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在香港 (7) 시아오와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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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在香港 (7) 시아오와톨

방선반장에 가면 꼭 맛보아야 하는 디저트가 있다. 그것은 옥수수 가루로 쪄서 엄지손가락만 하게 만든 "시아오와톨"(小窩斗)이다. 19세기말은 중국으로서는 격동기였다. 서구열강 진출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국내 수구세력의 하나인 의화단이 난을 일으켰다. 수구세력의 후견인으로 자처한 서태후가 의화단을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었다. 서태후는 황제의 모친으로 황제를 대신하여 권력을 전횡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황제는 젊은 개혁파와 손을 잡고 모후 서태후를 쫓아내고 영국과 같은 입헌 군주국을 만들려는 원대한 궁정혁명을 꾸미고 있었다. 그러나 일이 잘못되어 혁명에 가담키로 한 개혁파 인사가 마지막 배신을 함에 따라 혁명의 음모는 발각되고 분노한 서태후는 황제를 궁궐 속에 구금시킨다. 서태후는 더욱 보수 일색으로 변해가고, 서태후의 비밀지원을 받고 있던 의화단원들은 無所不爲였다. 그러나 문제의 발단은 의화단원들이 서양의 선교사를 습격하고 급기야 북경내 미국, 영국 등 서방 열강의 외교공관을 포위해 버린 것이다. 서방 열강들은 의화단의 난으로 불안해하고 있는 북경내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에 대해서 內政간섭을 하고 싶었던 서방 열강들에게 군대까지 파견하여 내정간섭을 할 수 있는 좋은 핑계를 주게된 것이다. 일본도 포함된 미·영·불 등 서방의 8국연합군은 천진에 상륙, 파죽지세로 북경으로 진격한다. 의화단을 비밀리에 조종한 것이 탄로 난 서태후는 북경의 자금성을 탈출할 궁리를 하다가 궁녀복으로 변장하여 자금성을 탈출, 피난대열에 끼여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아났다. 피난민 속의 도망길은 허기진 고생길이었다. 이 때 서태후를 즐겁게 해준 것은 옥수수 가루로 만든 하잘 것 없는 개떡이었다. 먹을 것이 없었던 서태후에게는 궁중의 어느 음식보다 맛있었다. 그 후 8국 연합군은 의화단의 난을 진압하고 서태후를 피난처 서안에서 환궁시켰다. 환궁한 서태후는 피난 시절에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 옥수수 떡을 다시 찾았다. 놀란 사람은 황실 주방장이었다. 서태후께서 세상에 맛없는 옥수수 개떡을 다시 찾으시니 야단인 셈이다. 그는 옛날 明太祖 주원장과 당시 황실 주방장의 故事를 기억해내었다. 주원장도 한때 중국을 통일하기까지는 일개 반란군 두목이어서 때로는 전장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지 맛있게 먹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황제가 된 후에 전장에서 어렵사리 구해 먹던 음식을 곧 잘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명태조의 황실 주방장은 황제가 찾는 음식을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올렸다고 하는데, 황제는 이 때 화를 내며 세상에 이렇게 맛없는 음식을 일찌기 먹어본 적이 없다고 소리치며, 주방장의 무성의로 요리를 잘 못했다고 오해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주방장은 쫓겨나고 말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고사를 기억한 서태후의 주방장은 꾀를 냈다. 서민들에게 대용식으로 쓰이던 옥수수떡의 사이즈를 우선 1/5정도로 줄였다. 그리고 옥수수가루를 더 부드럽게 하고 그 속에 사탕을 살짝 넣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小窩斗이다. 원조와 다르게 만든 황실용 시아오와톨이 서태후를 만족시켰다고 한다. 도루묵 : 선조대왕의 시아오와톨 이와 유사한 故事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이른바 "도루묵"이란 고사다. 요즘은 생선가게에 잘 보이지 않아서인지 먹어본지도 오래되었지만 옛날 60∼70년대 서울에서 지방 유학생을 위한 전문 하숙집에는 하숙생을 위한 생선 반찬에 항상 "도루묵"이 빠지지 않았다. 생선의 모습을 보면 비늘은 은색으로 반짝이는데 이름은 묵어라하여 검은색(默)이고 맛도 없었다. 가격도 매우 쌌는지 하숙생 밥상에 단골로 올랐던 기억이 난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대왕이 왜군에 쫓겨 서울을 버리고 평안도로 몽진 가고 있었다. 난리통에 제대로 된 수라가 나올 리 없었다. 야반도주식으로 저녁도 못 드시고 경복궁을 출발한 선조대왕은 임진강을 건널 무렵, 경황 중에 하루 꼬박 먹지도 못하여 허기가 심하여 탈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 측근에서 모시고 있던 신하가 중국 사신이 선물로 가져온 상투 속에 비상용으로 깊이 감추어 둔 귀한 알사탕을 꺼내 찬물에 풀었다. 이 멀겋고 달착지근한 맹물을 마신 선조대왕이 기운을 차릴 정도로 궁색한 몽진길이었다. 그러한 시절에 묵어라는 이름의 생선이 진상되었다고 한다. 선조대왕은 생선 맛 보신지 오래되어서인지 그 묵어를 맛있게 드셨다. 하도 맛있고 또 그러한 생선을 먹을 수 있는 것이 고마워서인지 선조대왕은 생선의 이름을 묻고 은빛나는 생선에 어울리는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하셨다. 그 후 전란이 끝난 후 환궁하신 선조대왕이 그 생선을 다시 찾게 되고 우둔한 어선방은 그 생선을 있는 그대로 요리해 드렸으니 맛이 있을 리 없었다. 크게 화를 낸 선조대왕은 '은어'라는 이름이 아깝다고 도로 '묵어'로 부르도록 하였고, 그 이후 그 생선이름은 "도루묵"이 되었다는 고사이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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