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맛) 트레일 (10) 味食家 중국선비(儒學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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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맛) 트레일 (10) 味食家 중국선비(儒學者)

중국음식은 퓨전음식이다. 서양음식은 재료 하나 하나 별도로 요리하여 먹지만 중국음식은 2가지이상 재료를 동시에 요리하여 각자 재료의 특성이 서로 퓨전되도록 한다. 돼지고기와 죽순을 동시에 요리하면 죽순향이 돼지고기에 고루 스며들어 돼지고기 맛이 향긋해진다. 죽순도 돼지고기의 육향이 베어있어 새로운 맛을 내게 한다. 현재 중국음식 대부분은 찬 음식이 아니고 더운 음식이다. 그러나 漢代에서는 지금과는 달리 찬 음식이 주를 이루고 더운 음식이 추가로 보태졌다. 우리가 지금 쓰는 가마솥은 중국의 六朝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六朝 시대에도 북방의 식료가 부족해서 하루 2끼(一日二食)밖에 먹지 않았다고 한다. (一日三食이 된 것은 明代에 와서였다) 중국 요리가 화력을 이용하여 오늘날처럼 된 것은 宋대에 와서였다고 한다. 석탄이 발견되어 연료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 그 당시였다고 하니 지금처럼 장시간 끓일 수 있는 火力이야말로 중국음식을 퓨전화하여 새로운 맛을 내게하고 소화하기 쉬운 요리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중국의 유학은 서양처럼 금욕의 사상이 없다. 사람의 쾌락과 욕망이 인간의 생명을 충실히 하는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 욕구의 식욕과 미각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미각이 원하는 바를 따라 열심히 쫓아 갔다. 돈있고 지위가 있는 지도 계층들의 사상이 이러하니 산과 바다에서 나오는 맛있는 珍味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유학자들은 모이면 孔子, 孟子를 논하지만 출출한 시장기를 잊기 위해 먹는데도 신경을 썼던 것 같다. 食在福建 중국의 동남쪽에 복건성이 있다. 복건성은 중원의 난리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숨어살던 곳이다. 그들이 숨어살면서 가지고 온 언어를 그대로 전수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지금도 복건성의 방언은 옛 중국의 표준말이라고 한다. 복건성의 동남지역은 남중국해에 면하고 있고 서북지역은 높은 산이 많다. 따라서 바다에서 나오는 음식재료, 산에서 나오는 재료가 풍부하다. 文子 그대로 山珍海味의 고향이다. 일반적으로 物産이 풍부하므로 흉년이 들어도 끼니 걱정을 하지 않는다. 바다에 나가면 생선이며 조개류가 흔하고 산으로 들어가면 각종 열매며 죽순등이 흔하다. 기후가 온난하고 토질도 좋아 곡식이며 야채등 밭작물도 풍부하다. 그래서 食在福建할 정도였고 복건성의 별명의 閩을 붙여 閩菜가 세상에서 으뜸이라고 한다. 閩菜중에 佛跳墻이라는 음식이 있다. 글자대로 해석하면 佛 즉 佛徒(스님)가 담장을 넘어 간다는 뜻이다. 스님이 담을 넘을 정도의 기막힌 사연이 담겨있는 요리이다. 佛跳牆 복건성의 福州인근에 사는 유학자들이 詩會를 하였다. 보통 詩會는 수일간 걸린다. 詩會의 마지막 날 서로의 時를 품평하면서 뭔가 특별한 파티(宴)를 생각하였다. 詩會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하나씩 음식 재료를 가지고 오게 하였다. 詩會에 참석하는 선비들이 가지고 온 물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말린 전복 상어 지느러미 해삼 사슴의 아킬레스 腱 물고기 부레 조개 말린 것 훈제 돼지고기 (햄) 감귤의 껍질 자라 버섯 죽순 기타 한약재 다수 주최측은 큰 오지 그릇에 이러한 재료를 몽땅 넣고 3일 밤낮을 끓였다. 재료가 점점 익으면서 냄새가 인근을 진동하였다. 마침 인근의 절간에서 불사에 정진하던 스님들은 콧속으로 스며드는 그 냄새에 안절부절하였다. 스님들은 작당을 하여 높은 절간의 담을 넘어 냄새를 쫓아 詩會를 하는 선비들 속으로 들어간다. 물론 요리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한 중국식 과장으로 붙여진 이름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요리가 후대에도 널리 알려져 왔고 지금도 중국요리 중에 고급 요리로 자리잡고 있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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