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한국에서는 직장인들을 현실적으로 다룬 ‘미생’이라는 드라마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종합상사를 배경으로 인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시기적절하게 이 시기에 ‘무역의 중심도시’ 홍콩에서 인턴생활을 하며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TV 속에서는 주인공 ‘장그래’는 “26살이 되도록 어떻게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냐”,“ 낙하산 인턴” 등의 소리를 들으며 스펙전쟁에서 밀립니다. 외국회사로부터 전화가 오면 어쩔 줄 몰라하며 다양한 외국어가 가능한 엘리트 동기 인턴 ‘안영이’에게 매달립니다. 드라마 속 장그래의 상황을 보면서 저 역시 처음 외국어로 전화를 받았을 때 수화기를 끊어버렸던 흑역사가 생각납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집값도 비싼 이곳 홍콩에서 사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죠. 현재 저는 한국에서 온 인턴 및 워홀러 5명과 함께 조던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건 4개월 간 동고동락하며 느꼈던 에피소드와 고충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첫번째는 언어적 장벽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친구들의 말로 빌면 같은 회사의 홍콩친구들이 말을 걸 때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워 들어야 한다며, 심지어 ‘귀털’까지 다 세워 들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한동안 웃었지만 다들 동감을 했다는 말이니 사실은 되게 슬픈 소리죠. 일을 해야 하는데 말이 안 통한다는 건 상대편도 내 쪽도 엄청 답답한 일이니까요.
두번째 웃긴 에피소드는 저희 집에는 요식업체에 일하는 친구 두 명 이야기인데요. 이 중 한 친구는 저와 같은 방에서 지내지요. 요식업체는 다른 업종보다 육체적으로 더 고됨을 이 친구를 보며 뼈저리게 느낍니다. 사실 이 친구는 일이 끝난 새벽 늦게 들어와서 잠잘 때가 아니면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어떨 때는 피곤해 씻지도 못하고 바로 자 버린모습을 보면 마음이 딱할 때가 많았죠. 한 번은 잠꼬대를 하는데 식당에서 주문 받는 꿈을 꿨는지 “Two Glasses?”라고 하더군요. 잠결에 빈컵을 내밀듯 제 얼굴도 같이 민다든가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참 많습니다.
저희는 사회인도 아닌 학생신분도 마치지 못한, 고작 23살 먹은 젊은이입니다. 하지만 어리기에 홍콩이라는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 폭은 더 크다 생각합니다.
저는 난생처음으로 광고비 수금을 해 봤고, 한 친구는 직접 법인설립의 자료들을 들고 왔다갔다 하고, 한 친구는 수천, 수억 원의 보석을 주물렀습니다. 또 어떤 친구는 식당가구부터 셋팅까지 하나의 식당이 개업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아직 초보인 저희에겐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크고 고민이 더 많을수록 저희는 더 많이 성장하고 있다고 자신합니다.
사실 홍콩에서 너무나 똑똑한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에 반해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상실감과 처음 겪어보는 외로움같은 감정들을 겪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전과 비교하면 많이 성장한 모습을 서로 느끼고 있습니다.
각자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홍콩에서의 일들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먼훗날 6명이 한자리에 모여 웃으면서 맥주 한잔하면서 ‘그땐 그랬지 하면서’ 웃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말입니다. 이제 두 달 뒤면 저희는 이곳을 떠나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미생’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아직 다 미생이다. 완생으로 가기 위한 미생”.여기서 미생(未生)은 바둑에서 쓰이는 용어로 ‘완전히 죽은 돌이 아닌 완생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돌’이며, 완생(完生)은 ‘외부로 향한 활로가 막혀도 죽지 않는 상태의 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만약 이곳에서 좋은 학벌에, 유창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더라면 인생이 너무 재미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상실감이 필요하며, 상실감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생각합니다. 또한 진정으로 밑으로 가라앉았을 때 비로소 나를 볼 수 있게 되며,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아직 미생이라는 점에 감사합니다.
글 한지은 (수요저널 인턴기자, 조던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