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옛날 홍콩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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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옛날 홍콩에는 누가 살고 있었을까?

필자는 홍콩에 거주하며 문득 이곳의 옛날 모습이 궁금해지곤 했다. 누가, 어떤 생활을 하며 살았는지등에 대한 홍콩의 과거, 옛날 옛적의 과거 말이다. 

홍콩의 역사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우리들은 ‘원래 작은 어촌이었는데 아편전쟁 이후 영국에 할양되면서 발전한 곳’ 정도로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 중국의 역사에서 홍콩은 어떤 역할과 모습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지 않은가.


1. 고대 시기 

현재 공항이 위치해 있는 첵랍콕과 마온산 주변에서 발견된 유적에 의하면 이미 약 6,000여년전 이곳에 홍콩의 선조들이 생활 터전을 이루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진시황이 세운 진(秦,기원전 221~206)나라 때 홍콩은 지금의 광저우에 있는 판위현(番禺縣) 관할이었다. 이후의 한(漢, 기원전 202~서기 220) 시기에는 중국의 중원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이미 이곳에 유입되어 살고 있었다는 것이 유적을 통해 밝혀졌다. 


2. 당(唐) 시기

홍콩과 이 일대의 지명을 담은 기록은 당시의 문헌에서는 찾기 어려운데 유일하게 당(唐, 618~907)나라 시대의 사료를 통해 나타나는 곳이 툰먼(屯門)이다. 참고로 ‘홍콩(香港)’이라는 명칭은 명나라 때의 한 마을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당시 툰먼은 광동 지역 주강 삼각주의 교통의 요충지로서 약 1,600년 전부터 중요한 해상 관문이었다. 페르시아, 아랍, 인도, 인도차이나 반도, 남태평양 지역의 인사들이 이 일대로부터 해상을 통해 중국과 무역을 할 때 반드시 툰먼을 거쳐야 했다. 이곳의 중요도는 점점 커져 736년에는 군대 2,000명이 파병되어 지키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군대를 따라 내려와 이곳에서 상업을 하는 사람들도 증가했다. 

한편 당나라 초 홍콩 일대는 광저우의 남해군 보안현(南海郡 寶安顯)에 편입되어 있었고 이후 광저우 동관현(東莞顯) 관할에 속하게 된다. 당시 이 지역에는 현지 토착민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고 연안에는 수상 생활을 하는 단민(蜑民)이 터전을 잡아 집단 생활을 했다. 

단민은 배 위에서 거주했는데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나중에는 소금을 생산하는 염업(鹽業)에 종사하기도 한다. 한편 북방 중원 지역에서 내려와 촌락을 이루며 사는 중국인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이곳 원주민들과 동화되어 생활하였다. 


3. 송(宋) 시기

북송(北宋, 960~1127) 시기에는 현재 홍콩섬의 서쪽, 란타우 섬의 연안 일대에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신계 주민과 홍콩 인근 섬 주민들은 농경, 식물 재배, 벼농사, 채소 및 과일 재배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산기슭에서는 차를 재배하였다. 또한 송 건국 이전 시기에는 현재의 타이포(Tai Po, 大埔)와 란타우 섬에 주요 진주 채집장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북송 말에 중원 지역은 혼란에 휘말려 북방인들이 남하하게 되는데 이들은 홍콩 북부, 즉 지금의 신계 지역에 거주하게 된다. 그리고 몽고족이 세운 원(元)나라의 침입으로 송의 황제와 군대는 연패를 거듭하며 광동 지역까지 밀려 내려온다. 이때부터 남송(1127~1279)의 두 황제는 광동 지역에서의 고달픈 피난 생활을 거듭하게 되는데 1276년 원나라는 광저우를 공격해옴에 따라 황제는 매위(梅蔚)쪽으로 피신을 한다. 

이곳은 현재의 란타우 무이워(Mui Wo,梅窝) 혹은 칭이(Tsing Yi,靑衣)로 추측된다. 그해 4월 황제는 다시 카우룬 시티(Kowloon City, 九龍城)의 남쪽으로 옮긴 후 사이완호에서 배로 30분 거리의 섬 동룡도(東龍島)를 잠시 거쳐 취엔완(Tsuen Wan,荃灣)에 거점을 마련한다. 

하지만 그 해 10월 원나라 군대가 취엔완을 공격해옴에 따라 송황제는 광동성 후먼(虎門)으로 피신하다가 결국 지양먼(江門)에서 전투에 패해 남송은 멸망하고만다.

지금도 카우룬 시티에 가면 ‘송왕대(宋王臺)’라는 당시 역사의 흔적이 있는데 홍콩에서 병사한 송나라 황제 단종이 생전에 올라가 멀리 둘러봤던 곳을 기념한 장소이다. 또한 여러 종류의 음식을 큰 그릇에 담아 먹는 홍콩의 전통 음식 푼초이(盆菜)의 기원이 당시 백성들이 황제를 위해 집집마다 갖고 있는 음식을 내온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이 당시와 관련이 있다. 


요약컨데 홍콩은 당나라 이후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의 주요 거점으로서 역할을 하였고 특히 툰먼은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북송과 남송 시대를 거치며 당시 홍콩 일대는 어업과 염업이 발달한 바, 조정에서는 군대를 파병하여 이곳에 주둔케 하였다. 

한편 송나라의 두 황제가 피신을 하는 동안 이를 수행한 군대와 분산된 병력과 일부는 이곳에 남아 거주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이후 이 지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그 다음 왕조인 명, 청 시대에 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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