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社와 銅鏡
일본을 처음 여행하는 사람은 시내 구석구석에서 진자(神社)라는 것을 보게된다. 神社는 본래 자연숭배사상에서 나온 多神敎的인 신성한 장소를 일컬어 왔다. 지금은 일본고유의 종교인 神道와 관련되는 일종의 사당이다. 불교의 절에 가면 大雄殿이 있고 그 안을 보면 부처님이 계신다. 그리고 교회나 성당에 가면 예수님의 상이나 성모 마리아상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神社에는 “미타마시로”(御靈代)라 하여 多神的 영혼 대신에 칼, 畵像 등이 모셔져 있는데 대부분 거울이 대신하고 있다. 거울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유리 거울이 아니고 구리를 반짝반짝 닦아서 만든 銅鏡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구리에다 아연을 넣은 白銅鏡이다. 어두침침한데 놓여져 있으면 빛을 내지 않지만 햇볕을 받으면 눈부시게 반사하는 것이 거울이다. 옛날에는 유리가 없었으므로 청동을 평면으로 하여 잘 닦으면 거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왜 거울이 神社의 正殿에 모셔져 있는 것일까. 옛날에 거울의 의미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무령왕과 銅鏡
30년 전 충청남도 公州에서 큰비가 내려 흙이 무너져서 그 속에 감추어진 왕릉이 노출되었다. 급하게 발굴해 보니 백제의 무령왕릉이었다. 무령왕이 누워있는 얼굴 부분에서 靑銅鏡이 나왔다. 거울로 얼굴을 덮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죽은 임금의 얼굴에 왜 청동거울을 덮었을까. 당시 거울은 왕권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청동거울 뒷면에는 많은 길상무늬, 또는 왕권을 상징하는 무늬와 함께 툭 튀어나온 돌기가 있다. 돌기에 구멍이 나서 구멍을 통해 거울을 걸 수 있게 되어있다. 사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거울의 뒷면 돌기에 가죽끈 일부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본래 가죽끈으로 거울을 매달았다는 것이 된다. 무령왕은 거울을 목에 걸었다는 설명이다. 거울을 목에 걸고 백성 앞에 나타나면 거울에 빛이 반사되어 임금을 자세히 볼 수 없게 되고 그 신과 같은 신성스러움으로 백성들은 저절로 복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울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것은 일찌기 중국에서 시작되었겠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열도에도 왕권을 상징하는 거울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특히 거울뒷면의 왕권을 지켜주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세발 까마귀, 즉 三足烏가 있었다. 삼족오는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으니까 왕이 三足烏를 통해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것으로 왕의 말은 하늘의 말로 이해하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거울과 똑같은 것이 일본의 仁?천황 무덤에서도 나왔다. 그래서인지 당시 백제 왕가와 일본 천황가의 밀접한 관계를 말하기도 한다. 하여튼 일본의 개국신화에는 3種의 神器가 있다. 일본 천황이 3가지 물건을 신으로부터 받아 일본국을 건설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거울, 칼, 곡옥(曲玉)이다. 하늘로부터 가져왔다고 하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당시 한반도 왕국에서 청동거울이 왕권의 상징으로 쓰여 졌던 것으로 보아 日本 천황가가 거울 등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에 건너와 원주민이었던 죠몬진을 제압하고 나라를 건설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神社에 3종 신기를 모시고 있는 것도 천황가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신사는 일본에서 왕권이 강했던 平安시대에는 官社라 하여 공공기관의 일종이 되기도 하였다. 그 후 불교가 전래되고 처음에는 불교사찰이 官社의 부속건물로 되었다가 차츰 승려의 지위가 강해짐에 따라 거꾸로 神社가 사찰의 경내 부속으로 전락되기도 하였다. 그랬던 것이 明治유신 이후 에도시대 幕府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을 천황가에 옮기는 작업으로 천황가와 관련되는 신사를 확대하고 천황가의 상징인 거울, 즉 “카가미”(鏡)를 제작, 봉헌했다고 한다. “카가미"는 직경 한자(30cm)가 되는 것이 가장 크다고 하는데 지금 일본 미에현의 伊勢神宮에 있는 것이 가장 크고, 대개 일반 神社에는 직경 22cm 정도의 카가미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일본의 종교식민지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하여 서구의 발달된 군사무기를 통하여 인근국가를 일시적이나마 식민지화 또는 점령, 지배하였다. 당시 아시아의 대부분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인을 서양의 식민지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이 하나의 名分이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 大東亞공영권을 만들어 아시아인 전체의 번영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프랑스의 세력을, 인도네시아에서는 네덜란드, 버마에서는 영국의 세력을 몰아냈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를 서양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다고 하면서 오히려 새로운 지배자로 군림하였다. 일본은 본래 자원이 빈약한 나라다. 전쟁을 수행하느라고 현지의 착취도 대단하였다. 일본인들은 가는 곳마다 자신들의 고유종교라고 생각하는 神道를 보급하고 神社를 현지에 세웠다. 일본이 지배하는 아시아 곳곳에 神社를 짓고 현지의 아시아인들로 하여금 神社 참배를 강요하였다고 한다. 한반도를 지배할 때 서울 남산에 거대한 “조선신사”를 지어 모든 사람을 강제적으로 참배케 하였다. 서울뿐 아니고 지방도시에도 신사가 있었다. 神社를 통한 아시아인의 지배는 결국 아시아인의 종교를 빼앗아 마음으로부터 저항을 가져오게 하였는지 모른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