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일이 주어질 때, “네” 하고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주어진 일마다 핑계댑니다. 그런 사람은 주어진 기회도 놓칩니다.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위에도 혹시 그런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핑계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잘못한 일에 대하여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구차한 변명”
구약성경의 창세기 3:10에 인류 첫 핑계가 등장합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냐?”라는 뜻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벗었기에 두려워서 숨었습니다”입니다. 이것은 핑계요, 변명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처음부터 벗고 있었지만 부끄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25은 일부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성경은, 핑계는 죄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5:1-9에는 38년 동안 아픈 사람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은혜의 집’ 입니다. 어떤 병이든 낫게 하는 연못이었기 때문입니다. 연못의 물이 가끔 움직일 때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천사가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누구든, 먼저 들어가면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못 주위에 많은 환자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문이 진짜였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이 인용된 소문임을 표시합니다. 실제로 낫는 것이 아니라, 그런 소문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먼저 물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몇 가지 조건을 생각해봅니다. 1) 스스로 움직일 정도로 덜 아픈 사람 2) 연못 바로 옆, 좋은 자리를 잡고 내어주지 않을만한 권세나 배경이 있는 사람 3) 물이 움직일 때, 옮겨줄 수 있는 도우미를 많이, 상시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이겠죠.
“은혜의 집”이라는 “베데스다”는 이름은 그럴듯해도, 돈과 권력과 어느 정도의 건강을 가진 사람이 병 나을 확률이 높은 장소였습니다. 진짜 은혜가 아니지요. 예수님은 이 현장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38년 동안 낫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환자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여러분이 이 질문을 들었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상한 답을 합니다. “예수님, 저를 연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가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갑니다.” 그는 자신이 낫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를 댑니다.
우리는 왜 핑계를 댈까요? 개인적으로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1) 자기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 2)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주하고 싶어서 3) 미래가 어떤지 그리지 않아서
이 환자는 “낫기 원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랜 시간, 여러번 실망하고 절망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을 하다 실패하고 실망하면 두려움에 빠집니다. 그것이 반복되고 오래되면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합니다. 탓과 변명으로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취직을 못하는 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회사들의 무능함 때문이야’, ‘내가 결혼하지 못하는 건, 우리집 배경이 좋지 않아서야’, ‘내가 지금 이 모습인 건, 부모님이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아서야’ 등 여러 핑계를 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요5:8)
그의 변명은 길었지만, 예수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그저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어났을 때, 그의 병이 나았습니다. 38년이나 된 길고 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의외로 쉽게 해결됩니다. 길게 핑계 댈 필요 없습니다. 일어나 걸어가면 됩니다.
우리는 여러 핑계를 대며 변화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움직이고 행동하면 생각보다 훨씬 쉽게 문제가 해결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걱정만 하기보다는, 일어나서 움직이면 새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원리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 가운데도 핑계를 대며 스스로 합리화하는 일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 일은 의외로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돕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원리를 경험해보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홍콩에 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 속에서도 최선을 다 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을 예수님과 저와 우리교회 성도들이 함께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이번 한 주도 주님의 은혜와 도움이 임할 것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