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안먼 10주년 촛불 추모에 홍콩시민 7만명 모여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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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안먼 10주년 촛불 추모에 홍콩시민 7만명 모여 시위

텐안먼 10주기인 지난 6월 4일 금요일밤에 코스웨이배이에 있는 빅토리아 공원에는 7만 명의 홍콩시민들이 모여 민주를 외치다 죽어간 그 날의 영령을 추모했다. 텐안먼에 대해 벌써 잊고 있다는 주룽지 중국 총리의 발언에 자극을 받은 홍콩시민들은 "우리는 잊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손에 손에 촛불을 들도 몰려들어 추모가를 부르며 중국의 민주화를 열망하는 구호들을 외쳤다. 6·4 텐안먼 사태란 1989년 6월 3일 밤 10시부터 4일 새벽 4시 사이의 여섯 시간 사이에 벌어진 일을 말한다. 대학생들의 지지를 받던 후야오방 전 당총서기가 그 해 4월 15일 심장병으로 사망하면서 텐안먼 광장 시위가 시작되었다. "부패타도" " 정치개혁"를 외치면서 100만 명의 시위대가 텐안먼 광장으로 모였었다. 5월 20일 리펑 총리가 베이징 일원에 계엄을 선포했으나 시위는 계속 되었고 5월 30일 시위대 가운데서 민주의 여신상이 세워졌으며, 6월 3일 심야에 계엄군의 장갑차가 민주여신상을 밀어 넘어뜨리면서 진압이 시작되었다. 위엔무 당시 국무원 대변인은 시위자와 군인 합해서 300여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외신들은 1,000여명의 학생들이 희생당했다고 보도했었다. 텐안먼 사태 10주년이던 지난 6월4일, 역사의 현장 텐안먼 광장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광장 근처에서 한 중년남자가 "학생운동을 기억하라"는 구호가 적힌 우산을 펴고 마오쩌뚱 초상화 아래의 다리를 건너며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보도가 있을 뿐이다. 베이징 대학생들은 학기말 시험에 매달리며 텐안먼 사태에는 거의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도 전해진다. 사태 희생자의 일부 유족들이 사복 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묘지를 찾아가 꽃다발을 바치며 추모식을 가졌다는 것과 자택 또는 당국에 연금 당해 있는 유족들은 집안에서 추모식을 가졌다고 외신 및 홍콩 신문들이 전했다. 중국 언론매체들은 텐안먼 사태에 관해서 침묵하면서, 이에 관심을 가지는 서방 언론들을 비난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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