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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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과 파리 영국의 작가 찰스디킨즈가 1859년 불란서혁명 전후의 파리와 혁명을 거치지 않은 런던을 비교해 “두 도시의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를 저술한 후, 150년간 세계 각지에서 이런 제목의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어디에서도 두 도시 이야기를 쓸 수 있다. 비슷한 처지에서 서로 비교하며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라면 인천과 부산을 비교할 수도 있고 대구와 광주를 비교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는 홍콩과 상하이가 자주 이런 제목으로 등장했다. 본래 홍콩은 조그만 어촌에서 아편전쟁후 홍콩섬이 영국에 할양됨에 따라 유명해졌지만 홍콩이 오늘의 홍콩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1949년 신중국이 성립돼 상하이의 많은 인재와 자본이 홍콩으로 흘러들어 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사실 상하이는 양쯔강과 바다가 만나는 중국 제일의 무역항이다. 20세기 서양 열강세력이 상하이를 조계지역으로 분활 함에 따라 상하이는 정치적으로 주권을 잃은 암울한 시대였지만 경제적으로는 자유무역항으로서 지금의 홍콩과 같은 시대로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 상하이가 공산주의에 의한 신중국 성립으로 자본주의 활동이 어려워짐에 따라 많은 상하이의 대자본주들이 홍콩으로 떠나게 된다. 지금 홍콩의 행정장관인 퉁치화도 1940년대 후반 선박왕으로 유명했던 그의 아버지가 상하이를 떠나는 바람에 10대 소년으로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건너오게 된 것이다. 香港과 上海 1950년 한국전쟁, 1980년대 월남전쟁 등으로 홍콩은 전쟁 수요의 이점을 이용 크게 발전, 도시국가이면서 아시아 4마리의 용(龍)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고 一國兩制(one country two systems)로 전환됨에 따라 홍콩은 옛날의 영광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다. 반면에 중국은 등소평이라는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 개혁개방정책이 추진됐고, 외국인들이 상하이에서 자본주의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잠재력이 높은 중국에 대한 외국자본의“러쉬”는 중국이 세계의 자본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세계 최대의 외국자본 투자대상국이 된 것이다. 상하이는 하루가 다르게 현대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 홍콩의 대기업들은“상하이 회귀”에 관심을 갖게 되고 대상하이투자에 홍콩의 자본이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과 상하이 두 도시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東京과 大阪 일본에도 최근 “두 도시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의 두 도시 이야기는 토오쿄(東京)와 오오사카(大阪)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교오토와 오오사카를 중심으로 간사이(關西)지역이 천황의 존재와 함께 정치, 경제의 중심이었으나 명치유신이후 당시 에도(江戶)로 천도함에 따라 東京이 새로이 정치의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일본에는 정치의 중심 東京과 경제의 중심 大阪 등 2개의 축으로 된 나라라고 이야기하였다. 오오사카와 토오쿄가 간사이(關西)와 간토오(關東)로 구별되면서 두 도시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40년 전 일본에 처음으로 신간센이 개통된 것도 토오쿄와 오오사카를 빠르게 연결코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거품붕괴로“잃어버린 10年”의 이야기와 함께 오오사카 경제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토오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나 그런대로 수도기능으로 기본경제는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틈을 내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나고야를 중심으로 하는 토오카이(東海)지역이다. 東海지역이라면 아이치현, 기후현, 미에현 등 태평양 연안의 3개 현이 중심이 된다. 토오카이 지역이 오오사카 중심으로 하는 간사이 지역을 추월코자 추월선에 들어선 격이 되었다. 大阪와 名古屋 간사이의 오오사카와 토오카이의 나고야 “두 도시 이야기”가 요즘 부쩍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간사이라고 하면 2府 4県 즉, 오오사카府, 京都府, 효고현, 시가현, 와카야마현, 나라현 등이다. 실질적으로 이 지역 전체의 인구는 1,980만 명이고 지역내 총생산은 83.8조엔(캐나다 GDP와 유사)이지만 토오카이 지역 3현은 인구 1,110만 명, 역내 총생산 47.9조엔 밖에 되지 않는다. 토오카이 지역은 인구와 총생산에서 간사이 지역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두 도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불황의 늪에 빠져 再生될 기회가 보이지 않는 간사이 지역의 자학적인 조바심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더구나 東海지역은 여타지역이 잃어버린 10년으로 어려워할 때 토요타를 중심으로 하는 자동차산업이 꾸준히 성장해 왔던 것도 이유가 된다. 한 때 토요타는 국내외 공장의 흑자가 일본의 전통적인 전기제품에서 잃어버린 적자를 메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토요타자동차산업의 부품을 실어내는 나고야 항이 IT중심의 토오쿄 항을 제치고 전국 1위로 부상한 지도 3년이 된다. 간사이 지역의 경제인들이 “나고야(東海) 위협론”을 들먹이며 걱정하는 이유가 또 있다. 간사이 지역 2부 4현의 제조품 출하액이 인구 및 GDP 절반 밖에 안 되는 東海 3현의 출하액에 뒤지기 시작한 때문이다. 2001년 출하액이 46.1조엔으로 같은 기간 東海의 47.2조엔에 뒤졌다는 것이다. 간사이의 주요제품이 철강, 섬유 등 사양산업인 점에 비해 東海는 자동차 관련 산업으로 든든하게 받쳐지고 있다. 또 하나, 위협적인 것은 東海지역이 2005년 중부신국제공항과 세계박람회(아이치만박) 등 2개 거대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시설투자 등 끊임없는 성장을 하고 있는 반면, 간사이는 이렇다 할 프로젝트가 없다는 것이다. 나고야역에는 역세권 개발로 55층 규모의 거대한 쌍둥이 건물이 버티고 있다. 신간센을 타고 토오쿄 또는 오오사카에서 나고야역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쌍둥이 건물에 압도된다. 그뿐 아니라, 그 옆에 토요타가 55층의 본사건물을 짓고 있다. 2006년 완성될 경우 나고야역을 중심으로 하는 나고야맨하턴은 새롭게 발전하는 東海의 얼굴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오오사카는 경제불황으로 토오쿄쪽으로 본사를 옮기거나 오오사카 본사를 폐쇄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그러나, 나고야에는 새로운 회사가 들어오고 있다. 토요타 경우에도 지금까지 분산 처리되던 국제무역 등 제반업무를 준공되는 나고야 본사에서 전부처리하게 된다. 나고야의 두 마리 용 과거 나고야 공항은 활주로가 짧아 연료를 가득 실은 보잉점보기가 미국 동부에 논스톱으로 가지 못했다. 그러나, 나고야시 남쪽 35km 이세만(伊勢灣)해상에서 건설되고 있는 중부신공항은 활주로가 길고(3500m) 제반시설이 좋아 24시간 세계 어디로든 이어지고 여객기와 화물기가 끊임없이 출입하게 되어 있다. 토요타사의 자금이 많이 투입된 중부신공항의 공항건설에도 토요타출신 사장이 취임, 합리적인 경영방식의 “토요타방식”으로 건설하고 있어 착륙료(landing fee)를 나리타, 간사이공항보다 대폭 낮게 책정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항공사가 2005년 2월부터는 착륙료 세계 톱의 간사이공항보다 중부신공항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간사이의 기업들도 화물운반 위치를 고려, 교오토와 시가현 등 나고야 인근지역 경우에 간사이공항보다 중부신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스톤컨설팅그룹이 일본에서 토오쿄 다음으로 사무실을 오오사카가 아니고 나고야에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일본 경제단체의 최고책임자 즉, 재계의 총리라고 부르는 經團連의 회장에 간사이출신 기업인은 한사람도 역임한 바 없었다고 하나 나고야지역에는 2사람 째라고 한다. 그것도 토요타社에서 모두 배출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의 오쿠다(奧田碩) 회장은 토요타그룹의 회장이기도 하다. 또 하나, 오오사카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오오사카에 본사를 갖고 있는 전기제품회사 샤프(Sharp)社가 액정TV공장을 간사이가 아니고 東海지역인 미에현 가메야마(龜山)시에 공장을 지었다는 것이다. 太田 오오사카 지사가 그렇게 말렸다고 하는데 당시 北川 미에현 지사의 특별한 유치 인센티브에 샤프사가 대만족하여 미에현에 공장을 설치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오오사카로서는 오키나와를 제외한 전국 1위의 실업률 불명예를 덜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잃은 것이다. 오오사카 상공인들은 이러한 실책을 들어 과거 통산성 출신의 여성지사인 오오타(太田) 지사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太田 지사는 지난 2月1日 선거에서 큰 표 차이로 재선됐다. 투표율이 저조와 유권자의 냉소적 반응이 오오타 지사의 재선을 도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오사카도 희망은 있다. 새로운 三種의 神器로 알려진 디지털카메라, DVD, 薄型프라즈마TV 등을 생산하는 오오사카 지역의 마츠시다(松下)전기회사가 제대로 가동된다면 東海지역의 추월은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나고야 회귀론 그러나, 東海지역 사람들은 나고야의 이러한 현상을 “나고야회귀”라고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일본 역사에서 天皇을 제외한 전국시대의 영웅들의 대부분이 東海지역 출신이기 때문이다.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토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 3대 영웅이 모두 이 지역 출신인데 3명 모두 자신의 출신지 東海지역을 떠났다. 2명은 간사이로 1명은 간토로 간 것이다. 오다노부나가는 시가현의 安土城에서, 토요토미히데요시는 大阪城을 중심으로 천하를 지배했다. 그리고 도쿠가와이에야스는 에도(江戶), 지금의 토오쿄에서 260년간의 幕府武人정치를 했다. 나고야의 번성은, 이제 나라의 운이 이 지역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일본의 행정수도가 중부지역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중부지역은 지리적으로 일본의 중심도 되지만 과거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 2005년 세계박람회 개막과 중부신공항의 개항 등 양대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東海지역이 오오사카를 中心으로 하는 간사이 지역을 앞설 것인가는 미지수다. 나고야지역 사람들은 양대 프로젝트가 두 마리의 용처럼 더 많은 구름과 천둥을 몰고 와 이 지역을 번영시켜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두 도시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유주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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