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홍콩 사람들의 온정, 느껴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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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홍콩 사람들의 온정, 느껴봤나요?

필자가 홍콩에 16년 거주하면서 이곳 사람들에게 느낀 인상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 ‘온순하지만 정(情)이 부족하다’. 이 말에 내가 아는 교민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반대로 한국 사람들은? ‘거칠지만 정이 많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한국 사람과 홍콩 사람의 특징이었다. 내 눈에 비친 두 지역 사람들의 성격은 이렇게 반대되는 요소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우한 폐렴 사태를 겪으면서 나의 인식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전에 자주 경험하지 못했던 이곳 사람들의 온정이 조금씩 나에게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겪었던 일련의 일들은 ‘홍콩 사람들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갖게끔 한다.

설 연휴 후의 첫 번째 수업 날, 우리 교실에서는 탄성이 나왔다. 필자가 한국에서 가져온 KF94 마스크를 홍콩 학생들 한 명씩에게 선물해 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주일 후,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학생들은 나름대로 여유 있게 마스크를 준비해 놓은 상태였고 막상 나 스스로는 부족해진 것이다. 

수업 중 얘기를 하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학생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마스크 몇 개를 나에게 건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모두 10장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충분하게 갖고 있다 해도 이 사태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받은 마스크는 그들의 귀중한 선물이었다.


며칠 후, 다른 수업 시간이었다. 이날은 또 하나의 대란 품목인 화장지가 화제로 등장했다. 이 또한 우리 반의 홍콩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비축을 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시간 있을 때마다 근처의 슈퍼마켓에 가서 확인했지만 휴지가 있어야 할 자리는 늘 텅 비어 있었다. 필자는 이런 상황을 하소연했다. 

그날 수업은 밤 9:30에 끝났고 나는 퇴근을 위해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방금 수업을 마치고 귀가 중이던 한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마 전에도 설 명절에 자신이 직접 만든 무우떡을 선물로 주었던 수강생이다.

“선생님, 아직 학원이에요?”, “네, 그런데요?” 그 아주머니 학생은 나에게 뜻밖의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 “집에 가다가 휴지 파는 곳이 있어 방금 샀어요. 지금 그리로 갈게요”. 

앗, 판매 장소만 알려줘도 고마운 마당에 그것을 직접 사 들고 이 늦은 시간에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아마 내가 연락받고 가면 이미 동이 날 거라 생각했으리라.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선 그분의 손에는 한 줄의 화장지가 반갑게 주렁주렁 들려 있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늦은 시간, 그분의 방문은 나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였다. 

하나의 일화를 더 소개해 본다. 얼마 전 학원 주소를 알려 달라고 문자를 보내온 분이 있었다. 나는 주소를 적은 후 “그런데 왜요?”라 덧붙이고 나서 발송 버튼을 눌렀다. 곧 답이 왔다. “수업료 수표를 보낼 거예요” 

그런데 확인해 보니 아직 수업료를 낼 때가 아니었다. 더구나 이 반은 최근 우한 폐렴 사태로 수업이 잠정 중단되었기에 나는 “나중에 수업할 때 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며칠 후였다. 우리 학원의 우편함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되었다. 봉투를 뜯어보니 따뜻한 마음이 베어 있는 수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직접 말로 표현은 안 했지만 분명 도움을 주고자 하는 배려였다.

마스크와 화장지, 그리고 수표까지...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 진짜 돕는 것이라 했다. 지금은 누구나 당장 내 코가 석자라고 느끼는 비상 시기 아닌가. 아,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홍콩 사람들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오래전,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 이도 있었다. 필자가 홍콩에 온 지 얼마 안 된 주재원 시절이었는데 하루는 술을 진탕 마시고 귀가 중이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지하철은 내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 사이완호 역을 향하고 있었다. 

서둘러 일어나 지하철역을 빠져나올 쯤 사건이 터졌다. 나는 곧 벽을 짚고 몸 속의 불순물들을 힘들게 게워내야 했다. 그런데 이때 한 여성이 다가와 “Are you OK?”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자리를 뜨지 않고 한 번 더 물어봤다. “Are you really Ok?” 

필자는 너무 무안해서 괜찮으니 빨리 가라고 손짓을 했다. 이 분은 이렇게 몇 번 물어보더니 내 어깨너머로 뭔가를 건넸다. 티슈였다. 그리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멀찌감치 돌아갔을 텐데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날 이후로 나는 남의 나라 땅에서의 과음은 삼가고 있다. 

여러분들도 홍콩 사람들에게 온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들로부터 정을 느끼기 힘들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살고 있는 홍콩 땅이 그렇게 삭막한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얻은 수확 중의 하나는 홍콩 사람들의 온정이었다. 

몹쓸 바이러스들이 돌아다니는 요즘, 그 사이를 비집고 온정과 사랑의 바이러스 백신도 같이 섞여 흩날리고 있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움추려든 내 몸에 한 줄기 빛으로 내리쬐는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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