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 배운 자신감, 한국이 잃어버린 매력 - 박완기 홍콩법정변호사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쿠바에서 배운 자신감, 한국이 잃어버린 매력 - 박완기 홍콩법정변호사

53969.jpg
만화 True Beauty 캡처

 

 

우리는 왜 어떤 이에게 이유 없이 끌리는가? 완벽한 이목구비나 조각 같은 몸매를 가져서도 아닌데 그저 존재 자체로 공간을 장악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 힘을 '매력'이라 부른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이 일상의 불안을 철학의 시선으로 해부했듯, 이 매력이라는 지극히 본능적인 끌림의 근원을 파고들어가 보면 우리는 '자신감'이라는 견고한 심리적 토대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자신감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길러지고 혹은 훼손되는지를 들여다볼 때, 우리는 쿠바와 한국이라는 대조적인 두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 사회주의 체제 아래 상업 광고가 극히 제한된 이 독특한 사회는 매력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쿠바에는 '올여름 우리가 가져야 할 완벽한 비키니 몸매'도, '주름 하나 없는 20대 같은 피부를 위한 기적의 크림'도 거의 없다. 자본이 만들어낸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대중의 무의식에 끊임없이 주입되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다.

 

물론 쿠바에도 미의 기준은 존재한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은 외모를 가꾸려 노력하며, 특히 관광 산업이 발달한 도시에서는 서구적 미의 기준이 점차 침투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쿠바를 여행한 이들과 일부 문화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상업 광고의 부재가 만들어낸 상대적으로 다양한 신체 이미지에 대한 수용성이다.

 

쿠바 문화에서 길거리와 가족 모임에서 "Qué linda eres(너 정말 예쁘다)", "Qué fuerte te ves(정말 건강해 보인다)"와 같은 칭찬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이는 특정 기준에 부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의 표현이다. 살사나 룸바 같은 춤이 삶의 일부인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크기나 모양에 상관없이 리듬을 표현하는 도구로 인식한다. 몸은 평가와 교정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삶의 환희를 발산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 결과 많은 쿠바인들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편안함과 자기 긍정이라는 자산을 갖게 된다. 이는 억지로 쥐어짜내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끊임없는 외모 평가와 비교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발산하는 존재론적 자신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들의 유혹적인 힘이 발현된다. 그 힘은 꾸며낸 제스처나 계산된 미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 즉 내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에너지인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우리는 거대한 '거울의 방' 안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을 켜면 소셜미디어가, TV를 켜면 광고가, 거리를 걸으면 전광판이 끊임없이 이상적인 인간상을 비춘다. 더 큰 눈, 더 오똑한 코, 더 갸름한 턱선, 더 길고 마른 몸. 이 이미지들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이자 기준이 된다. 이어령 교수가 한국 문화를 '축소지향의 미학'으로 분석했듯,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의 몸과 삶마저도 끊임없이 편집하고 보정하며 '더 나은 버전'으로 재구성하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러한 외모 지상주의는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 "키는 무조건 커야 해", "코가 조금만 더 높았으면…", "너는 쌍꺼풀 수술만 하면 정말 예쁠 텐데." 애정에서 비롯된 말들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금의 너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불안의 메시지가 깔려 있다. 타인과의 비교는 일상이 되었고 외모는 학력, 직업과 더불어 개인의 가치를 증명하는 중요한 '스펙'이 되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성형수술 및 피부미용 산업을 보유하게 되었다. K-beauty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고, 한국인의 세련된 외모 관리 노하우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외모 가꾸기가 자기 표현과 즐거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거울, 사회라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서 끊임없이 결점을 찾아내고 그 결점을 메우기 위해 시간과 돈, 그리고 감정을 소모한다.

 

전 세계가 K-pop과 K-drama를 보며 한국인의 세련된 외모와 스타일을 선망하고 모방하는 이 기이한 역설 속에서 정작 우리는 스스로를 가장 가혹하게 심판한다. 우리는 채울 수 없는 완벽이라는 신기루를 좇는 시시포스와 같다. 정상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완벽한' 타인이 등장하고 불안의 돌덩이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이 끝없는 불만과 불안 속에서 쿠바인들이 가진 것과 같은 존재론적 자신감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매력과 자신감은 결국 '충족감'에서 온다. 쿠바인들의 매력은 그들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발산된다. 반면, 우리의 불안은 우리가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영원히 도달 불가능한 '완벽'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생겨난다.

 

우리가 진정으로 되찾아야 할 것은 더 높은 코나 더 날씬한 몸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를 온전히 긍정할 수 있는 용기다. 거울 앞에서 결점을 찾는 대신 쿠바의 어느 할머니가 손주를 보듯 따뜻한 눈길로 나 자신을 바라봐 주는 것. 나의 작은 눈, 낮은 코, 통통한 볼살이 누군가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나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임을 받아들이는 것. 타인에게 외모에 대한 조언이나 평가를 함부로 하지 않는 것. 

 

어쩌면 가장 강력한 매력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될 필요 없이 그저 나 자신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그 고요한 자신감일지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어떤 화려한 외모나 값비싼 장신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우리는 이제 거울의 방에서 걸어 나와 K-pop 가수들의 완벽한 무대나 광고 속 연예인들을 모방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우리 각자의 고유한 리듬으로 삶의 무대 위에서 춤을 출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감 넘치는 사회를 만들고 진정한 매력 있는 한국문화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박완기 변호사.jpg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