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 칼럼에서는 호르무즈 봉쇄가 계약서의 전장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다뤘다. 불가항력 조항의 한계, 하드십 조항의 필요성, 그리고 에너지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 하지만 곧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이제 전장은 계약서가 아니라 통화 자체가 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3월 14일, CNN은 이란 고위 관리를 인용해 충격적인 보도를 내놓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제한적으로 재개방하되 통과하는 유조선의 원유 결제 대금을 미국 달러가 아닌 중국 위안화로만 받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법적 본질이 있다. 이란이 자국산 원유에 위안화 결제를 요구하는 것은 무역 조건의 변경이다. 하지만 사우디나 UAE 원유를 실은 타국 유조선이 호르무즈를 통과할 때 이란이 그 결제 통화를 강제한다면 이는 UNCLOS(유엔해양법협약)상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의 침해를 넘어선 사실상의 통행세 징수이자 강탈이다. 단순한 통화 전쟁이 아니라 국제 해양법 체계 자체를 무력화하는 극단적 행위다. 이란도 이를 알기에 익명의 단일 소스를 통한 시험풍선으로 먼저 던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험풍선이라 해도 시장은 그 그림자만으로 이미 요동치고 있다. 이란은 유가가 만들어낸 위기 위에 통화 전쟁이라는 다른 차원의 변수를 얹었다.
이 문제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려면 미달러와 원유의 결합이 얼마나 깊은 구조적 뿌리를 가졌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1971년 닉슨은 달러의 금 태환을 중단하며 브레튼우즈 체제를 무너뜨렸다. 이 때 미달러의 가치 근거가 사라졌다. 2년 뒤인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을 빌미로 아랍 OPEC이 대미 석유 금수 조치를 단행하며 유가는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4배 폭등했다. 미달러의 위상은 흔들렸고 석유는 무기가 되었다. 미국의 해법은 두 가지 위기를 하나로 묶는 것이었다.
1974년 키신저 국무장관은 사우디 왕정과 비밀 경제협력 협의를 타결한다. 핵심 구조는 단순했다. 사우디는 원유 수출 대금을 미달러로 수취하고 그 달러를 미국 국채에 재투자한다. 미국은 왕정을 군사적으로 보호한다. 이 협의의 존재는 2016년 블룸버그의 정보공개청구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이로써 탄생한 페트로달러 체제 아래 원유를 수입하려는 모든 나라는 먼저 미달러를 확보해야 했다. 각국 중앙은행은 막대한 달러 준비금을 쌓았고 산유국들은 달러 수익을 미국 국채에 재투자했다. 미달러는 금의 자리를 석유가 대신하면서 기축통화의 위치를 지킬 수 있었다.
이 체제는 반세기 동안 놀라운 내구성을 보여줬지만 균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원유 결제를 유로화로 전환한 전례가 있었고 제재를 받는 러시아산 원유가 루블화나 위안화로 일부 거래되기도 했다.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은 위안화 표시 원유 거래 가능성을 협의했고 사우디는 BRICS 가입을 협상하며 미달러 일변도에서의 다변화 의지를 시사했다. 그러나 이전의 사례들은 모두 양자 간 협상에 의한 자발적인 탈달러화였다. 이란의 이번 요구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세계 에너지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에서 군사적 봉쇄를 지렛대 삼아 미달러 결제를 강제로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의 요구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위안화는 자유 태환 통화가 아니다. 중국은 여전히 엄격한 자본 통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위안화의 글로벌 결제 비중은 SWIFT 기준 3% 안팎에 불과하다. 역설적으로 위안화 결제가 실현 불가능에 가까울수록 이란의 요구는 경제적 사건이 아니라 정치적 제스처에 가까워진다. 그 제스처가 만들어내는 파장은 또 다른 딜레마를 낳는다. 이란 원유 수출의 약 90%를 흡수하는 중국은 미달러 패권 약화라는 전략적 목표에 공감하지만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으로서 중동 공급망의 장기 마비는 자국 경제에도 치명적이다. 전체 원유 수입의 약 70%가 호르무즈를 경유하는 일본과 약 68%인 한국은 대체 수송 경로와 전략비축유 방출을 동시에 검토해야 하고 사우디와 UAE는 미국 제5함대의 호위 작전 강화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이란의 시험풍선 하나가 주변국들을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짜 폭탄은 법률 실무의 영역에 숨어 있다. 이란이 위안화 결제를 공식 조건으로 제도화한다면 달러 기반 계약의 이행은 법적•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이것이 불가항력인지 예견된 지정학적 리스크인지를 두고 당사자들이 다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은 지난주 칼럼에서 다뤘다. 그런데 실무의 진짜 함정은 여기서부터다. 위안화로 결제를 우회하는 순간 계약 당사자들은 미국의 대이란 2차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하게 된다. 계약을 지키자니 미국 제재법을 어기는 후발적 위법성에 빠지고 제재를 지키자니 호르무즈에서 배가 막히는 완벽한 진퇴양난이다. 이 복합적 딜레마 (불가항력인가, 예견된 리스크인가, 아니면 후발적 위법성인가)를 두고 벌어질 치열한 공방은 향후 수년간 국제 분쟁의 가장 거대한 쟁점이 될 가능성이 짙다.
이 모든 딜레마의 무게를 시장은 이미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3월 13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103달러로 치솟았다. 전쟁 발발 직전인 2월 말 72달러대와 비교해도 40% 넘는 급등이다. 이 가격표 안에는 단순한 공급 차질이 아니라 결제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공포 프리미엄이 담겨 있는 것이다.
1974년의 협약이 달러의 새로운 신뢰 근거를 만들었듯 2026년의 호르무즈는 그 신뢰에 가장 깊은 균열이 생기는 현장이 될 수 있다. 전쟁이 끝나도 그 균열은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이다. 통화의 무기화는 제재와 SWIFT 배제를 거치며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지만 해협의 군사적 봉쇄와 결합한 순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