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 푼초이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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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람들은 본래 남쪽은 덥고 습하고 만병이 우글거려 사람 살 곳이 못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황하유역(중원)에 살던 사람들이 여러 사정으로 고향을 등지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다. 이런 사람들은 "이방인" 의 뜻인 객가(客家)라고 불리웠다. 특히 광동성 및 복건성 쪽에서는 현지 발음으로 "하카" 라고 불렀다. 산이 많은 광동성과 복건성 접경에는 "하카"가 많이 살기로 유명하다. "하카"라고 해도 고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들끼리도 말이며 습관 등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홍콩에도 "하카"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의 싸이콩(西貢)은 본래 광동 북동쪽의 "하카"가 바다를 건서와서 주로 살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점차 그들은 홍콩이 발전하면서 도시로 들어와 살거나 새로운 도시 건설에 밀려났다고 한다. 그래도 사이콩의 변두리 해안 촌에는 "하카"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 중에 유명한 곳이 호이하(海下)의 "하카" 마을이다. "하카" 마을이라고 해도 사진에 보듯 원통형의 성채같은 집을 지어놓고 사는 것은 아니고 현대식 철근 콩크리트 2층 다세대 주택들이다. 낚시꾼이나 등산객을 위해 숙소며 식사도 제공한다. "하카"의 전통음식중에 푼초이(盆菜)라는 특수한 음식이 있다. 이번에는 호이하에서 하카 전통음식인 푼초이 디너가 연결되는 트레일을 소개하고 싶다. 나는 어느 토요일 오후 호이하의 푼초이 하카식 디너그룹에 조인 하였다. 오전에 약간의 볼일도 마치고 점심식사까지 끝낸 후 KCR로 만나는 장소인 "대학역"으로 나갔다. 역근처의 마루수이(馬料水)에서 오후 3시 15분 출발하는 카이도(통통배)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탄 배는 토로(赤門) 해협을 나와 미르 베이(大鵬灣)에서 크게 우회전하여 롱 하바(大灘灣)까지 왕복하는 水上 버스의 일종이다. 배 삯은 거리에 관계없이 20홍콩불 정도로 기억된다. 카이도에는 주말이라 배낭을 맨 젊은 등산객, 낚시꾼이 가득 했다. 배는 馬鞍山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면서 "우카이사"앞으로 나간다. 거대한 空地가 눈에 들어난다. 일행중 누군가가 월남의 보트 피플을 위한 수용소였던 곳으로 이제는 건물은 없어지고 空地만 남았다고 하면서 홍콩에 디즈니 랜드 유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곳도 강력한 후보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30분쯤 되었을까 우리는 삼충(深涌)에서 下船하였다. 삼충도 옛날에는 번창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버려진 마을로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다. 지금은 누군가가 투자하여 골프장 만든다고 땅을 모두 갈아놓고 잔디를 심고 있다. 일행들은 파헤쳐진 검은흙이 튀기지 않게 조심스럽게 열을 지어 나간다. 마을길은 곧 끝나고 산길로 이어진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맑고 뒷산은 수림이 울창하다. 인근 농장의 소가 지나 갔는지 우분(牛糞)이 곳곳에 늘려있다. 걸을 때 위로는 늘어진 나무가지를 조심해야 하고 아래로는 발 밑을 조심해야 한다. "학교"라는 간판이 걸린 제법 큰 벽돌건물을 만난다. 그러나 잡초가 무성하고 사용되지 않은지가 수십년은 되는 듯 싶다. 마을 사람들이 떠나자 학생도 떠나고 건물만 을씨년스럽게 남아있게 된듯하다. 길 좌우에는 어울리지 않게 유칼립스 나무가 많다. 일본군이 홍콩을 점령한 1940년대 초, 항일 게릴라 전이 이 마을 주변으로 있었고 일본군은 인근 수림을 모두 태워 항일 게릴라들의 은신처를 없앴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전쟁이 끝난후 홍콩정부는 호주등에서 잘 자라는 유칼립스 나무를 많이 들여와 심었다고 한다. 일행들은 뒷산 고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골프장으로 변해가는 마을의 뒤쪽으로 토로 해협이 산등성이 사이로 보인다. 지도를 보면 왼편은 할로우 산(Mt. Hallowes) 과 오른편으로는 섹옥산(石屋山)이다. 그 사이로 길은 동북 방향으로 쭉 뻗어있다. 걷기에 크게 어렵지 않은 길을 한시간 정도 걸었을까 산길은 끝나고 다시 마을길로 접어든다. 그동안 라이치 총을 지나고 할로우산 밑을 지나온 셈 이다. 산길도 시멘트로 말끔히 포장되어있다. 표지판도 새로이 만든 듯 칸트리 파크 관리의 손길을 느끼게 만든다. 이곳은 유칼립스 나무가 잘 보이지 않는다. 홍콩 토종 나무들로 울창하다. 고목도 많은 것을 보면 전쟁의 피해를 덜 받은 곳인가 보다. 나무들은 사계절 푸른 상록수라서인지 잎새는 동백나무 같이 빤짝거리면서 도툼하다. 곳곳에 야생 오렌지나무(山橙)가 많다. 새들도 좀 색다르다. 깃털의 색깔이 특이하다. 촘촘한 가지사이로 이름모를 새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지나가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길은 팍사오 유스호스텔 옆으로 지난다. 이런곳에 유스호스텔이 있구나 할 정도로 숲속에 푹 파묻힌 유스호스텔이 아늑하게 보인다. 토요일 오후의 한가한 공기가 감싸서인지 여유롭게 느긋하여 언젠가 하루밤 지내고 싶은 충동도 불쑥 든다. 날은 조금씩 땅거미가 진다. 하카 디너가 예정되어있는 호이하가 가까워지고 있다. 홍콩지도에 보면 海下는 사이콩의 동북쪽 끝이다. 홍콩의 지명이 바다와 관계없는 것이 없지만 海下는 이름도 바다 깊숙히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맑고 푸른 바다로 유명하다. 요즈음, 홍콩의 다이버들은 이도(離島)로 나간다고한다. 홍콩 앞바다가 오염되어서 홍콩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시계(visibility)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홍콩의 연안의 바다로서는 예외적으로 海下 바다밑의 시계가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제 가을과 겨울로 들어서면 물은 좀 차가워지지만 바다 속의 시계는 더욱 맑아서 다이버들에게도 이때 한철을 즐기는 것 같다. 海下에는 다이버들이 많이 몰려 온다. 우리는 예약된 레스토랑으로 안내되었다. 말이 레스토랑이지 민박업소 식당 비숫하다. 집 마당에 그냥 둥근 철제 테이블을 두고 프라스틱 스툴을 사람수대로 둘러놓은 것이다. 우리 일행을 위한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다. 그 옆에도 비슷한 라운드 테이블이 다른 손님도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 테이블 위에는 사람수대로 나무 젓가락과 개인별 접시가 놓여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여분 젓가락이 타원형을 그리면서 정연히 놓여있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지나고 있다. 디너로는 좀 빠른편지만 2시간정도 트레일 워킹을 한 탓인지 시장기가 든다. 이윽고 주인이 큼직한 스텐레스 용기를 두손으로 무거운 듯 바치고 나온다. 알고보니 이것이 盆菜라고 부르는 하키식 디너였다. 홍콩에 오래사시는 분들에게는 새로울 것도 없을지 모르지만 잠깐 있다 떠나는 나에게는 새로운 음식문화의 접촉 이었다. 일행중 누군가가 이미 주문한 7가지 차이 (菜)의 메뉴를 보여주는데 그 7가지 음식이 차곡 차곡 수직으로 쌓여 있는게 아닌가. 제일 위에서 부터 보면 닭고기, 야채, 돼지고기, 두부, 메추리알... 모두들 서비스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집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찾느라고 마구 파 뒤집는다. 야채 조금, 돼지고기 조금, 두부 조금 씩 자신의 접시에 음식을 나른다. 금방 용기는 지저분하고 무질서하게 되어 버렸다. 마치 걸인들의 거대한 밥통같이 되었다. 그러나 음식의 맛은 뛰어났다. 조금도 지저분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일행 모두가 마치 걸신들린 사람들처럼 열심히 먹고 다시 주어 담는다. 날씨는 상당히 어두워졌고 마당에 걸어놓은 백열등은 불빛을 더뿜는 것 같다. 그러나 용기안을 잘 볼수가 없다. 젓가락에 무엇이 찍히는지 모를 정도다. 누군가가 후레쉬 (torch)를 꺼냈다. 몸을 스툴에서 일으켜서 후레쉬를 비추어 그 속에 남아있는 메추리알이라든지 닭고기살 덩어리를 찾아낸다. 모두 젓가락을 든 戰士 같은 기분이다. 흰 밥을 곁들이고 자스민 차와 함께 먹는 하카 푼초이는 별미였다. 옛날 하카들은 떠돌이 생활이라 그릇도 많지 않고 씻을 물도 넉넉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물도 설고 땅도선 남의고장에서 만들 수 있는 고향 음식이란 한정되어 있겠지만 어렵게 만든 음식을 모두 큼직한 오지그룻(盆) 에 담아 식구들이 쭉 둘러 앉아 정겹게 먹는 무습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홍콩에 사는 우리들도 결국 현대판 하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밤 이슬이 조금씩 내리는 海下의 밤은 깊어간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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