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태국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이 있다. 카우룬시티 사우스월로드(South Wall Road)에 있는 태국촌이다. 튄마선의 송웡토이 (Song Wong Toi)역 B3 출구로 나가 우측으로 몇 걸음이면 다다른다. 이 도로를 중심으로 태국 식당과 상점들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다. 비단 사우스월로드뿐만 아니라 주변 곳곳에 태국어 간판들이 보인다. 그 아래에는 태국의 음식, 과일, 분식, 향료, 수공예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소위 ‘작은 태국’이라 부를 만하다.
태국인들이 카우룬시티에 정착한 이유는?
정부 통계 자료에 의하면 홍콩 내의 태국인은 약 1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중국인 인구 중 2%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중 약 40%가 카우룬시티의 태국 마을에 거주한다. 홍콩 안의 작은 태국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그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홍콩의 경제가 비약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태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는 좀 더 나은 생활에 대한 욕구로 홍콩으로 건너와 신랑감을 구하려는 붐이 일었다. 태국의 화교 중에는 광동성 챠오져우와 샨터우 출신들이 많았다. 이들의 후세들은 챠오져우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참고로 챠오저우는 광동 북부 끝자락에 위치하여 광동어와는 또 다른 방언이 구사된다). 태국의 젊은 여성들 중 언어 소통이 가능한 이들이 홍콩으로 건너와 남편감을 찾았다. 이러한 조류는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당시 차오져우인들이 카우룬시티에 대거 거주하였기에 이곳에 자연스럽게 태국촌이 형성된 것이다. 이 일대를 둘러보면 태국 식당과 외에도 챠오져우(潮州) 식당들 역시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런데 카우룬시티에 태국 관련 상권이 발달한 것은 지리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조금만 나아가면 카이탁 공항이 나온다. 많은 태국인들이 비행기에 내려 바로 다다르게 되는 동네가 카우룬시티였다. 이에 의해 80년대 태국에서 온 가사도우미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북쪽으로는 영국, 홍콩, 중국 정부 모두가 관리를 포기하여 ‘삼불관(三不管)’으로 불렸던 구룡성채가 위치했다. 불법 체류자들의 소굴이자 무법천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한때 수송 인원 세계 3위, 화물 수송 세계 1위에 다다랐던 카이탁 공항과 역시 한때 인구밀도 세계 1위를 기록했던 구룡성채를 인근에 두었던 덕에 태국 상가는 번성기를 누렸다. 지금은 공항 이전 및 구룡성채의 철거로 상권은 예전만 못하다. 하나 태국촌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으며 태국 최고의 축제인 송크란도 매년 4월 개최되고 있다.
홍콩에서 만나는 태국의 송크란 축제
나는 칼럼 작성을 위해 현장을 방문하기 전, 보통 우리 학원의 한국어반 홍콩인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이번 방문지는 태국촌의 송크란 축제라고 했더니 ‘좀 무섭다’, ‘아예 수영복을 입고 가라’라는 말을 들었다. 무섭다고? 올해 송크란 축제가 열리는 기간은 4월 11일부터 13일까지인데, 나는 마지막 날인 13일(일요일)에 현장을 찾았다.
태국촌에 들어서니 곳곳에 총을 든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은 지인들에게, 혹은 행인들에게 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총 안에는 실탄이 아닌 화학명 H2O라는 액체가 들어 있어 사람들의 옷을 흥건하게 만들었다. 음, 그래서 무섭다고 했군..
송크란(송끄란)은 태국의 설날에 해당한다. 이를 기리는 명절이 송크란 축제인데 4월 중순(보통 4월 13~15일)에 열린다. 송크란 축제 하면 상대방에게 인정사정 없이 물을 뿌리거나 물총을 쏴대는 장면이 연상된다. 이는 액운을 씻고 복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복을 빌어주기 위해 손에 성수를 뿌려주던 전통이 계승, 발전되어 내려온 것이다.
물만 뿌리는 게 아니다! 먹거리가 가득, 공연 및 체험 행사도
홍콩에서의 송크란 축제는 태국촌 건너편에 위치한 카펜터 로드 공원에서 열렸다. 공원을 메운 30여 개의 부스가 관광객을 맞이했다. 대부분 길거리 음식, 과일, 식료품을 파는 먹거리 매장이었다. 그 외에 기념품, 수공예품을 전시한 부스 및 태국 전통 의상을 입어 보는 체험 행사도 마련되어 있었다.
한편에는 대형 부처상과 코끼리상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방문객들이 순서대로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또한 다른 한쪽에는 공연 무대도 보였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젊은 두 남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독특한 시설은 공원 중앙에 설치된 특설 링이었다. 아마 이 링 위에서 무에타이나 킥복싱 경기가 펼쳐질 모양이었다.
나는 원래 송크란 축제를 방문한 후 인근의 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행사장 곳곳에 마련된 먹거리들이 내 시각과 후각을 어지럽혀 계획 수정에 들어갔다. 꼬치 요리와 튀김, 현장에서 제조된 레몬 음료 등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야채튀김 같이 생긴 모양에 작고 마른 새우가 촘촘히 박힌 녀석은 딱 내 취향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물 뿌리기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행사는 오후 2시에 시작되는데,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가지며 45분씩 진행된다고 했다. 물뿌리기 행사에 참여하려면 등록을 해야 한다.
태국인들과 홍콩 현지인들이 하나가 되어 즐기는 정겨운 모습에서 한편으로 부러움도 느꼈다. 우리도 대표적 한국의 전통 축제를 가지고 와서 현지인들과 즐긴다면 무엇이 좋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 참고 자료 >
香港故事,閔捷主編, 三聯書店,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