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사라지는 아시아 체험의 필수 코스 - 신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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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사라지는 아시아 체험의 필수 코스 - 신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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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 선정 ‘아시아 체험의 필수 코스’

 

지난달, 5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신광극장(新光戲院)이 폐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반세기 동안 월극(Cantonese Opera)을 상영하며 홍콩 예술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왔지만, 결국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무대 위에서 노래, 연기, 액션이 함께 펼쳐지는 월극은 2006년 중국 정부에 의해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버스든 지하철이든, 혹은 트램을 타든 학원과 집을 오가는 출퇴근 길에 신광극장은 내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곳이었다. 노스포인트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존재였는데, 홍콩의 또 다른 역사적 상징이 퇴장을 알리게 된 것이다. 

 

2009년 11월 미국 타임지는 ‘아시아 체험에서 빠질 수 없는 25’ 설문 조사를 진행하였는데, 신광극장이 9위를 차지한 바 있다. 

 

3월 3일 폐업을 앞두고 신광극장 측은 지난 1월 20일, 극장을 개방하여 200명의 시민을 초청하는 행사를 가졌다. 방문객들은 분장을 한 월극 배우들과 기념 사진을 찍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월극을 보려면 신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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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극장이 문을 연 시기는 1972년이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은 출판사인 커머셜 프레스의 홍콩 공장이었다. 사실 이 건물은 주거용 아파트였으나, 신광극장이 들어오며 무대, 설비, 영사실, 분장실 등을 꾸며놓으며 극장으로 탈바꿈하였다. 

 

최대 수용 인원은 1,709명이었다. 초창기에는 영화를 상영하기 위한 극장으로 이용되었다. 첫 번째 상영된 영화 또한 ‘문화대혁명 기간 출토품’이었다. 이는 중국이 문화대혁명의 격변기를 거쳤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후 상하이의 극단이 홍콩에 발을 붙이며 신광극장은 서서히 전통 월극을 공연하는 무대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1980년, 홍콩의 부호인 헨리 퍽이 신광오락유한공사의 회장에 부임하여 신광극장을 관리하였다. 

 

그리고 내로라하는 당대 유명 월극 배우들이 차례로 무대에 섰다. 월극 배우 람카싱의 1993년 고별 무대는 총 38회나 이어졌는데, 입장객들은 매회마다 만원으로 객석을 채웠다. 

 

월극의 전성기 때에는 거의 매일 공연이 있을 정도로 성황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홍콩월극의 전당’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월극을 보려면 신광으로!’라는 문구가 꼬리표처럼 붙기도 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신예 월극 배우들을 양성하기 위한 무대들을 마련하였다. 이는 곧 홍콩 문화 예술 분야의 발전에 있어 적지 않은 공로로 인정받고 있다. 

 

신광극장은 월극뿐만 아니라, 자선 모임이나 졸업식 등의 학교 행사를 위한 장소 임대로도 운영되었다. 저렴한 이용료로 인해 많은 단체와 학교가 이곳에서 행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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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가는 무대의 조명,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

 

 

90년대 초에 접어들며 월극은 쇠퇴기를 맞기 시작한다. 신광극장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으로 인해 경영 문제가 대두된다. 2005년, 건물주였던 러사우파이는 장소를 회수하여 쇼핑몰로 꾸미려 한다. 

 

왕밍췬은 홍콩 예술 업계를 대표하여 임대 연장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그는 4년 연장 합의를 이끌어 내며 신광극장을 폐업의 위기에서 건져낸다. 이후 추가로 3년 연장을 이끌어 냈는데, 이 당시 임대료는 두 배가 증가하여 거의 70만 홍콩달러에 이르렀다.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인 2012년에 이르러 다시 한번 무대 위의 조명이 꺼지려는 위기를 맞는다. 폐업 선포 이틀 전, 새로운 구세주가 등장한다. 이번에는 성세천희극단의 창업주 에드워드 리가 나선 것이다. 그는 1천만 홍콩달러를 투자하여 극장을 새롭게 꾸민다. 아울러 월극에 더해 연극, 콘서트, 영화 상영 등도 선보인다. 

 

잊을만하면 언론에 등장한 ‘신광극장 폐업 위기’ 소식은 올해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2023년 11월, 건물주가 바뀌게 된 것이다. 새 주인은 7억 5천 홍콩달러에 매입한 아일랜드 ICC 교회였다. 신광극장의 대표 에드워드 리는 ‘종교적인 문제로 임대 연장이 어렵게 되었다’는 말로 폐업 소식을 전했다. 


나에게 잊지 못할 해프닝을 선사한 신광극장

 

나는 딱 한 번 이 극장을 찾은 적이 있다. 몇 년 전 상영된 마동석 주연의 영화 ‘범죄도시 3’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그 앞을 지나가기만 수백 번, 평소에 궁금했던 극장 내부의 모습이었다. 

 

다른 영화관과는 달리 스크린 앞에 넉넉한 공간의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상영 시간이 넘어서도 영화가 시작되기는커녕 내부 조명도 꺼지지 않았다. 얼마 후, 직원이 앞에 나와 하는 말에 모두들 허탈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영사기가 고장나 상영이 어려우니 입장료를 환불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신광극장의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암시처럼 여겨진다 (결국 ‘범죄도시 3’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여하튼 극장 측은 나에게 홍콩 생활 20년 중 손꼽히는 해프닝을 선사하였다. 

   

에필로그 

 

신광극장은 유일한 민영 월극 극장이었다. 홍콩을 대표하는 또하나의 문화 공간이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되었다. 신광극장이 추억의 장소로 남아 있는 중장년들에게도, 홍콩의 문화 예술계에도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노스포인트 지하철 B1 출구로 나오면 정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대형 간판속의 월극 배우들과 작별을 고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참고 자료 >  

https://www.stheadline.com/society/新光戲院多圖同你講故曾獲時代票選不容錯過亞洲體驗-由戲院蛻變粵劇殿堂兩逃結業厄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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