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맛) 트레일 (6) 추우위엔(屈原)과 드래곤 보트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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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맛) 트레일 (6) 추우위엔(屈原)과 드래곤 보트 레이스

음력 5월이 되면 중국의 강이나 호수에 일제히 축제가 이어진다. 龍船(dragon boat)경기이다. 용처럼 된 배 모양에 20여명의 사람이 노를 저으면서 빠르기를 다투는 경주이다. 강이나 호수가 없는 홍콩도 예외가 아니다. 그대신 홍콩에는 바다가 있다. 용선은 큰 파도가 있는 바다는 위험하다. 그래서 홍콩섬의 북동쪽 스탠리 만이나 신계의 다이포만 등 파도가 적은 해수욕장 근처를 택하여 드래곤 보트 레이스가 시작된다. 홍콩사람보다 홍콩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외국기업이 더 열심이다. 수주일 전부터 회사내에 노를 저을 사람들을 정하여 업무가 끝난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하여 하루 몇 시간씩 합동 훈련을 하여 손발을 맞춘다. 경기 당일에는 장크를 전세내어 전직원이 참가 응원도 하고 후렴파티를 한다. 다국적 직원을 거느린 다국적 회사의 단합에는 용선경기가 으뜸인 것 같다. 음력 5월 5일. 홍콩의 단오절은 한여름이다. 뜨거운 햇살을 받고 노를 젓는 팔뚝은 남녀 할 것 없이 구리빛으로 단단하다. 단오절이 되면 중국 전국에 벌어지는 용선경기중 호북성의 멱라강(水+目羅江)의 경기가 그 원조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부터 2300년전 5월 5일 중국역사에 길이 남은 애국詩人 屈原이 水+目羅江에서 投身자살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온 그가 깊은 물 속으로 몸을 던져 죽음을 맞자 사람들이 그를 구하려고 재빨리 배를 저어 갔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매년 5월 5일 즉 단오가 되면 屈原에 祭祀를 지내고 屈原을 구하고자했던 뜻을 기려 용선경기를 해왔다고 한다. 더 빨리 달려갔더라면 屈原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염원에서 인지 모른다. 기원전 5세기에서 3세기사이 250년간 중국에는 戰國시대가 있었다. 수많은 나라들이 서로 싸우는 때였다. 싸우고 병합하여 나중에는 전국 7雄이라고 하여 7개의 나라로 정리되었다. 그 중 가장 강하였던 나라는 秦과 楚였다. 두 나라는 남북으로 맞붙어 있었다. 秦이 말(馬)과 밀가루(麥)를 중심으로 하는 북쪽문화를 대표한다면 楚는 배(船)과 쌀(米)을 중심으로 하는 남쪽문화를 대표하였다. 중국이 수 천 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남북대결의 모습이었다. 超는 당초 양즈강 中上流로 오늘날 무한과 동정호를 중심으로 건국된 나라였으나 후에 양즈강 下流의 吳와 越이 서로 싸워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타 양즈강 이남전체를 통일, 강대한 국가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북쪽에서 세력을 펴고 있는 秦과 남북대결구도를 이루게 되었다. 屈原은 호북성 제귀 사람으로 楚의 귀족으로 진에 대해 主戰論을 주장하였다. 진은 교활하므로 군사력을 갖추어 여타 6國과 연합하여 진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국왕(懷王)은 屈原의 주장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후에 秦의 유화정책에 넘어가 진의 수도 함양을 방문하였다가 그곳에서 포로가 되어 죽음까지 맞게된다. 그 후 그의 아들이 왕(頃 王)이 되었지만 父王의 수모를 잊고 屈原의 抗秦 개혁정치를 외면하였다. 屈原의 제삿밥 쫑쯔(粽子) 楚의 조정내 親秦의 귀족들은 진과의 전쟁보다는 평화 추구에 열중하였다. 屈原이 보기에는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은 형세였다. 그는 어린왕에게 秦을 경계하고 부패한 親秦 귀족을 멀리하는 정치쇄신을 요구하였지만 大勢에 밀려 오히려 그 자신이 추방되고 만다. 屈原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지 얼마 후 자신의 예언대로 秦은 楚를 침입, 그의 조국은 순식간에 망하고 만다. 屈原은 조국의 수도가 진에게 유린된 것을 알고 以身殉國을 결심하고 고향 근처 水+目羅江으로 가 投身한다. 그가 죽기 전에 지은 애국시 "조국을 떠나면서"라는 의미의 詩歌, "離騷"는 지금까지 애송되어 中國文學의 고전으로 되어 있고 19세기 중엽에는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영역되기도 하였다. 몇 번이나 죽더라도 한 번 옳다고 생각한 바를 굽히지 않는다는 애국애족의 기풍이 그 詩속에 살아있다. 홍콩에서 유명한 가지각색의 딤섬(点心)중에 쌀문화인 우리 입맛에 잘맞는 것이 있다. 쫑쯔(粽子)라는 것이다. 찹쌀로 된 밥에 잘게 쓴 닭고기 등을 넣어 간장으로 약간 맛을 내어 먹기가 좋다. 삼각뿔 모양으로 대나무잎이나 갈대잎으로 쌓여있다. 그냥 익혀낸 뜨끈뜨끈한 쫑쯔는 둘러 쌓여 있는 잎을 하나씩 벗겨내야 먹을 수 있다. 향긋하고 씁스럼한 자스민 차를 마시면서 쫑쯔를 먹으면 차맛과 쫑쯔의 잘 익힌 찹쌀 밥맛이 입안에서 잘 어울린다. 강물에 자살한 屈原을 구하고자 노를저어 달려갔지만 시체마저 찾지 못한 楚나라 사람들은 屈原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음식을 마련하고 찹쌀로 밥을 지어 祭를 지낸다. 그리고 그 밥과 음식 등을 섞어 강가에 늘려있는 갈대잎으로 잘 싸서 강물에 던졌다. 물고기로 하여금 이 祭밥을 먹되 굴원의 시체는 먹지 말고 잘 지켜달라는 기도를 보냈다. 사람들은 2300년이 지난 지금도 멱라강 강물에 쫑쯔를 던져주면서 屈原의 시체가 지금도 강속 어딘가에 잘 지켜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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