자인가? 그 때,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믿을 수 없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면 ‘하나님이 누구길래 그런 말을 하는가?’라고 물어볼 겁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제가 뭐라고 말하면 좋겠습니까?”
다른 사람들 핑계를 댔지만, 결국 이 질문은 하나님에게 하는 질문임과 동시에 모세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출3:14) 히브리어로 “야훼”입니다. 자음만 있는 히브리어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모음을 붙여 읽어 “여호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야훼”가 맞는 발음이라고 연구가 되어 여호와로는 잘 읽지 않습니다. “나는 나다”로도 번역할 수 있는 이 대답은 해석이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쉽게 보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지요. 대기업 회장보다 더 위대하신 분이 굳이 설명하실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나는 나다”로 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우리를 꾸미는 많은 것들을 치우고, 이렇게 대답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저는 저예요. 제가 하는 일도. 제가 속해 있는 곳도. 모두 저를 어떻게 하지는 못해요. 저는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 그대로예요.” 이렇게 대답할 때,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름만 대고 놀던 어린아이처럼 말이지요.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도, 목동도 아니고 그저 모세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것을 알고, 그는 수많은 사람을 이끌어내는 일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십니까?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덮고 있는 것을 걷어내고, 여러분의 존재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큰 회사 회장님도, 초등학생도, 함께 어울려 윷놀이를 하고 밥을 먹고 교제를 나눕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이 모임에 여러분도 함께 하시며 자유를 누리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있는 모습 그대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우리교회는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이번 한 주도 여러분께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