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스마트 TV를 인터넷에 연결해서 온라인으로 영화를 보는 시대가 되었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의 비디오 및 DVD 대여점에서 영화를 빌려서 보곤 했습니다.
당시 한국에 으뜸과 버금이라는 이름의 비디오 및 DVD 대여 프랜차이즈 업체가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으뜸은 첫 번째, 버금은 두 번째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A가 B에 버금간다’라는 표현을 신문 등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B가 1등이라면 A는 2등이라는, 즉 A가 B보다는 못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종종 A가 B에 맞먹는다는 뜻으로 잘못 쓰이곤 하지요.
순우리말 ‘버금’에 해당되는 한자는 버금 아(亞) 입니다. 중국의 유교 철학자인 맹자(孟子)를 가리켜 아성(亞聖)이라고 하는데 이는 성인(聖人)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버금(亞)간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성인(聖人)은 공자를 가리키니 유교에서는 공자가 첫째, 맹자가 둘째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공자와 맹자를 묶은 공맹(孔孟)이라는 말에서도 맹(孟)은 공(孔) 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류(亞流)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이미 한 것을 따라하는 것을 뜻하며, 금속 원소인 아연(亞鉛)은 납(鉛, 납 연)은 아니지만 납과 비슷해 보인다는 뜻에서 그런 명칭이 붙었습니다.
한편 버금 아(亞)는 뜻과는 상관없이 음차용 글자로도 자주 쓰이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용법은 아마도 아세아(亞細亞)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은 Asia를 소리 나는 대로 아시아라고 쓰지만 예전에는 한자 음역어인 아세아(亞細亞)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한국에도 예전에 아세아자동차라는 자동차 제조사가 있었지요. 아시아의 동남쪽이라는 뜻의 동남아(東南亞)에도 당연히 버금 아(亞)가 음역자로 들어갑니다.
사족으로 한국어에서는 동남아라고 해서 동쪽이 먼저, 남쪽이 그 다음에 언급되지만 영어에서는 Southeast Asia라고 해서 남쪽(south)이 먼저, 동쪽(east)이 나중에 언급된다는 점에서 방위(方位)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홍콩의 침사추이에는 애슐리 로드(Ashley Road)라는 짧은 도로가 있는데 이 도로의 한자 표기인 亞士厘道(아사리도)에서도 버금 아(亞)가 음역자로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식당 밀집 지역이라 식사시간에 많이 붐비는 곳이지요. 애슐리 로드라는 이름은 영국 맨체스터 공항 근처의 애슐리(Ashley)라는 지역에서 따 온 명칭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