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지하철 송웡토이역에 얽힌 중국 황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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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지하철 송웡토이역에 얽힌 중국 황제 이야기

홍콩에서 장례를 치른 송황제, 그리고 송웡토이역

오늘 칼럼은 질문으로 시작해 볼까 한다. 홍콩의 지하철에서 가장 긴 노선은 무엇일까? 56km를 연결하며 모두 27개의 역을 관통한다. 정답은? 바로 튄마(Tuen Ma)선이다. 

 

서부 지역 끝자락의 튄문(또는 튠문)에서부터 동부 외곽 마온산을 거쳐 우카샤이까지 연결되는 긴 코스다. 

 

이중 중심지인 이스트 침사추이를 지나 토카완역과 카이탁역 사이에 송웡토이(宋皇臺, Song Wong Toi)역이 위치해 있다. 한자식 발음은 송황대로서 송나라 황제와의 사연이 깃들어 있다. 오늘은 홍콩에서 장례를 치른 비운의 황제, 그리고 송웡토이역에 얽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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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군을 피해 홍콩으로 피신 온 어린 황제

송나라 단종의 본명은 쨔오쓰로 1276년, 17대 송나라 황제에 즉위한다. 그의 나이 겨우 만 6세였다. 당시는 몽고군이 세운 원나라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였다. 

 

단종이 즉위하던 같은 해에 몽고군이 항저우까지 치고 내려오자 단종은 어머니 양숙기, 어린 동생 공제, 그리고 군신들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다. 푸지엔성으로 남하한 송나라 조정은 결국 중국 대륙의 끝자락인 광동성까지 쫓겨온다.  

 

남으로 남으로 향한 이들은 홍콩도 거쳐 간다. 지금의 췬완, 카우룬 시티, 동롱챠우(사이완호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섬)등으로 거처를 옮겨 다닌다. 이로 인해 단종과 공제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홍콩을 방문한 황제가 되었다. 

 

하나 세상 물정 모르고 한참 뛰어 노는 나이에 고달프고 끝도 알 수 없는 피난 생활이 이어진다. 

 

1278년, 몽고군이 코앞까지 닥치자 단종은 광저우 쪽으로 대피하기 위해 군신들과 배를 타고 도주한다. 이때 바다의 풍랑이 거세져 배가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한다. 어린 황제는 바다에 빠지는 아찔한 순간을 맞게 되는데,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구조되어 익사는 면한다. 

 

하지만 이때 생긴 병으로 얼마 후 세상을 뜨게 된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거센 풍랑은 송나라 군사 40% 이상을 익사시켰다고 한다. 단종은 란타우 퉁청에서 장례를 치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단종의 뒤를 이어 동생 공제가 황제로 즉위하니 이때 그의 나이 6세였다. 송나라 조정에는 끝까지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강경파가 득세하였고 송, 원 두 나라는 지금의 광동성 신후이 앞 바다에서 최후의 대전을 벌인다. 

 

22일간의 격전 끝에 승기는 결국 원나라쪽으로 기운다. 승상 루시우푸는 공제를 업고 바다에 뛰어들며 320년의 역사를 끝으로 송나라는 멸망한다. 


황제가 뛰어 놀던 성산, 그리고 송왕대

비운의 두 황제가 홍콩에 머물던 시기, 이들이 자주 가던 놀이터가 있다. 지금의 구룡 카우룬 시티 바닷가에 있는 작은 언덕 성산(聖山)이다. 이곳에는 어린 황제가 올라가 놀던 커다란 바위가 있었으니, 바로 송왕대다. 

 

송나라가 망하고 이후 사람들은 송황제를 기리기 위해 이 바위에 ‘송왕대(宋王臺)’라는 이름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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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700년 가까이의 긴 시간이 흘러 1941년, 홍콩의 역사는 3년 8개월간의 일제 시대를 맞는다. 군사 용도로 카이탁 공항을 개발중이던 일본군은 주변을 평지화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이때 성산 및 송왕대의 일부가 파손된다. 

 

일제 시대가 끝난 1950년대, 카이탁 공항의 확장 공사는 계속된다. 황제의 놀이터였던 성산은 평지가 되어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송왕대는 사각형으로 깎여 주변의 공원으로 옮겨진다. 이 공원이 지하철 송웡토이역에서 약 5분 거리에 위치한 송웡토이(송왕대) 가든이다. 

 

지하철역이 박물관으로 – 송웡토이역

송웡토이역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던 2014년, 인근에서 송나라 시대의 우물과 유적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다. 유적 발굴 작업 결과 송, 원 시대의 유물 및 19세기 말에서 20세기의 유물이 대대적으로 출토되었다. 

 

특히 송,원 시기의 유적이 매우 풍부하였는데, 모두 100여곳에서 발견되었다. 이중에는 당시의 가옥 중 일부, 우물, 무덤 및 기와, 벽돌, 도자기, 그릇등이 포함되어 있다. 도자기는 모두 70만 조각이나 쏟아져 나왔다. 

 

이는 당시 성산 북쪽과 서쪽에 대규모 촌락이 형성되었음을 알려주는 흔적이었다. 송나라 시기의 홍콩은 주변 동관현에 포함되어 있었고 당시를 기록한 역사적 문헌은 많지 않았다. 따라서, 대량 출토된 유적들은 매우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역사 발굴의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홍콩 지하철공사인 MTR 측과 유적 발굴단간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계획된 공사의 진행과 역사적 흔적을 보존하려는 노력간의 갈등이었다. 

 

결국 MTR 측에서 공사 계획을 일부 변경하여 완공에 이른다. 그리고 송웡토이역은 로비에 작은 박물관을 만들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역사적 흔적을 살펴보게 하였다. 

 

송웡토이역을 방문하면 2개의 전시관에 모두 400여점의 유물이 진열되어 있다. 방문객들은 송, 원 시대의 화폐, 그릇, 도자기, 제사에 쓰던 도구 등을 영어와 중국어 설명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한편에는 송왕대의 역사와 유적 발굴 당시의 사진도 전시해 놓았다.   


지하철 튄마선을 타고 송웡토이역을 지나게 된다면 잠시 내려 작은 박물관을 둘러 보도록 하자. 홍콩 역사의 일부를 이해하는 동시에 지하철 박물관이 주는 색다른 느낌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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