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축구 행정에서 쌓은 경험이 한국에 점목될 수 있었나
홍콩의 경험이 저의 큰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제가 홍콩축구협회에서 기술이사로서 연령별 감독 선임을 했고 유스 디렉터나 우먼 디렉터, 여러 파트의 매니저들을 선임하는 과정도 주도했었다.
홍콩의 축구 감독 선임 과정은 상당히 공정하고 세계에 다 공개한다. 지원하는 감독의 이력서를 모두 검토하고 위원 모두가 참여한다. 각 파트의 수장들도 함께 인터뷰를 한다. 그런 홍콩 축구협회에서의 과정들이 저에게 큰 기반이 되었다.
한국에 와서 감독 선임이 가장 큰 임무였는데 부임 초기에는 저에 대해 불신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 선발은 이력서도 못 내보거나, 인터뷰도 못하거나, 밀실에서 결정되는 의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온 제가 그런 관행을 깨뜨리는 기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협회 일부에서는 사실 불편해 했었다. 하지만 기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이전까지 감독 선임 기준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기자들에게 감독 선발을 위한 저의 축구철학부터 리더십, 대표팀 운영방법 등을 공개하니 투명한 축구행정이라며 힘을 더 실어 주었다. 홍콩에서 겪은 것들이 저에겐 이미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홍콩대표팀에서는 테크니컬 디렉터(기술이사)로서 모든 인사권이 있었다. 행정 라인에서도 모든 결제권까지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와보니 기본 역할은 비슷하지만, (위원장의) 권한 부분은 매우 제한이 있었다.
홍콩에서는 직접 진두지휘 할 수 있는 디렉터였지만 한국에서는 ‘자문을 하는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것이다. 한국에는 디렉터가 없으면서도 디렉터의 권한도 주어지지 않는다. 민감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대표팀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지만 사실상 위원장의 권한으로는 주도적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아쉬움이 좀 있다.
한국 가시더니 머리스타일이 엄청 바뀌셨다.
홍콩에서도 머리카락이 길었는데, 한국 미용 패션이 워낙에 뛰어나서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줘봤다(웃음).
홍콩에서 워낙에 교민들과 친밀하게 지내셨기에 한국 TV에 나오시면 정말 반갑고 자랑스럽다.
가족이 모두 홍콩에 있기 때문에 저를 '홍콩우리교회 집사’라고 생각해주셔도 된다(웃음). 격리가 1주일이면 홍콩에 가볼 텐데 3주까지 된다고 하니 정말 아쉽다. 가족들을 1년 반 동안 못 봤다. 많이 보고 싶다.
‘홍콩의 히딩크’, ‘홍콩 축구의 국민영웅’이셨는데 한국으로 가게 된 뒷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홍콩 대표팀 감독 자리를 6년째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평생 할 수도 없는 자리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큰 시장으로 도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진로 고민을 많이 했다.
한국행은 사실 생각지도 않은 오퍼였다. 옛날로 말하면 기술위원장인데, 감독선임위원장으로 제안을 받았다. 이 자리는 모든 프로 감독들이 감독 이후에 선망하는 직책이다. 이것을 하자니 제가 너무 젊고 이르다고 생각을 했었다. 솔직히 의심도 했었다. 홍콩에서는 유명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아웃사이더’인데 나를 기술위원장으로 부른단 말이야? 아닐꺼야라고… 한번 더 확인하기도 했었다. 상당히 당황하고 고민도 했다.
홍콩대표팀과 6개월이 남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매력적인 자리였다. 급여나 조건은 홍콩대표팀이 훨씬 좋지만 이 자리의 의미나 개인적인 명예는 상당한 것이다. 대한민국 축구 행정의 톱이 되어본다는 것은 정말로 영예로운 것이다.
현재 홍콩에는 김동진 키치감독, 윤동헌 코치 등 ‘제2의 김판곤’을 꿈꾸는 한국인 축구인들이 있는데
김동진 키치 감독은 월드컵을 두 번이나 뛰었던 훌륭한 선수다. 그런 큰 선수가 홍콩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홍콩의 가장 우수한 팀에서 감독이 된 것은 홍콩 한인사회의 큰 자부심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자랑스럽다. 우리 교민들이 함께 자부심을 느끼면 좋겠다.
윤동헌 코치도 한국의 K-리그를 거친 훌륭한 선수다. 인품도 매우 좋은데다가 지도자로써 야망도 있다. 홍콩 교민들께서도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훌륭한 선수와 코치진에게 응원과 격려를 해주시길 부탁 드린다.
홍콩에 계실 때 코차이나 축구팀, 코파, 파파 등 한국 축구동우회와 직접 함께 뛰면서 교민들과 스킨십을 많이 해주셨다
저는 그 시간들이 상당히 즐겁고 그립다. 축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축구를 통해 교민들과 교제하는 시간들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지금도 동호회가 있을 텐데 한인사회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축구를 통해서 행복과 소속감, 에너지를 얻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란다. 너무 실력 위주로 하지 말고 즐겁게 스트레스를 풀고 힘을 얻고 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혹시 2003년 홍콩에서 SARS가 발생했을 때를 기억하시는지
물론이다. 상당히 어려웠다. 제가 플레잉코치 할 때인데 정말 두려웠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한 마디도 서로 안 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많은 교민분들이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저와 저희 가족은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어렵게 견뎌냈다. 신앙의 힘으로 버티기도 했고, 아내와 자녀들이 아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심초사하며 애쓰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사망자가 발생하고 의료진들도 목숨을 바치면서 이겨내지 않았나. 그때 워낙에 두려움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이번 팬더믹 상황은 그때보다 심리적으로 부담이 약간 적게 느껴진다.
올해 도쿄 올림픽에서 홍콩의 메달 성적이 좋았는데 알고 계시는지
수영과 펜싱 등에서 메달을 따내면서 홍콩인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고 들었다.
홍콩은 엘리트와 일반인을 위한 생활체육의 균형이 상당히 잘 갖춰져 있다. 어느 동네에도 축구장이 있고 수영장이 있다.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 인프라가 훌륭하다. 무료 시설과 아주 저렴한 체육시설이 체계적으로 잘 제공되고 있다. 그런 스포츠 인프라가 홍콩의 올림픽 성과를 얻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카이탁 스포츠센터가 대규모로 공사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 앞으로 홍콩의 스포츠 분야는 선진 행정과 더불어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2년째 못간 교민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주신다면?
홍콩의 많은 한인들과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아내를 통해) 듣고 잘 알고 있다. 하루 빨리 활기 넘치는 홍콩의 모습으로 회복되어서 한인사회에 건강과 활력을 불어 넣어주면 좋겠다. 어려울수록 소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
저도 한국에 와서 내일이 안 보이는 상황이 왔을 때 정말 어려웠다. 눈에 보이는 현실 넘어 바라보는 것이 소망이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위를 돌아보며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한인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글 | 손정호 편집장
사진 | 김판곤 위원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