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본에서 태평양 연안의 아름다운 도시를 꼽으라면 당연 센다이다. 센다이는 15세기 일본戰國 유명한 애꾸눈 영웅 다테마사무네의 영지이다.
센다이에는 "마츠시마"라는 절경이 있다. 바다위에 떠 있는 수많은 소나무섬은 그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더구나 센다이 어느 절에는 수령이 400년 이상 되었다는 매화가 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다테마사무네가 전리품으로 조선에서 가지고 와서 심었다는 전설이었다. 요즈음 센다이는 중국의 관광객이 방문하는데 특히 센다이 시내에 있는 국립동북대학을 찾아온다고 한다. 이 대학의 정문에 들어가다 보면 낯익은 동상이 있다. 魯迅선생이다.
20세기 초 중국 절강성 소흥출신의 노신(본명 周樹人)은 당시 많은 중국의 젊은이와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우선 東京홍문학원에 적을 두고 일본어를 배웠다. 일본어를 배운 후 그가 선택한 것은 센다이의 동북대학의 의학부였다. 노신은 중국을 개화시키기 위해 서양의학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明治유신이 빠르게 성공한 것은 당시 일본에 드나들었던 화란의 의사들로 통해 전수된 "난학"이 밑받침이 되었다고 믿었다. 중국도 의학을 통해 서양의 문명이 들어오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의과대학을 2년까지 다니다가 자퇴해버린다. 아무래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퇴의 직접적인 이유는 중국을 개방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학학문보다는 文學이다 라는 생각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노신이 다닌 의과대학에서 세균학 수업시간에는 슬라이드가 교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때때로 시간이 남을 경우 당시 중국동북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던 노일전쟁의 현장 사진을 슬라이드로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 속에는 일본군인이 중국인을 러시아의 스파이로 체포하여 처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많은 중국인을 보고 노신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노신은 중국인의 마음을 치료해야겠다고 결심하여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의 길을 들어섰다는 것이다. 노신은 일단 귀국하여 동생 周作人 함께 다시 일본으로 들어와서 독일어 등 외국어를 배워서 문학활동을 전개하여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자의 한사람이 된 것이다.
글쓴이 유주열은, 홍콩과 일본에서 근무할 당시 틈틈이 써서 <수요저널>에 기고한 글들을 묶어[동북아시대를 살아가는 홍콩, 중국, 일본 문화기행을]을 출간했고, 베이징 주재 총영사로 근무하면서 쓴 글들을 묶어 두 번째 책 [총영사 유주열의 중국문화읽기]를 출간했다. 이 책들은 국내서점과 인터넷서점을 통해서 구입이 가능하다. 이 책의 구입을 원하는 독자들은 emilylee@hkstar.com으로 연락하면 도움 받을 수 있다.
유주열(전 베이징주재 총영사)
yuzuyoul@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