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병사 군생활수기] 틈바구니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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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병사 군생활수기] 틈바구니는 싫다




따뜻한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줄로만 알았던 11살짜리 꼬마는 자신의 여행가방을 들고 낯선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됩니다.

2001년 겨울, 가족들과 홍콩으로 이민 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웠던 그 곳, 한국에서 불과 4시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한국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어린 저에겐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홍콩에서 저는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조심스레 한발 한발 적응해 나갔습니다.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도 가능해졌고 몇몇 외국인 친구도 사귀었고 홍콩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서 먹거리, 볼거리를 두루 경험하며 홍콩이라는 곳이 이제야 조금은 집같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전 항상 한국에서의 삶을 동경했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특히 그 때 당시 홍콩은 한류 열풍에 휩싸여 있어서 제 자긍심이 배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드라마 '대장금'을 시작으로 홍콩 지상파에 봇물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한국드라마들, 한국 연예인과 중국어로 리메이크된 K-POP이 그 이유였을지도 모릅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택시기사와 박지성 얘기로 친해졌던 기억, 외국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한국음식을 대접해주었는데 매워서 어쩔 줄 몰라하던 기억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해주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어떨까?' 라는 제 궁금증은 한국에서 살지 않고선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전 한국의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한국국제고등학교(홍콩한국국제학교 고등부 ; 편집자주)로 진학했고 입시준비를 꾸준히 한 덕에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해외의 틈바구니 속에서 확실한 소속감이 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친구들과 공부도 해보고 술도 마시며 대학생활에 젖어가는 듯 했지만 한국에서만 쭉 살아온 그들과 제 사이엔 정서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을 찾기 위해 군대라는 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찾았을 때 한국인으로서 더욱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곳에 뿌리내리고 살 수 있다면 해외에서 일하게 되더라도 나의 소속감은 확실하기 때문에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일할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입대하고 나서 처음으로 제가 군인이라 느낀 것은 행군을 하다가 '군인 아저씨들 고마워요. 아저씨들 덕분에 우리가 두발 뻗고 잘 수 있어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이 말은 나로 하여금 내 직업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게 해주었습니다.

 훈련소 수료 후 내가 도착한 부대는 수도방위사령부 예하부대인 52사단 기동대대였습니다.

직할대 중 유일한 전투부대라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하는 중요한 부대입니다.

작전지역이 도심지역이라 민간인과 접촉할 기회가 있어 보초를 서다 한 중년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중년부부는 저에게 고생한다며 커피사탕 몇 알을 건네주었습니다. 난 감동을 받았고 동시에 제가 없다면 이 사람들이 그리고 내 가족들이 무사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각심을 느낀 전 군생활에 충실히 임해야겠다고 생각했고 GOP나 서해5도에 있지는 않지만 수도서울을 방어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복무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현재 제 군생활은 상당히 희망적입니다. 두꺼비란 귀여운 별명도 생겼고 홍콩에서 왔다며 나에게 관심을 주어 빠르게 부대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요즘 느끼는 것은 군대도 사람사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군인들은 생각도 많고 감정도 풍부한, 부모님을 갓 떠나온 20대 청년일 뿐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군대, 그리고 그 안에 살며 조국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우리 군인들이 아름답게만 느껴집니다.

군대는 어린시절 내가 홍콩에서 영상매체로만 봐왔던 한국의 모습을 띄고 있진 않지만 해외에서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군인들이 이면에서 땀흘린 결과의 산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국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때면 난 이미 토박이 한국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다른 그 무언가를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더 이상 나는 해외와 대한민국의 틈바구니속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 글  김민재 일병 52사단 (홍콩영주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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