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 공경받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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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 공경받는 어른


글 손정호 편집장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연말 칼럼을 준비하던 중 '불편한 전화'를 받았다. 아침 일찍 걸려온 모르는 번호. 받고보니 아니나 다를까,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불쑥 재작년에 쓴 내 칼럼을 치켜세우더니 특정인을 거론하며 그에 대해 쓴소리를 써줄 것을 부탁했다. 자신이 쓰기에는 평판과 신뢰가 부족하니 날더러 써보라는 것이었다. 그와 특정인은 한 배를 탔었지만 지금은 원수지간이나 다름 없어 보였다.


단칼에 거절했다. 예전부터 숨어서 음흉한 모략을 꾸미더니 역시나.. 면박을 날리고 끊었다.



'어른 김장하'



새해 첫 날 MBC경남 방송국에서 걸작을 내놓았다. '어른 김장하'라는 2부작 방송이다. 진주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평생 번 돈을 교육재단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사회단체를 조용히 지원하고 최근 은퇴하신 분이었다.



그는 인터뷰는 절대 사절이다. 자신이 돋보이기보다 늘 자세를 낮추는 사람이었다. 방송이 제작될 수 있었던 건 한 베테랑 퇴직 기자가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방법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방송은 의도적으로 영웅화 하지 않았고, 꾸미지 않았다. 2부작을 시청하는 내내 감동이 있었다.


서론이 길었다.


새해 첫 신문에 부정적인 기운을 써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결심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어른 김장하'를 시청한 후 맑은 기운을 빌려 글을 쓴다.


재작년 한인 단체장 패턴에 대해 쓴 적이 있다. [한인 사회는 어려울 때 일수록 좋은 일꾼 발굴해야..수요저널 2021년 12월 1일자]


홍콩 한인 단체장들의 당선과정, 행동 패턴을 취재 경험에 비추어 썼다. 어려운 시기에 자기 이익 챙기는 사람은 물러나고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새로운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칼럼을 쓴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한인사회에 그 패턴은 남아있는 듯했다. 팬더믹 시기에 인재가 부족하니 학연 지연 중심으로 급급하게 찾아내고, 회원들이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은퇴한 분들이 나서서 리더를 찾는.. 회원들도 모르는 임원의 등장으로 아래 사람이 일을 가르쳐 주거나, 경험 부족을 지적하며 원로들이 뒤늦게 개입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펜데믹이 끝나고 있다. 희망의 시간이다. 무거웠던 짐을 털어내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다가올 '정상'은 예전의 '정상'과는 다르다. 펜데믹 이전처럼 예전 행사들을 다시 한다는 수준에 머물면 곤란하다. 지난 3년간 긴 터미널을 이겨낸 사람들에게 더 깊은 사색과 고민으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방역 조치로 인해 한 때 오프라인 행사가 전무했지만, 온라인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행사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목표를 재설정했다. 그 결과 한인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지혜롭고 날카로워졌다.


무엇이 허례허식이고, 필요없는 행사 요소였는지 구분하게 됐다. 이젠 어떤 인재가 팬데믹 기간동안 수고했는지 분명한 평가를 해야 한다. 개인 삶에 힘들어 단체에 무관심한 틈을 타 이익을 챙긴 이들은 누구인지, 닫혀진 네트워크 환경을 핑계삼아 자신들만 실리적으로 이용한 사람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회원들에게 질 낮은 정보만 열심히 제공하고 정작 중요한 일은 자기들끼리 결정짓는 못된 행위는 지적 받을 것이다. 가장 악한 리더는 어려운 시기에 고생한 사람의 공을 가로채는 사람들이다.


한가지 더.


일부 한인 리더들이 회원들의 직접적인 지지를 받도록 선거 구조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지지를 받아야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추진할 수 있다. 투표없이 '킹메이커'들에 의해 발탁된 일부 리더는 온전한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무투표로 당선된 리더는 과연 누구에게 당선 감사 인사를 전할까. 회원을 소중하게 생각할까. 차기, 차차기 리더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한 리더는 본인은 전혀 원하지 않았다며 자리 욕심이 없는 것처럼 일년 내내 말했다. 무능력을 그런 말로 겸손한 척 했지만, 많은 유능한 인재를 흩어지게 만든 것 같다.


‘어른 김장하’는 이 시대의 어른에 대해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어른들이 어른으로 공경하는 인물이 어떤 상인지 보여준다. 등이 굽고 차도 없이 출퇴근 하던 어른의 이야기를 추천 드린다.

 

 

[어른 김장하 1부] 시청하기 

 

[어른 김장하 2부] 시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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