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주로 등산을 하느라 홍콩의 아름다운 트레일을 찾는다. 그러나 비가 많이 온다든지 서울에서 손님이 있을 때는 등산하기가 곤란해진다. 그 때 찾아가는 곳이 太古트레일이다. 가족이나 서울 손님과 함께 떠나므로 큰 장비가 필요 없다. 간소복에다 걷기에 편한 스니커 한 켤레만 있으면 된다. 손님에 따라서는 사무복의 정장구두로 잔뜩 긴장하고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太古 트레일에는 미네랄 워터 보다는 두둑한 돈지갑 또는 크레디트 카드가 필수품이다. 太古트레일은 金鐘의 Queensway街에 걸려있는 대리석 구름다리를 건너면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압도할 듯이 금색으로 太古廣場이라는 입간판이 벽에 붙어 있다. 太古는 매우 오래되었다는 의미만은 아닌 것 같다. 太古는 홍콩의 英國계 자본으로 유명한 Swire그룹의 중국 상호이다. Swire 그룹이 太古를 쓸 정도로 오래된 회사로는 보이지 않는다. Swire 그룹이 중국명 상호로 어떻게 太古를 쓰게 되었는가에 대한 공인되지 않은 에피소드가 하나 전해진다.
영국 욕크지방 출신의 Swire家가 중국무역에 관심을 갖은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였다고 한다. 당시는 많은 영국 무역상들이 신천지 中國을 찾아 너도나도 아시아로 진출할 때였다고 한다.
키신저의 비밀외교결과 닉슨이 중국을 방문, 상하이 커뮤니케로 중국을 개방시키기 전의 중국이 "竹의 장막" 속에 있었다고 한다면 영국이 아편전쟁을 일으켜 주요 항구를 개항시키기 전의 중국은 "비단의 장막" 속에 있었다고들 한다. 중국은 비단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면서 서방의 뉴 프론티어가 되어 갔다. 특히 1860년대 미국의 내전(남북전쟁)으로 신대륙에서 원료를 공급받고 있던 영국 등 유럽의 무역상들은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못하고 모두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상하이가 지금의 홍콩처럼 아시아 무역 및 금융의 중심이 된 것도 그 시절부터 시작된다. 현재 구미계의 아시아 본사가 대부분 홍콩에 갖고 있는 것 처럼 그 시절 아시아 본사는 대개 상하이에 있었다고 한다. John Swire라는 사람이 영국의 리버플에서 미국의 남부 면화 수입을 중심으로 무역업을 시작(1816)한 후 그의 아들 John Samuel Swire 代에 와서는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면화 수출을 중단하자 중국 양쯔강 연안의 면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Swire 회사도 그 때 처음으로 중국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중국 진출기업은 회사에 등록을 위해 중국명의 상호가 필요했다. Swire 회사도 적절한 상호를 찾아야 했다. 1866년 말 중국에 온 J. S. Swire 사장은 상하이 인근의 시골여행을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도 중국의 시골에 가면 大門 등에 누덕누덕 붙어 있는 글귀가 있다. 그 글귀 중에 가장 많은 것이 "大吉"이란 글귀이다. 좌우가 아니고 上下로 쓰여져 있다. 大吉은 立春大吉 등에서 쓰여지는 일종의 주문(呪文)이다. 上下로 쓰여진 大吉을 보고 Swire 사장은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중국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말(또는 부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중국 상호로 大吉을 등록했다. 그러나 그의 눈썰미는 100% 정확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大吉이 太古가 되어 버렸다. 大吉을 上下로 붙여 써보면 太古처럼 보인다. 그 이후 大吉은 太古로 불리워졌다는 것이다. Swire 사장의 본래 뜻대로 등록되었다면 우리는 太古광장이 아니고 大吉광장을 걷고 있을 텐데 말이다.
언젠가 홍콩의 Swire 그룹의 직원에게 太古의 뜻이 뭐냐고 물었더니 太古의 의미는 "規模홍大 歷史久遠"이라는 심오한 뜻이 있다고 하였다.
太古광장을 분해해 보면 거대한 감자모양이다. 그 감자 위에 4개의 기둥이 꽂혀있는 형상이다. 물론 감자 속은 모두 파내어 3층의 쇼핑센터로 이루어져 있다. 4개의 기둥은 30∼40층의 4개의 건물이다. 4개의 건물도 자세히 보면 2개는 타원형이고 2개는 모난 건물이다. 이것은 홍콩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음양의 풍수를 따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형은 양(陽)이고 모난 건물은 음(陰)이다. 아일랜드 상그리라 호텔과 콘라드 호텔은 각각 타원형으로 두 개를 합하면 원이 되는 건물이고 매리엇 호텔 건물과 太古오피스타워는 모난 건물이다.
1990년도 초 당시 영국군대의 주둔지(barrack)였던 깜종(金鐘)언덕이 부동산 붐과 함께 새로운 개발지로 떠올랐다. 자딘사를 中心으로 하는 Hong Kong Land라는 부동산 개발회사는 익스체인지 빌딩 등 센츄럴의 부동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Swire그룹도 太古城 아파트 단지 등 부동산 개발에 관심을 쏟았다. 깜종에 유일하게 남은 금싸라기 땅을 불하 받아 대형 쇼핑 몰과 호텔 3개, 오피스타워 하나를 만들어 낸 것이다. 太古 광장에서 시작되는 太古트레일은 사실상 눈의 트레일이다. 구미의 유명브랜드 상품은 모두 모여있어 eye shopping에 적격이다. 특히 3층의 브랜드점은 세계의 유명한 브랜드가 모두 모여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양 브랜드에 싫증이 나면 3층 한 쪽 코너에 홍콩의 유리창이 있다. 유리창은 북경의 골동품가를 부르는 말로 우리 서울 같으면 인사동 거리와 같다. 골동품 거리에 가면 중국황제의 용포도 볼 수 있고 진시황의 군대도 만날 수 있다. 돈으로 사겠다고 덤빌 필요는 없다. price tag에 쓰여진 가격은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동그라미가 많이 붙어있다. 그래도 이곳은 헐리웃의 골동품거리 보다 가짜를 살 확률은 낮다고 한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