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강 중에서 가장 긴(最長) 강의 이름은 그냥 "긴강(長江)"이다. 이 강이 중국 밖에서는 양즈강(楊子江)이라고 부르는 6,300km의 강이다. 黃河보다 1,000km 정도 더 길다. 언젠가 양즈강에 떠있는 船上에서 양즈강 얘기를 했더니 한참 듣고 있던 중국 사람은 양즈강이 어느 강을 두고 하는 말이냐고 오히려 물어온 것을 보았다. 그만큼 그들은 長江(치양쟝)이라고 해야 알아 듣는다. 그렇지만 서양의 지도책을 보면 모두 양즈강(Yangtze kiang)이라고 기술해 놓고 있다.
중국사람도 모르는 江이름이 서양사람에게 알려져 있는 셈이다. 양즈강이라는 말을 서양에 처음 알린 사람은 일본사람이라고 한다. 사실 양즈강은 길고 긴 長江의 한 지역의 강 이름이었다. 옛날 宋시대, 長江하류 지금의 楊州와 鎭江 부근을 흐르는 長江을 그 지방에서는 양즈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당시 中國에는 日本으로부터 많은 留學僧이 中國 南方 鎭江근처 사찰에서 불교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곳에서 들은 강이름은 양즈강. 그 강은 西海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중국을 다녀온 日本유학스님은 그렇게 中國 第一 江, 양즈강을 당시 日本에 와있던 폴튜갈 선교사에게 알려주었고 포튜갈 선교사가 서양에 퍼뜨린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같은 江을 두고 현지 사람이 부르는 이름과 바깥에서 불러주는 이름이 틀리게 된 것이다.
이 長江의 수량이 풍부한 것은 히말랴 산맥과 티벳고원을 水源으로 하고 있어서 그렇다. 티벳고원으로부터 수많은 강줄기를 이루면서 사천분지로 흘러 들어온 강물은 다시 세 개의 협곡(三峽)을 지나 대평원으로 나온다. 북으로는 大別, 남으로는 남령, 동으로는 무이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거대한 평원이다. 그곳은 비교적 지형이 낮아서 사천성에서 빠져나는 물이 잠기게 되면서 여기저기 호수를 이룬다. 그 중 가장 큰 것이 洞庭湖이다. 이 바다같은 호수를 끼고 그 북쪽으로는 武漢을 중심으로 湖北. 그리고 남쪽으로는 長沙를 중심으로 호남성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이 크고 작은 수많은 湖水는 長江의 洪水예방 물주머니이다. 여름철 雨期에는 우선 그 물주머니에 물을 가득채우므로 하류에 물이 덜 내려가게 되어 홍수를 막아준다. 겨울철 건기에는 그 물을 이용, 자연을 기름지게 만들므로 産物이 풍부하다. 특히 長江과 漢水가 만나는 武漢은 먹거리도 풍부하여 食在武漢으로도 통한다. 武漢은 옛날 武昌, 漢口, 漢陽의 3개의 도시가 합쳐져 만들어진 신도시이다.
武漢의 명물 武昌漁와 黃鶴樓
武漢에 가면 꼭 맛보아야 할 것이 있다. 武昌漁이다. 잉어과에 속하는 이 민물생선은 湖北地方의 자랑이기도 하다. 무창어는 비늘이 청백색이고 머리가 작고 몸집이 커서 살코기가 두텁다. 몸 전체는 마름모꼴이다. 성장하면 40cm까지 자라고 무게도 3kg정도 나간다. 또한 몸집에 지방이 적당히 섞여서 맛이 있다. 현지사람들은 이 생선으로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어 내지만 묽은 국물에 통째로 익혀낸 것(淸蒸)이 武昌漁의 가장 대표적인 요리라고 한다. 武漢은 毛澤東의 고향인 長沙에서도 멀지 않아 젊은 시절의 毛澤東이 농민운동을 하면서 한 때 살기도 했던 곳이다. 이러한 연고로 무창어요리는 모택동이 즐겨 찾았기 때문에 지금은 더욱 유명해졌는지 모른다. 무창어는 전국 호수나 강 어디에도 양식이 가능하여 반드시 武漢이 아니라도 맛을 볼 수 있다.
무한에 가면 1670m의 長江大橋가 양즈강에 걸려있다. 그 다리 한 쪽에는 거대한 樓閣이 있는데 이름하여 黃鶴樓라고 한다. 武漢에 온 사람은 황학루에 한 번 쯤 올라가 보는데 큰 기둥에 글자가 큼직하게 쓰여있다.
"黃鶴 一 去不復返 , 白雲千載悠悠"
무한은 옛날부터 2개의 강이 만나고 수륙교통이 편리하고 水産物이 풍부하다 보니 酒店이 많았는데 지금의 黃鶴樓 위치에도 주점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해 가난한 書生이 이 주점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주점 주인은 이 서생에게 먹을 것을 차려 주고 후대하였다는 것이다. 이 書生이 하루는 주점의 벽에다 한 마리의 커다란 학을 그려 넣었다. 그림 속의 학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점에 온 손님이 술을 마시고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면 벽에 그려진 학이 내려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소문 때문에 주점이 날로 번창하였다고 한다. 얼마 후 書生이 갑자기 보이지 않더니 이어서 벽속의 학도 자취를 감추었다. 마을에는 書生이 학을 타고 멀리 떠나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書生은 학을 타고 온 仙人이고 그는 주점주인의 후의에 보답하기 위해 자기가 타고 온 학을 벽 속에 넣어두고 있다가 주점주인의 은혜를 어느 정도 갚게되자 갈 길을 재촉하여 떠났다는 것이다. 주점에는 다시 손님이 끊어지자 주인은 그 자리에 황학루를 지어 학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시인은 노래하기를 "황학이 한 번 떠나 천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그가 떠난 하늘에는 흰구름만 둥둥 떠다니누나"
지금도 무한의 장강대교 한쪽에 높다랗게 누각은 솟아 있지만 한 번 날아간 선인과 학은 지금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