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겨울은 은근히 춥다. 난방이 없는 겨울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 홍콩 사람들이 먹는 몸보신 요리들이 있다.
그중 오늘 소개하는 음식은 유명한 광동식 뱀수프이다. 마침 2025년은 뱀의 해, 특별한 현지식으로 몸보신 좀 해볼까~?
우리말에 ‘천고마비’, 즉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광동어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뱀이 살찐다’인데 말 대신 뱀이 들어간다.
뱀을 보신용으로 먹기 시작한 시기는 고대부터로, 약 2천 년 전인 진한 시대에 광동인에 의해 홍콩으로 전파되었다. 가을과 겨울에 뱀 보신을 즐겨 먹는데, 이는 여름에 뱀을 식용하는 대만과는 반대이다.
뱀 고기는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영양 가치가 상당히 높다. 중의학 측면에서 보면 기와 피가 잘 돌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만든다. 또한 류머티즘을 예방하고 가래를 삭이는 기능도 한다.
홍콩인들이 즐기는 뱀 요리는 어떤 것일까? 광동식 뱀 수프인 ‘세깡(蛇羹)’을 보신용으로 많이 찾는다. ‘깡(羹)’은 야채와 고기, 전분을 넣어 걸쭉하게 먹는 중국식 수프이다. 다른 말로 중국식 뱀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홍콩인들이 뱀 요리를 가장 즐겨 먹던 시기는 1950년대였다. 뱀을 취급하는 점포들은 뱀고기를 자우라우(酒樓:중국 연회 식당)에 제공하였다. 그리고 남은 고기들은 뱀탕 용 재료로 사용했다.
1960년대가 되어 자우라우들의 뱀 요리가 큰 환영을 받자, 뱀고기 공급 점포들이 직접 세깡을 판매하여 돈을 벌었다. 1970년대에는 찹쌀밥까지 곁들여 함께 먹는 세트 메뉴가 등장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홍콩 사람들이 즐기는 뱀 요리이다.
홍콩 사람들의 머릿속에 세깡, 즉 뱀탕이라면 떠오르는 유명 식당들이 몇 군데 있다. 첫 번째 소개하는 곳은 삼수이포의 ‘사왕협(蛇王協, 광동어:세웡힙)’이다. 1965년 삼수이포에서 개업하였으니, 올해로 60년이 되었다.
창업주인 자우청은 1950년대 홍콩으로 건너와 삼수이포에서 노점상을 했다. 이후 뱀 사업이 흥하는 것을 보고 사왕협을 창업하여 세깡을 판매하였다. 처음부터 사업이 잘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딸인 자우가링은 아버지와 함께 사이완 부두에 가서 뱀을 사와 도살한 후 쓸개를 파는 길거리 공연을 시연하였다. 세깡을 판매한 후에는 각 자우라우를 돌며 주문을 따왔다.
사왕협의 세깡은 6종의 뱀으로 제조된다. 약 30근의 뱀 뼈를 오후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끓인다. 그리고 오전 6시가 되면 8근의 뱀고기를 찢어 버섯, 생강 등과 함께 넣어 탕으로 만든다.
사왕업(蛇王業, 광동어 ‘세웡입’) 역시 삼수이포의 유명한 뱀 요리 전문점이다. 1958년 사이완에서 개업한 후, 1965년 현재의 위치인 삼수이포 남청가로 자리를 옮겼다. 사왕업을 창업한 청와입은 원래 광저우에서 뱀 도매상을 했다. 1950년대 홍콩으로 이주하여 사업 기반을 다졌다.
60~70년대 한참 뱀 요리가 홍콩인들의 사랑을 받았을 때, 돈 많은 부자들도 주요 고객이었다. 연회에서 뱀 요리의 서열은 털게나 제비집보다 앞이었다. 이중 항셍은행의 최고층 펜트하우스 식당인 폭오이(Pok Oi) 또한 사왕업의 주요 고객이었다.
항셍은행은 매년 주요 거래처를 초대하여 뱀 연회를 열었다. 금융 총수와 기업가들이 만나면 “뱀고기 드셨나요?”라 묻는 것이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였다.
사왕업에서는 뱀 담즙도 함께 취급했다. 뱀 담즙은 기침을 멎게 하고 목소리를 트이게 한다. 이로 인해 매염방, 곽부성 등이 콘서트를 시작하기 전 챙겨 먹곤 했다.
홍콩 생활 20년. 처음으로 뱀 요리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마침, 우리 학원이 위치한 노스포인트에 사왕량(蛇王良)이라는 미슐랭 뱀탕 집이 있다. 지난 토요일 오후,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 봤다. 탈출한 뱀들이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지나 않을까? 시선이 먼저 아래를 향했다. 예전에는 살아있는 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내부에 놓여 있는 4개의 테이블에는 모두 사람들이 식사하고 있어 ‘답토이’(테이블 공유를 의미하는 광동어)를 해야 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 세깡과 햄볶음밥으로 식사 중이었다.
나도 같은 걸로 주문했다. 세트 메뉴로 82불이었다. 이어서 나는 어르신에게 푸통화로 말을 걸었다. 내가 세깡을 처음 먹는다고 하니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먼저 식탁에 놓인 레몬잎을 황송하게도 손수 내 세깡에 넣어주셨다. 과자처럼 생긴 복처이(만두피를 튀겨 만듦)도 넣으라 했다. 레몬잎과 복처이는 일종의 토핑이었다.
어르신은 뱀 요리를 겨울에 먹어야 한다, 삼수이포의 사왕협이라는 유명한 식당이 있으니 가 보라, 중국 북쪽 사람들은 잘 먹지 않고 광동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먹으면 추위를 이길 수 있다 등등 소소한 지식을 친절히 전달해 줬다.
긴장된 마음으로 세깡을 한술 떠 입에 넣어 보았다. 듣던 대로 부드러운 닭고기 맛이었다. 역한 냄새나 맛은 없었다. 뱀고기인 줄 모르고 먹으면 닭고기라 생각할 듯했다. 뱀고기가 이렇게 부드럽다니.. 가격도 100불 밑이니 가성비 높은 보양식이다.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지만, 오늘의 미션은 성공이다. 다음은 무슨 요리에 도전해 볼까?
< 참고 자료 >
香港尋味,Alison Hui, 创意市集,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