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층에 여럿이 모여 사는 홍콩 사람들, 이웃과의 친밀도는?
처음 홍콩에 와서 불편했던 것 중 하나는 이웃집에 우리 가정의 내부가 훤히 노출된다는 점이었다. 종종 옆집 아이와 눈이 마주쳐 인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홍콩 사람들은 이웃과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을까? 보통 한 층에 8 가구 정도가 몰려 사는 홍콩 아파트의 특성상 물리적 거리는 가깝다. 그러면 그만큼 심리적 거리도 가까운 것일까?
홍콩대학교에서 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이웃과의 친밀도에 있어서 ‘자주 인사를 주고 받는다’가 57%, ‘가끔씩 주고 받는다’ 28%, ‘매우 드물다’는 10%를 차지하였다.
‘전혀 인사를 주고받지 않는다’도 4%에 달했다.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대답으로는 ‘보통’이 81%, ‘소홀하다’는 8%, ‘매우 친밀하다’ 6%, 그리고 ‘관계가 매우 좋다’는 3%였다. 관계가 매우 좋지 않은 사람은 응답자 중 1% 미만이었다.
이 조사를 진행한 홍콩대 측은 홍콩인들이 이웃과 양호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상적인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부분 이웃과 인사를 하고 지내지만 실제로 알고 지내는 이웃은 평균적으로 네 가구가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도 생각해 보니 현재 알고 지내는 이웃은 두 집 뿐이다. 그 집 아저씨들하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반갑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오늘은 필자가 홍콩에서 경험한 이웃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서론이 길어졌다. 우리 학원 옆으로 이사 온 이웃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약 1년 전이었던 것 같다.
어학원 옆 음악 학원과의 불편한 동거
아침부터 이삿짐이 우리 학원 옆으로 분주히 들어갔다. ‘누가 이웃이 되려나?’ 옆 학원이 이사를 간 후 얼마간 비어 있던 공간은 곧 새 이웃에 의해 채워지고 있었다. 이윽고 짐들이 거의 다 들어가고 그 앞에는 입간판 하나가 세워졌다. 그런데, 앗?!
중국 문화 센터라고 쓰여 있었으나 보아하니 주요 과목은 악기 연주였다. 중국 전통 현악기인 구정, 얼후 등의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구정은 우리나라의 가야금과 비슷하게 생겼고 얼후는 2개의 줄을 활로 연주하는 악기이다.
우리 학원은 중국어 등 어학 위주라 경쟁 업체를 새 이웃으로 두게 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음악 학원이 들어섰다는 점이었다. 방음이 시원치 않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 교실에서 연주되는 악기 소리는 우리 학원의 수업에 영향을 줄 것이 뻔하였다.
새 이웃은 아직 짐도 풀지 않았건만 나에게는 벌써 우려의 그림자가 엄습해 왔다. 수강생들의 볼멘 소리와 결국 이들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영화의 예고편처럼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얼마 후, 결국 우려했던 악기 소리가 창문틈을 타고 우리 학원에 스며 들었다. 신경이 쓰인 나는 언제 터질지 모를 수강생들의 항의나 불만에 조마조마하여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옆집 음악 소리에 숨을 죽이며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반전을 선사한 음악 학원의 이국적 선율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옆 교실에서 연주되는 곡조는 수업 중이던 우리 교실까지 울려 퍼졌다. 이때였다. “와, 소리 참 좋네요!” 한 수강생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좋은 소리라고?’ 나도 곧 귀를 기울였다. 이제까지 같은 악기에서 나온 소리였건만 자세히 들어보니 확연히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동안의 걱정과 우려로 귀가 멀어 아름답고 이국적인 선율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이 수강생의 한마디는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마치 ‘네가 생각하는 단점이 사실은 장점이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후 나는 한술 더 떠 “우리 학원은 중국어 수업 때 중국 음악이 라이브로 깔립니다. 이런 데는 없쥬?”라고 능청을 떨기도 했다.
얼마 후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학원장을 만났다. 중년이지만 귀여운 외모를 간직한 중국 대륙 출신의 여성이었다. “우리 학원 옆으로 이사 왔을 때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수강생들이 음악 소리가 좋다 하네요.” 내 말에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아 다행이에요. 사실 저도 피해를 주지 않을까 우려했었거든요.”
새로 온 이웃은 나에게 반전 매력을 선사하였다. 반전은 우리가 보는 영화나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상했던 결과와는 완전 다르게 벌어지는 반전의 묘미가 우리의 삶에 재미를 더하는 것 같다.
아쉽게도 그 이웃은 1년만에 다시 떠났다. 최근의 코로나 사태를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전통 음악의 선율이 익숙해질 만하니 작별을 하게 되어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아직도 비어있는 그 공간이 허전하게 느껴진다. 결국 이웃 학원이 떠날 때까지 시끄럽다고 볼멘 소리를 하는 우리 수강생은 한 명도 없었다.
필자는 한국어 수업 시간에 새로 이사를 오면 떡을 돌리는 한국 문화를 소개하곤 한다. 그래서 생각난 것 - 내가 홍콩을 떠나기 전 해 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다.
이사를 했을 때 같은 층의 이웃들에게 떡을 돌리는 것이다. 한국 떡을 받아들면서 어리둥절해하는 홍콩 이웃들의 반응과 표정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