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의 근대 이후 인구 변화는 정치, 경제적 격변과 밀접히 연결된 이민 사회의 역사다. 1841년 영국이 홍콩섬을 점령했을 때 인구는 약 7,450명에 불과했다. 그 후 200년이 채 안 되어 홍콩 전체 인구는 약 750만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인구는 언제, 어디로부터 유입된 것일까?

먼저 근대사 초기, 19세기 말~20세기 초의 홍콩 인구 증가는 영국이 홍콩을 식민지로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항만, 무역 기능이 커지면서 인력 수요가 확대된 영향이 크다. 이 시기 유입의 핵심은 광둥(특히 현재의 광저우, 불산, 둥관, 자오칭, 후이저우 등 주강(珠江) 일대) 출신의 중국인 이주민이었다. 당시 영국 통치 체제와 교역망이 성장하면서 대륙에서 경제적 기회를 찾아 항만 도시 홍콩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생겼다. 이 흐름은 뒤이은 전쟁 시기의 대규모 난민 유입과도 연결되었다.
그럼 구체적으로19세기 홍콩의 인구는 얼마나 증가했을까? 아편전쟁 이후의 개항과 무역 발달로 중국 남부, 특히 광둥성 일대에서 노동자와 상인이 유입되면서 1850년대 말에는 약 8만 명, 1860년 구룡반도 할양 후 12만 명 수준으로 증가했다. 태평천국 운동(1850~1864) 등 대륙의 혼란이 피난을 불러왔고, 1898년 신계 지역까지 임대되자 기존 주민 약 10만 명이 더해져 20세기 초에는 30만 명을 넘었다.
20세기 전반에도 증가세는 이어졌다. 1911년 신해혁명과 군벌 시대의 불안으로 인구가 45만 명에서 1931년 84만 명으로 늘었다. 인구가 갑자기 늘어난 대표적 구간은 1930~40년대의 전쟁기와 그 직후다. 중일전쟁(1937년 전후)과 이어진 격전,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대륙 각지에서 피난민이 대규모로 이동했고, 홍콩도 직접적, 간접적 충격을 받았다. 중일전쟁 발발 후 특히 1938년 광저우 함락 전후에 약 75만 명의 난민이 몰려와 1941년 일제 점령 직전 163만 명에 달했다. 이 시기의 인구 증가는 단순 노동 이주뿐 아니라 피난 및 난민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일제 점령기(1941~1945)에는 귀향 정책으로 강제 송환이 이루어져 인구가 약 60만 명으로 급감했다. 이는 홍콩에서 생산되는 식량 및 보급 물자를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일본 군기지에 보내기 위한 일본 제국주의의 조치였다.
가장 극적인 급증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50년대 초반에 발생했다. 1945년 종전 후 귀환과 함께 국공내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으로 대륙에서 피난 물결이 밀려들었다. 인구는 1945년 60만 명에서 1950년 220만 명, 1951년경 230만 명으로 거의 4배 가까이 불어났다. 이 시기의 유입은 주로 광둥성 출신 노동자와 농민이 대다수였다. 그외에 상하이, 저장, 장쑤 등 장강 하류 지역에서 온 기업가, 전문직, 기술자 등 이른바 상하이파도 상당수 포함돼 홍콩의 산업화 기반을 마련했다. 일부는 푸젠성 출신이었다. 우리 학원이 있는 노스포인트는 푸젠성 출신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다.
이 시기 홍콩은 제조업(섬유, 의류 등 경공업)과 항만,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경제가 빠르게 팽창했다. 동시에 중국 대륙에서는 정치, 사회적 격변과 생활 여건 악화가 이주를 강화시켰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 시기 이후 국제 정세와 중국 내 변동이 맞물리면서 대규모 이동이 이어졌다.
1950년 국경이 봉쇄된 후에도 대약진운동 시기 기근과 문화대혁명 혼란 등으로 광둥성 중심으로 불법 입국이 계속됐다. 1960년대에는 인구가 300만 명을 돌파했다.
1960년대에는 홍콩이 일자리 있는 도시로 인식되면서 이주가 지속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 시기의 갑작스러운 증가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짧은 기간에 대량 유입이 발생한 점, 그리고 산업화로 인해 체류 기반이 마련된 점이다. 또한 시간이 흐르며 인구 구성이 다양해졌지만, 홍콩 초기 인구 급증의 뿌리는 대체로 광둥계 네트워크(친족, 지역 공동체)와 밀접하다.
197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과 홍콩의 터치 베이스 정책으로 다시 대규모 유입이 있었다. 터치 베이스 정책이란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밀입국한 불법 체류자가 국경 지대의 단속을 피해 홍콩 시내(구룡반도 경계선 남쪽 등)까지 무사히 도달하면 합법적인 거주권(시민권)을 부여하던 영국의 난민 용인 정책이다. 1978~1980년 사이 수십만 명이 들어와 1980년 정책이 폐지될 때까지 인구를 크게 늘렸다. 이후 합법 이민으로 안정화됐으나, 여전히 광둥성 출신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1990년대 이후 출산율 하락으로 자연증가가 둔화되면서 이민이 인구 유지의 핵심이 됐다. 1997년(홍콩 반환) 전후는 인구가 크게 폭증했다기보다는 미래 불확실성과 제도 변화가 이동과 출산 및 거주 선택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2020년 이후 유지되고 있는 약 750만 명 수준의 인구 중 상당수는 전후 이민자와 그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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