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역대 홍콩 최고의 지도자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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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역대 홍콩 최고의 지도자는 누구?

화면 캡처 2022-02-23 114313.jpg

 

한 달 앞으로 다가 온 대통령 선거와 홍콩 행정장관 선거

 

다음 달이면 한국의 5년을 이끌어 갈 21대 대통령이 탄생한다. 홍콩 역시 5년마다 선출되는 행정장관 선거가 3월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현재의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5월 8일로 연기됐다. 한국은 직접 선거지만 홍콩은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되는 간접 선거다.

 

홍콩에서는 영국이 통치를 시작한 1843년부터 중국에 반환된1997년까지 총 28대의 총독들이 거쳐갔다. 1997년 이후에는 초대 행정장관 퉁치화(1997-2005)를 필두로 도날드 창(2005-2012), 렁춘잉(2012-2017), 캐리 람(2017- )등의 현지인 지도자들이 홍콩을 이끌어 왔다.

 

 

양국의 최고 지도자 선거를 앞두고 문득 홍콩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받는 인물은 누구였을까하는 궁금점이 일었다. 

 

홍콩 현대사에서 언론과 현지인들로부터 가장 높게 평가되는 지도자로 다음의 두 명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22대 총독 알렉산더 그랜덤(Alexander Grantham), 그리고 25대 머레이 맥리호스(Murray MacLehose)다.

 

 

알렉산더 그랜덤 : 공공주택 도입, 의료와 교육 개혁, 홍콩 경제 부흥의 기초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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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현지인들에게 역대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가장 많이 입에 오르는 인물이 머레이 맥리호스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1947부터 1958년까지 홍콩을 건설한 알렉산더 그랜덤이라는 인물이 많이 언급된다. 오래전 활동한 지도자라서 사람들의 기억에 많이 남아있지 않을 뿐이다.

 

그랜덤은 영국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후 1922년 홍콩으로 건너 와 13년간 여러 부서에서 업무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홍콩을 떠나 영국령이었던 피지에서 총독을 지낸 이후 1947년 4월, 홍콩의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다. 

 

는 다른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을 홍콩도 똑같이 밟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랜덤은 신계 지역의 조차 기간이 끝나는 1997년, 신계와 함께 홍콩과 구룡 모두 중국에 돌려줄 것을 영국 의회에 건의한다. 

 

홍콩섬과 구룡반도는 신계 조차 조약 체결 이전에 기한 없이 할양된 영토여서 중국에 반환해야 하는 구속력은 없었다.

 

그랜덤은 가장 이상적으로 홍콩을 통치하는 방법이 ‘인자한 독재 제도’라고 여겼다. 중국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홍콩 내에서의 좌파 활동을 억제하였다. (그가 홍콩을 통치하던 당시 인근 중국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즉 공산 국가가 탄생하였다.)

 

그는 또한 당시 중개무역 중심의 홍콩 산업을 제조업으로 전환시켜 이후 경제 부흥의 기초를 쌓았다.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공급되고 있는 홍콩의 공공 주택 사업을 최초로 시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의료 시설을 혁신하고 홍콩의 교육 분야를 개선시킨 업적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세상을 떠난 1978년 10월, 홍콩 의회는 그를 ‘가장 위대한 통치자이자 역대 최고의 총독’이라고 치사하며 1분간 묵념을 하기도 하였다. 

 

그랜덤의 이름은 홍콩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 홍콩섬 에버딘에 그랜덤 병원이 운영되고 있고 사이완호에 있는 쿼리베이 공원에는 해상 소방 활동을 담당했던 알렉산더 그랜덤호의 선체가 관광객을 맞고 있다.

 

 

머레이 맥리호스: 공무원 현지화, 9년제 무료 교육 시행, 염정공서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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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좋아하는 교민이라면 맥리호스 하이킹 코스를 한 번쯤 다녀왔으리라 생각된다. 홍콩이 자랑하는 하이킹 노선 중 하나로 사이쿵 쪽에 위치해 있다. 

 

손꼽히는 트래킹 코스에 이름이 붙을 정도로 맥리호스는 홍콩인들이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손꼽는 인물이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등 다방면에서 홍콩의 발전을 이끌었다. 채팅방에 있는 홍콩 지인들에게 맥리호스를 어떻게 기억하냐고 물으니 ‘좋은 총독이고 진짜 홍콩을 사랑한 총독’, ‘좋은 정책을 많이 세웠고 고등학교 역사 수업에 나오는 인물’ 등 칭찬의 글들이 올라왔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머레이 맥리호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1971년 홍콩 총독으로 부임한 후 1982년까지 재직하여 역대 총독 중 최장수 임기를 기록하였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개혁 조치를 단행하였다. 우선 정치 개혁 측면에서는 중화권 인사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시켰다. 

 

입법회 의석 수를 늘렸고 홍콩 공무원의 현지화를 추진했다. 1974년에는 중국어를 공식 언어로 인정했다.

 

경제 분야의 업적으로는 경제 이익 보장함과 함께 금융 감독을 강화했다. 이는 기간 산업 및 도심 건설에 기여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또한 10년 주택 건설 계획을 시행하였고 공공 복지 및 상해 보상 제도 등도 도입함으로써 시민들의 생활 수준 개선에 공헌한다. 

 

1974년에는 부패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염정공서’를 설립하였다. 염정공서는 한국 공수처의 롤모델이라하여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많은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이외에도 9년 무료 교육 제도를 시행하는 한편 고등 교육 시설을 확충시켰다. 그리고 레저 분야에 많은 재정을 투자하여 시민들의 교육 및 문화 생활 향상에 기여한 공로 역시 크다.

 

필자는 홍콩의 지인으로부터 한국 대통령 중 감옥에 안 간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홍콩인들은 직접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우리나라를 부러워할 것이다. 

 

한국, 홍콩 모두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지도자가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참고자료: 《圖解香港史》,周子峰,中華書局有限公司,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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