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한복판에서 홍콩 도시 전체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이 무더위를 잊게 해 줄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그 여러 가지 중에서 필자는 ‘납량 특집’이 생각난다. 그리고 ‘납량 특집’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전설의 고향> 아니겠는가.
그럼 우리가 발을 붙이고 있는 홍콩에는 어떤 전설들이 있을까. 오늘 이야기는 홍콩판 전설의 고향이다. 이곳의 유명한 이야기들을 모아 소개해 보겠다.
샤틴의 사자산 야외 공원의 홍무이(紅梅) 계곡 위에는 엄마가 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을 한, 높이 15미터 정도의 바위가 들어서있다. 해발 약 250미터 정도의 높이에 위치해 있는데 이 인근을 지나가게 되면 평지에서도 시야에 들어온다. 이것은 바로 2007년 네티즌들이 뽑은 <홍콩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석> 1위 ‘망부석’이다.
옛날 가난한 농촌의 가정에서 한 여자가 딸을 출산한다. 불행히도 얼마 후 그녀는 병이 들어 숨을 거두게 된다. 마침 이웃에 아들을 낳은 지 얼마 안 된 산모가 있었다. 그녀는 엄마를 잃은 여자 아이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아들과 함께 젖을 먹여 키운다.
같은 모유를 먹고 자란 두 아이는 서로 잘 어울리며 성장해 갔다. 이들이 6,7살이 되던 해, 여자 아이의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웃집 부부는 그 아이를 장래의 며느리, 즉 민며느리고 삼기 위해 데려와 기른다.
두 아이는 이후 부부의 연을 맺어 아들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어느 해, 흉년으로 인해 남편은 가족을 놔두고 바다로 나가 생계를 모색하게 된다. 하지만 집을 떠난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이때부터 큰 애는 등에 업고 작은 애는 손에 안은 채 비가 오나 눈이 오나(아, 홍콩은 눈이 안 온다) 산에 올라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기다림에 지쳐가던 어느 날, 비바람이 몰아치며 천둥 번개가 번쩍이더니 이들 모자는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의 망부석이 남아있게 된다. 사람들은 하늘이 감동하여 모자를 바위로 만들어 영원히 이곳을 지키도록 한 것이라며 말했고 이는 전설이 되어 후세에 전해진다.
이 전설도 홍콩 사람들 사이에 꽤나 유명하다. 800년 전, 송나라의 유명한 풍수대사 뢰포의(賴布衣)가 홍콩땅에 오게 되었는데 이런 말을 남긴다. “태평산(太平山, 빅토리아 피크)에 돌거북이가 한 마리 있는데 매년 1미터씩 산을 내려가고 있다. 그 돌거북이가 해면까지 내려와 바다에 입수하는 해에 홍콩은 침몰할 것이다!”
돌거북이 이야기는 1941년 여우리엔 출판사(友聯出版社)에서 출판한 <홍콩백년>에 실린 바 있고 이 전설은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다 몇 십년 후 다시 돌거북이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거론된다.
1997년, 바다를 메운 땅 위에 완차이의 컨벤션 센터가 문을 열었을 때이다. 이 컨벤션 센터가 모양이 거북이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재질은 돌로 만들어졌기에 이것이 바로 예언의 돌거북이라는 것이다.
1997년에는 아시아 경제 위기가 닥쳤고 몇 년 후 홍콩은 사스 사태를 맞기도 하였다. 이 전설은 돌거북이가 매년 조금씩 산을 올라가고 있으며 정상에 다다르면 홍콩이 침몰한다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도 갖고 있다.
뭐니뭐니 해도 <전설의 고향> 간판 스타는 구미호 아니겠는가. 그런데 홍콩의 전설 중에도 여우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필자가 이 얘기를 처음 들은 것은 홍콩 지인을 통해서인데 처음에는 황당하여 칼럼에 다루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전설을 수집하던 중, 호표별장(虎豹別墅)의 여우 이야기가 당시 홍콩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커다란 이슈가 된 사건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코스웨이 베이 부근 타이항에는 홍콩의 1급 보호 건축물로 남아있는 호표별장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예전에 많은 그림들이 있었는데 1981년의 어느 날, 한 직원이 벽화를 닦다가 7개의 여우 머리 형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이상히 여겨 상사에게 보고하였고 이들이 다시 왔을 때에는 그 형상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 일이 발생한 지 며칠 후, 인근의 윈저공작(溫莎公爵) 쇼핑몰의 석조 장식물에 일곱 마리 여우의 머리 그림자가 나타난다.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난 여우 그림자의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필자의 지인 중에도 당시 이 석조물을 보러 간 사람이 둘이나 되었다).
기자들까지 몰리고 언론에서 계속 관련 뉴스를 보도하자, 결국 이 쇼핑몰은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하루 동안 문을 닫는 해프닝까지 벌어진다. 그리고 이 쇼핑몰은 문제의 석조물을 다른 것으로 교체했는데 이후 장사가 매우 잘 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현재 코스웨이 베이의 이케아 맞은 편에 위치한 쇼핑몰 윈저 하우스(Windsor House)의 전신이다.
이 홍콩판 구미호는 몇몇 공포스런 이야기를 추가로 양산하며 더욱 유명해졌는데 노약자와 임산부를 위해 이쯤에서 접겠다(궁금한 분들은 인터넷을 찾아보시길). 그나저나 돌거북이는 정말 완차이 컨벤션 센터인 것일까? 아니면 지금도 빅토리아 피크 어디선가 내려오고 있는 중일까?
홍콩수요저널이 추천하는 집단 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