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는 <홍콩이야기>(香港故事, 三聯書店有限公司)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중국 신화사통신 기자가 홍콩을 취재하며 쓴 것을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이중 필자의 흥미를 끈 것이 홍콩의 옥상 문화인데 이 내용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홍콩을 ‘옥상의 도시’라고 부를 정도로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는 이 사회의 여러가지 모습이 담겨져 있다.
홍콩 옥상 문화의 시작은 1950년대로 거슬로 올라간다. 이를 언급하기 전에 그 당시 주택 상황을 잠시 살펴보자. 제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그리고 중국 대륙이 혼란을 겪으며 많은 인민들이 대거 홍콩으로 남하하였다.
이로인해 이곳은 갑작스런 인구 팽창을 겪게된다. 1950년대 홍콩의 인구가 급증하면서 주택 공급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다. 홍콩의 주택 공급 부족은 아마 이때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1953년 서구룡 지역의 셰킵메이(石硖尾)에서 대화재가 발생하여 무려 5만명이 생활의 터전을 잃게된다. 홍콩 정부는 1954년 이 지역에 6층으로 된 8개 동의 아파트를 지어 이재민들을 거주시켰다. 이것은 홍콩의 제1차 공공주택 건축 계획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홍콩 정부는 대규모의 공공 아파트 공급 사업 정책을 순차적으로 펼치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대규모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전, 홍콩에는 당루(唐樓) 형태의 가옥들이 많았다. 당루는 상업 및 주택 용도로 설계된 아파트 건물이다.
그 당시 많은 이민자들이 홍콩의 친척이나 친구가 살고 있는 당루의 옥상에 기거하게 된다. 많은 당루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공간 활용이 용이하였다. 이곳에 거주한 자들은 옥상에 농작물과 닭등의 가축을 기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홍콩의 곳곳에 공중 마을이 생겨나게 된다. 사람들은 여기에 모여 바람도 쐬고 한담을 나누었고 밤에는 달을 감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며 옥상은 지역 사회의 중심 역할을 한다.
1960년대는 홍콩 무술 도장의 황금 시대였다. 통계에 의하면 당시 400여개의 무술도장이 있었는데 그중 대다수는 임대료가 저렴한 옥상에 터를 잡았다. 필자가 재미있게 본 영화 <엽문>에도 옥상의 무술관이 스크린에 담겨져 있다. <엽문>은 이소룡 스승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로 올해 마지막 시리즈인 4편까지 상영되었다.
이소룡도 엽문의 가르침 아래 홍콩의 옥상에서 바람을 가르며 무공을 익혔을 것이다. 당시 저녁 때쯤이면 홍콩 곳곳의 옥상 무예관에서 힘찬 북소리와 함께 스승과 제자가 무술을 연마하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필자의 머릿속에는 무술 영화에 자주 나오는 도장 깨기가 떠올랐다. 다른 도장을 접수하는, 소위 말하는 도장 깨기를 하려면 일단 옥상으로 올라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때 ‘여긴 왜 이렇게 높은거야? 다른 데로 가자’라는 불평과 함께 발걸음을 돌리는 홍콩 코믹배우 주성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한편 1953년 셰킵메이의 대화재 이후 홍콩에는 대형 건물들이 들어선다. 그리고 ‘공중 학교’가 여기저기 세워지게 된다. 공중 학교는 옥상 학교를 말한다. 공중 학교는 당시 여러 상황으로 인해 기초 교육을 얻기 힘든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학교를 말한다. 이 학교들의 장점은 접근성이 좋고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것이다. 학교 시설은 낙후되었지만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는 끈끈했다고 한다.
요즘에 와서 옥상 도장, 옥상 학교는 더 이상 보기 어려워졌지만 홍콩 사람들은 다른 형태로 이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바베큐, 제사, 빨래 건조, 썬텐, 애완동물 기르기, 식물 재배 등 실로 다양하다.
코스웨이 베이의 히산 플레이스 (Hysan Place)의 38층에는 약 800평방미터의 옥상 정원이 마련되어 있다. 도시의 직장인들이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신이 재배한 식물들을 집에 가져가서 식탁 위에 올린다.
매년 세 번의 학기를 운영하여 재배 활동 신청자를 모집하는데 수백명이 몰려 추첨을 통해 100명을 선발한다고 한다. 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는 등의 재배 방법을 지도해주기도 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렇게 최근에도 옥상은 홍콩 사회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엽문> 외에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옥상이 무대로 종종 등장한다. <무간도>를 본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조폭 조직에 침투한 비밀 경찰 양조위와 그의 상관 황추생이 비밀리에 만나는 장소도 건물의 맨 윗층이다. 홍콩, 마카오를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 <도둑들>에도 옥상 장면이 등장한다.
공간과의 싸움을 벌이는 홍콩 사람들. 옥상 또한 오래전부터 이들의 생활 터전으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중심 역할을 했던 역사도 지니고 있다. 필자는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 올라 홍콩 사람들과 바베큐를 즐겨보고 싶다. 하늘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고개를 들면 밤하늘을 볼 수 있고, 아래로 시선을 향하면 널리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밤풍경을 감상하며 또 다른 홍콩을 경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