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쿼시 코트에서 배운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경쟁 - 박완기 홍콩법정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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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쿼시 코트에서 배운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경쟁 - 박완기 홍콩법정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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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전국체전에 홍콩대표팀의 스쿼시 선수나 감독으로 참가해왔다.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다시 코트 위에 설 때면 고등학과와 대학교 대표 선수로 뛰던 학생의 나와 마주한다. 그 때의 열정을 지금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경기를 하기 위해 코트에 들어갈 때면 경쟁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국체전에서 각자 자신의 종목을 준비하고 있는 선수들을 마주하면 마치 전투에 나서는 전사의 모습이다. 승리 아니면 패배만이 존재하는 제로섬 게임의 전투. 이러한 적자생존의 논리는 비단 스포츠 경기장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때로는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경쟁의 유일한 모습일까? 스쿼시는 그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고 본다.

 

일반적인 라켓 스포츠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상대를 마주 본다. 시선은 끊임없이 상대를 향하고 모든 전략은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데 집중된다. 상대의 실수가 나의 점수로 이어진다. 이는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경쟁의 방식이다. 하지만 스쿼시는 이런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앞과 옆 삼면이 벽, 뒤면은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코트 안에서 두 선수는 서로를 등지거나 나란히 선 채 같은 방향 즉 정면의 벽을 바라본다.

 

이 간단한 구조의 차이가 경쟁의 본질을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내가 친 공은 벽을 맞고 상대에게 가게 되며 상대가 받아친 공은 다시 나에게 도전 과제로 돌아온다. 경쟁의 초점이 ‘상대’가 아닌 ‘공’과 ‘벽’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어떻게 상대를 무너뜨릴까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공을 더 정확하게 까다로운 위치로 보낼 수 있을지가 목표가 된다. 이는 선수들로 하여금 자신의 기량을 어떻게 최고로 끌어올릴지에 집중하게 된다. 민첩하게 움직여 빠르게 자신에게 오는 공을 받기 위한 반복적인 훈련과 긴 랠리를 집중적이 흔들리지 않게 이겨낼 수 있는 체력 훈련을 한다. 흥미롭게도 스쿼시가 1830년경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해로우 스쿨 (Harrow School)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이 스포츠가 지향하는 신사적인 경쟁의 철학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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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철학의 백미는 경기 중의 에티켓에서 드러난다. 샷을 마친 선수는 다음 플레이를 할 상대의 동선을 확보해주기 위해 신속히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 이는 나의 플레이가 끝났으니 이제 당신의 차례라는 존중과 배려가 바탕이 된 경기 방법이다. 더 나아가 상대가 내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완벽한 샷을 구사했을 때 점수를 주는 상황에서도 라켓으로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박수의 찬사를 보내는 문화가 있다. 이는 상대의 승리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탁월한 기량 그 자체에 대한 순수한 경의의 표시다. 공이 한 벽의 면과 다른 벽면이 이어지는 곳에 맞고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튀어 상대가 실점을 하게 되면 순전히 내 실력으로 획득한 포인트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제스처로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기도 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경쟁’의 원리는 비단 스쿼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드넓은 필드에서 오롯이 자신의 스윙과 정신력으로 싸우는 골프, 긴 레인 위에서 10개의 핀과 레인의 상태하고만 승부하는 볼링에서도 같은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운동들은 타인을 이기려는 과도한 욕심이 오히려 자신의 스윙을 망치고 팔을 경직시켜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길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경쟁의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즉 자기 자신에게로 돌릴 때 비로소 최고의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 깨달음은 자녀 교육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나는 두 아들에게 라켓을 쥐여주며 승리의 기술보다 자신의 자세를 먼저 가다듬는 법을 배우길 바랐다. 남과 비교하며 일희일비하기보다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려는 노력의 가치를 체득하길 원했다. 코트 위에서 아이들이 상대의 실수에 환호하기보다 자신의 멋진 샷에 만족감을 느끼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 스포츠가 아이들에게 건강한 경쟁의 의미를 가르치는 훌륭한 교실이 되어주고 있다고 확인한다.

 

물론 경쟁은 사회 발전의 필수 동력이다. 하지만 그 방향이 타인을 폄하하는 것으로 향할 때 우리 사회는 병들고 관계는 무너질 것이다. 진정한 성장은 남을 이기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탁월함을 연마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타인의 탁월함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건강한 경쟁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진정한 경쟁의 목표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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