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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1월 24일 김좌진 장군 피살
애국계몽운동가이자 1920년 청산리전투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이 1930년 1월 24일 중국 하얼빈의 집 근처에서 괴한에게 피살됐다.
41세의 나이였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김 장군은 서당 공부 외에 정규교육으로는 2년간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다녔을 뿐이지만, 19살에 '한성순보' 이사가 됐고 오성학교 교감을 맡기도 했다.
또 신민회, 기호흥학회와 같은 단체에 가입해 애국교육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이나 언론만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었다고 느낀 김 장군은 북간도에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을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다 붙잡혀 2년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1919년 3·1운동 후 임시 정부의 지원금으로 사관양성소를 설립하고 이듬해 홍범도 장군과 연합해 청산리에서 일본군 1200여명을 사살했다.
1947년 1월 25일 전설적 갱스터 알 카포네 사망
20세기 초, 27살의 나이로 시카고 제1의 갱스터 자리에 올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카고 제1의 갱스터 알 카포네. 그가 1947년 1월 25일 왼뺨에 난 칼자국 흉터만큼이나 파란만장했던 삶을 뒤로하고 짧고도 굵었던 생을 마감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를 '전설적인 갱스터', '스카페이스(Scarface)'라고 부르지만, 1899년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 여느 아이들과 별다를 바 없이 조용하고 성실한 아이였다.
14세 때 범죄조직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자신이 살던 가필드의 갱스터 조니 토리오를 만나게 된다. 토리오는 왜소한 신체의 남자였지만,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직연합 능력과 관리능력, 교묘함 등을 일찍부터 터득한 갱스터였다.
1909년 시카고로 거점을 옮긴 토리오는 1919년 카포네를 시카고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1920년에 금주법이 실시되자 토리오는 밀주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끝내 라이벌 갱 간에 의해 살해당한다.
1925년 토리오의 뒤를 이어 조직을 이끄는 보스가 된 그는 '스카페이스'라는 악명에 어울리는 잔임함과 교묘함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밤의 대통령, 암흑가의 황제로 불리며 700명의 조직원을 이끌던 카포네는 법 위에 군림했으며 대중들에게 인기도 높았다.
그의 폭령성은 1929년 2월 14일 당시 시카고의 라이벌 조직이었던 아일랜드계 오바니온가의 조직원들을 암살하기 위해 벌린 세기의 유혈극 '성 발렌타인데이 습격사건'에서 정점에 달했다.
폭력을 자선사업이라는 교묘한 술책으로 덮어 보려했던 그였지만, 이 사건으로 무소불위의 그의 시대도 내리막길로 치닫기 시작했다. 시카고 검찰이 알 카포네를 제1의 공적으로 규정하고 탈세혐의로 그를 법정에 세우기 위한 수사를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는 1931년 6월 연방소득세 위반으로 기소돼 10월에 11년형과 8만 달러의 벌금과 소송비용을 부과 받았다. 이로써 그의 화려했던 갱스터 인생도 그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후 알 카포네는 자신의 예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매독 증세로 1939년 가석방됐으나 모든 것을 잃은 채 매독말기 증세로 병원을 오가다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해변에서 초라한 최후를 맞았다.
1788년 1월 26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첫 상륙
1787년 5월, 영국을 출발한 11척의 배가 7개월만인 1788년 1월 18일 오스트레일리아 동쪽 보타니만에 도착했다. 배에는 총독으로 임명된 필립 아더와 788명의 죄수, 250여 명의 군인과 가족이 타고 있었다.
필립은 보타니만이 배를 정박하는데 부적당하자 북쪽으로 올라가 1월 26일 잭슨항에 닻을 내렸다. 그리고 당시 자신을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낸 영국의 내무장관 시드니 경의 이름을 따 시드니라고 명명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770년 영국 탐험가 캡틴 쿡에 의해 알려져 영국 영토로 선언됐으나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776년 부터였다.
당시 미국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나 더이상 죄수들을 미국으로 보내지 못하게 되자 오스트레일리아를 새 유형지로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립이 끌고온 죄수들과 함께 시작된 시드니는 오스트레일리아 최대 도시로 성장했고, 1월 26일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날'로 정해져 국경일로 기념되고 있다.
179-년 두번째 죄수들이 보내지고, 이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이주민들이 몰려와 호바트(1803년), 브리즈번(1824년), 퍼스(1829년), 멜버른(1835년), 아델리이드(1836년) 등이 새로운 정착지로 개발됐고 이 6개의 영토는 1850년에 영국 정부에 자치정부로 승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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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1월 29일 싱가포르, 영국의 식민지화
영국 동인도회사의 행정장관 토마스 스탬포트 래플즈가 매년 5천 스페인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싱가포르 왕국의 조호르 왕으로부터 싱가포르 지배권을 얻는조약을 1819년 1월 29일 맺었다.
래플즈는 싱가포르 왕국이 왕위계승권 분쟁으로 혼란스런 틈을 이용해 군주와 대신들을 매수해 이같은 공작을 벌여왔다. 래플즈는 2월 6일 싱가포르에 동인도무역회사를 설립해 싱가포르 지배를 보다 구체화했다.
영국은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잇는 길목인 싱가포르를 차지함으로써 이후 동인도제도에서 네덜란드 상권과 경쟁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이후 싱가포르는 1959년 6월 3일 신헌법을 발표해 영연방자치국으로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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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월 30일 마하트마 간디 피살
인도의 사상가 마하트마 간디가 1948년 1월 30일 인도 뉴델리에서 반 이슬람 극우파 청년이 쏜 총탄을 맞고 79세에 타계했다.
1947년 7월 인도의 분할독립으로 힌두·이슬람의 대립소동이 벌어져 이 소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벵갈에 이어 뉴델리를 방문중이었다. 1869년포르반다르에서 출생한 간디는 1887년 영국으로 유학가 법률을 배운 후 1891년 귀국해 변호사로 개업했다.
1893년 소송사건을 의뢰받아 남아프리카로 건너갔다. 이 남아프리카 여행에서 간디는 인도사람의 지위와 인간적인 권리를 보호하고자 결심하고 차별받는 인도인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1915년 귀국한 간디는 인도 국민회의파를 지도하며 납세거부, 취업거부, 상품불매 등을 통한 비폭력저항운동을 실시했다.
1924년부터는 국민회의파의 의장으로 있으면서 인도인이 자력에 의한 농촌구제에 나설 것을 역설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으며 1930년에는 '소금세' 신설반대운동을 펼치기도했다.
인도의 사상가이자 민족 운동 지도자인 간디는 인종차별 압박에 대한 투쟁, 자기 실현을 위한 인격 수양, 무상해 이 세가지를 가르치며 진리 구현을 평생 실천했다.
1922년 12월 인도의 문호 타고르로부터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칭송을 받은 이래로 마하트마 간디로 불린간디는 그의 평화사상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실천을 통해서도 인도인들만이 아니라 20세기 인류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미국 우주왕복선 아폴로1호 조종사3명 사망
우주비행사 비르길 그리솜, 에드워드 화이트2세, 로저 채피가 1967년 1월 27일 밤 우주선 아폴로1호에 일어난 화재에 휩싸여 사망했다.
이들 3명은 오는 2월 21일에 처음으로 발사될 아폴로우주선의 승무원으로 14일 동안 지구궤도를 돌 예정에 있었으며 이에 대한 본격적인 모의실험 도중 지상에서 사망했다.
폭발은 엔진 산소공급장치 및 에어컨디션기계가 장치된 아폴로우주선의 중심체에서 일어났다. 희생자들은 케이프 케네디 우주발사 센터의 34호 발사대에 있던 새턴1 로켓 위에서 우주비행 중에 취할 자세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긴급구조대가 그들에게 접근을 시도했으나 조종실에서 뿜어나오는 짙은 연기로 접근할 수 없었다. 미우주항공국(NASA) 관계자들은 조종사와 우주선의 손실로 아폴로 계획이 큰 타격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1995년 1월 31일 세계무역기구(WTO) 창립총회
세계무역기구 제1회 창립총회가 1995년 1월 31일 제네바에서 열렸다. 총회에서는 싱가포르를 향후 2년간의 총회 의장국으로 선정했고 제네바 주재 싱가포르 대사인 케사바파니를 총회의장으로 선출하는 등 주요 집행부를 구성했다.
세계무역기구는 1993년 12월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 이후의 세계무역질서를 이끌고 갈 다자간 무역기구로, 1947년부터 세계무역질서를 이끌어 온 GATT체제를 대신하게 됐다.
WTO는 GATT에는 주어지지 않았던 세계무역분쟁 조정기능과 관세인하요구, 반덤핑규제 등의 법적 권한과 구속력을 행사할 수 있어 세계무역질서를 어지럽히는 국가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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