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회에서 미디어 업종으로 20년 가까이 일을 하다 보니 매년 많은 단체장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사, 사진, 영상 등으로 취재하고 기록하기 때문에 자세히 볼 기회가 많습니다. 감사하게도 홍콩, 마카오 뿐만 아니라 심천, 광저우, 광동성의 유수한 분들을 뵐 기회도 있었습니다.
한인 단체장 임기는 대부분 2년 정도인데 그들의 처음과 끝에서 매우 비슷한 패턴이 보입니다. 취임 직전에는 우선 지인을 총동원해 인사를 개편합니다. 당선 후 부지런히 신임 인사를 다닙니다. 단체 업무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개선, 차별화를 위해 고민합니다. 1년 정도 지나면 동원된 인력은 사라지고 소수의 핵심 인사만 남습니다. 마지막 6개월 정도는 차기 임원단을 구성하도록 돕고 이임 수순을 밟습니다.
단체장 선임 방식은 기본적으로 선거입니다. 2인 이상 등록하면 투표를 진행합니다. 후보자가 1인일 경우에는 보통 자동 당선입니다. 가끔 후보자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고문들이 나서서 인재를 물색해 권면하고 세우기도 합니다.
단체장 직책은 영예로운 자리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이고 단체를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회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모으고, 대변하며, 권리를 찾아줘야 합니다. 회원들을 위해 가장 열심히 뛰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의욕만 있다고 출마하기는 어렵습니다. 임원이 될 일정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동이 많은 해외 교민들이기에 출마 후보 수가 정말 적습니다. 자금력도 필요합니다. 일정 금액을 단체에 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희생정신과 경제력이 기본이기 때문에 쉽게 도전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몇년간 반정부 시위, 펜더믹 시기를 겪으면서 자연스레 한인 단체를 위해 봉사하려는 분들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결국 지연, 학연, 군대, 종교 등의 인맥을 찾게 됩니다. 임기 시작을 앞두고 허겁지겁 지인들에게 손을 내밉니다. 단체 회원도 아닌 사람을 급하게 회원으로 가입시켜 중직을 맡기기도 합니다. 단체와 아무 연관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납니다. 기존 회원들은 단체장이 데려온 ‘뉴페이스’와 화합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립니다. 심한 경우에는 단체장의 임기가 마칠 때까지 ‘낙하산’ 꼬리표를 벗지 못하기도 합니다. 중간에 사라지기도 하구요.
여기까지는 그래도 아주 일반적인, 평범한 단체 임원들의 패턴입니다. 전문 행정가나 정치가가 아니고 일반 자영업자, 사업가 출신이기에 이 정도의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교민사회 수준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풍경은 따로 있습니다. 누구도 쉽게 봉사할 수 없는 어려운 시기를 기회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진 상황을 기다리는 분들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적을 때 조용히 당선, 추대, 또는 연임되길 바라지요. 선거를 피해 경제적, 정신적 비용도 줄이구요. 과거, 선거 때문에 한인사회가 시끄러웠던 것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그러나 회원이 직접 뽑지 않은 회장이라면, 선거를 거쳐 당선된 경우보다 더욱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헌신해야 합니다. 본인 스스로 된 것으로 오산하면 회원들의 관심과 더욱 멀어질 뿐입니다.
또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참신한 젊은 인재가 별똥별처럼 사라지는 광경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로 단체에 영입되어 활동하다가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스로 떠나기도 하고 제명되기도 합니다. 이런 갑작스런 인사의 변화는 그 단체가 얼마나 영속성이 부족하고, 존재 자체의 위기감도 존재하는지 보여줍니다. 때로는 사람이 없다고 걱정하는 리더들이 있습니다. 주제넘게 한 말씀 올리자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 보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경험은 부족해도 좋은 사람들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좋은 인재가 사라진 이유는 기존 리더와 함께 가고 싶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인들과 오랫동안 인터뷰를 해보면서 느낀 점은 정말 대단한 인재가 홍콩 한인사회에 많이 숨어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쓴 소리를 달갑지 않게 여기실 분도 계실 줄 압니다. 그 동안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광고 보이콧이나 여러 경험을 겪기도 했습니다. 수요저널은 한인 사회를 바로 보길 바라는 독자들과 커뮤니티를 위해 계속 정진할 것입니다.
연말연시 역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인 사회를 위해 각기 단체에서 좋은 인재를 찾아야 할 시기입니다. 동문, 문화체육, 종교 뿐만 아니라 작은 동우회까지도 리더 선출이 쉽지 않은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찾고, 권면하고, 새로운 인재를 발굴해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내년에도,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묵묵히 수고할 미래의 여러 단체장님들에게 미리 박수를 보냅니다.
글 손정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