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우(相撲) 이야기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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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우(相撲) 이야기 上

스모우와 씨름 일본의 文化는 동양의 것이지만 중국, 한국과 다른 것이 많다. 대륙에서 수입은 했지만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려 대륙에서도 다시 逆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본 文化가 많다. 그중 가장 일본적인 것이 “스모우(相撲)"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씨름과 비슷하고 부르는 말도 씨름, 스모우, 어떻게 풀어쓰다 보면 어원적으로 同源처럼 보인다. 그러나 복잡한 우리의 씨름과 많이 다른 것 같다. 물론 어찌보면 힘겨루기로 보이는 스모우는 씨름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는지 모른다. 인류가 살면서 원시시대에는 힘을 잘 쓰는 사람이 존경을 받았다. 큰비가 와서 밭에 바위돌이 떠내려 왔을 때 그 돌을 얼른 들어다가 논 밖으로 던져 낸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이 없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에서는 사나이들이 큰 돌 들기시합을 한다. 또한 사냥감으로 곰 같은 큰 동물을 잡았다면 그 곰을 들쳐메고 마을로 가지고 올 수 있는 사람이 제일 훌륭해 보였을 것이다. 스모우는 당초 이러한 큰 힘을 가진 力士들이 東西로 나누어 싸우면서 힘을 겨루어 농사의 풍작을 기원한 데서 유래하였다. 인간은 싸우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 스모우가 그 본능을 대신 해준다. 일본 귀족들은 대리만족을 주는 스모우 선수를 오랫동안 양성해 왔다. 平安시대와 平成의 스모우 일본의 平安시대에 벌써 스모우 체계가 잡혔다고 하니, 平成의 지금으로부터 보면 1,500년은 된 것 같다. 뿐만 아니라 東西 2명의 力士를 소개, 불러내는 요비다시(呼出)와 시합을 주관하고 승패를 판정하는 교지(行司)라는 사람은 平安시대 복장을 하고 있는데, 교지는 심판과 함께 부채모양의 군바이(軍配)를 들고나와 시합을 주관한다. 물론 교지도 랭크가 있어 선수의 랭크에 따라 교지도, 입고 나오는 의상의 색깔도 다르다. 또한 심판원 5명이 주위에 따로 포진되어 있다. 모든 격식이 1,000여년 전의 것을 이어받고 있다. 일본의 전통 스포츠로 자리잡은 스모우는 헤야(部屋)라고 부르는 私設수련장에서 가르친다. 力士 경험을 가진 선생을 오야카타(親方)라고 하여 15세 이상 되어 스모우를 배우러 온 소년을 합숙으로 가르친다. 문자 그대로 오야카타는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오야카타의 부인은 오카미(女將)라고 불리워지는데 어머니 역할을 한다. 오야카타의 이름을 딴 헤야에 수십명이 매일 훈련을 한다. 스모우 선수는 배가 불룩하고 몸집이 크다. 처음부터 그렇게 큰 사람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창코”라는 특별한 음식을 먹으면 몸집이 그렇게 된다고 한다. “스모우도리”라고 하는 스모우를 배우는 젊은이들은 “창코”라는 음식을 하루 두 번 먹고 훈련한다. 그들의 일상을 보면 아침 일찍 기상하여 2시간 정도 “아사케이코”(朝稽古)라는 아침운동을 한다. 그러면 훈련생중 신참 등이 “창코”를 준비한다. 창코는 우리식으로 보면 잡탕죽이다. 주로 야채와 생선이 많이 들어가고 육류도 있다. 밥대신 질퍽한 죽을 먹는 셈이다. 아침식사는 오전 10-11시경. 끝나면 晝寢이라는 낮잠을 2시간 정도 잔다. 그리고 자유시간을 갖고 저녁을 먹는식으로 하루 2끼로 끝낸다. 거구를 움직이기 위해 하루 3끼를 먹는 사람보다 더 먹어야 할 것으로 보지만 오히려 끼니수는 적다. 씨름선수 金成澤과 스모우도리 카스가오(春日王) 나고야 근처 이치노미야(一宮)시에 카스가야마베야(春日山部屋)라는 스모우를 가르치는 이러한 사설수련장이 있다. 春日山는 한때 이름있는 力士였다. 그의 門下에 한국의 씨름선수가 입문하였다. 1998년이므로 지금부터 4년전이다. 金成澤. 그는 부평출신으로 인하대학의 무제한급 씨름선수였다. 체구가 장대하고 기술도 뛰어나 무제한급 챔피언도 되었다. 春日山는 김성택을 눈여겨 보고 일본 씨름판인 스모우계에 입적시켰다. 金成澤은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은 효심에서 김성택은 4년간 피나는 훈련을 하였다. 한국 씨름과 일본의 스모우는 다른점이 많다. 金成澤은 자신이 한국 씨름판에서 배운 씨름 습관을 떨쳐 버리고 스모우의 새로운 기법을 익히기 위해 애를 썼다. 한국 씨름은 유도처럼 잡고 끌어당겨 쓰러뜨린다는 기본원칙이 있지만, 스모우는 격돌의 미학이라고 할 정도로 두 거구가 바로 부딪혀 빠른 속도로 서로를 밀어낸다. 스모우에서는 48개의 수로 이기고 지고 하지만, 대개 오시다시(押出)나 쯔키다시(突出) 등 빠른 속도로 상대를 두손으로 쳐서 밀어내어 승리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한국 씨름이나 유도의 土俵(씨름판 또는 유도판)가 비교적 넓어 밀어보아야 자빠지게 하지 않는한 의미가 없다. 그러나 스모우의 土俵는 직경 4.55m로 매우 좁다. 약간 밀려 土俵 밖으로 발이 나가면 그만 지게된다. 좁은 土俵에서 상대편의 샅바를 잡고자하면 상대편을 그것을 피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리듬이 깨져 상대편의 역공을 받아 중심을 잡기전에 좁은 土俵 밖으로 밀려 나간다. 승부는 싱거울 정도로 간단히 끝난다. 이러한 기본성격의 차이로 우리나라에서 대성한 씨름선수가 일본 스모우계에 진출, 일본 스모우를 제압코자 하나 대체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중량급 이상의 유도선수도 스모우계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에 이러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으로 일본 스모우계에서 성공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고 한다. 김성택군이 우리나라의 해방 이후 씨름선수로 스모우계에 진출, 4년의 각고 끝에 처음으로 쥬료우라는 세키도리로 승진하였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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