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영국 왕실의 남자, 필립공의 홍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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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영국 왕실의 남자, 필립공의 홍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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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1일은 홍콩의 중국 반환 28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이면 1997년 이전의 홍콩을 떠올려 보는 현지인들이 많을 것 같다. 당시의 사회와 생활, 그리고 인물들은 30대 이후로 접어든 홍콩인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 홍콩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필립공(에든버러 공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한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으로 알려진 필립공은 틈틈이 홍콩을 찾으며 친민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몇몇 지역에는 지금도 그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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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의 부선장으로 처음 방문한 홍콩


필립공은 1921년 그리스 코르푸섬에서 그리스와 덴마크 왕자였던 부친과 빅토리아 영국 여왕의 후손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리스와 덴마크 양국에서 모두 왕위 승계 대상이었던 로열패밀리 출신이다. 하지만 이듬해 큰아버지가 군부에 그리스 왕좌를 빼앗기고 필립공의 가족도 영국 해군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한다. 


여왕과 처음 만난 것은 1939년 다트머스 왕립 해군학교에서였다. 아버지 조지 6세를 따라 시찰을 나온 13세 공주는 훤칠한 18세 사관후보생 필립공에서 호감을 갖는다. 졸업 후 필립공이 영국해군에 입대했지만, 이들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애를 이어 갔고, 결국 8년 만에 결혼에 이르렀다. 


 

단민들에게 캔디를 건네던 필립공     

 


당시는 그의 아내가 여왕으로 등극하기 전이었다. 1945년 9월 2일, 필립공의 시선은 약 180미터 떨어진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 현장을 향해 있었다. 일본의 외무장관인 시게미쓰 마모루가 USS미서리 함선에서 항복 문서에 사인 중이었던 것이다. 


필립공과 그의 함대는 홍콩에서 2개월을 머물렀다. 빅토리아 하버에는 바다 위 배에서 거주하는 단민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어업에 종사하지 않는 단민들은 주둔 중이었던 함선을 위해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보수, 페인트칠, 청소 등의 잡일을 도맡아 했고, 배 위에서 파티가 열리면 이들의 신분은 종업원으로 전환되었다. 


그들과 군인들은 돈독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함선에서 일하는 단민들은 모두 여자였다. 그중에는 나이 어린 소녀들도 있었다. 필립공과 군인들은 그들에게 종종 음식과 사탕들을 건넸다. 단민들 후손에 의하면, 필립공은 홍콩을 떠나기 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정직한 단민들은 요구하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필립공의 친절함은 단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전언이다.

 


퇴역 후 다시 방문한 홍콩


필립공이 1959년에 홍콩을 다시 찾았을 때는 많은 상황이 변해 있었다. 필립공의 아내 엘리자베스가 여왕의 자리에 등극했으며 그는 퇴역한 후였다. 3일간의 방문 중 필립공은 경찰서를 찾아갔다. 1945년 홍콩에 주둔 시 9살이었던 단민 소녀 호콰이잉을 찾기 위해서였다. 14년 만에 만난 그녀는 만찬에 초대되었다. 


필립공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연설하였다. 홍콩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던 당시의 상황을 소회하며 발전 중인 홍콩의 모습에 찬사 및 축복을 보냈다. 방문 기간 그는 여왕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퀸 엘리자베스 병원 기공식을 주재하였다. 구룡반도에 위치한 이 종합병원은 지금도 홍콩의 주요 의료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다음 방문은 1975년이었다. 반부패 척결 기구로 탄생한 염정공서(ICAC) 설립 다음 해이다. 당시 홍콩은 부패 문제가 최대의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시기였다. 1981년에는 그의 이름으로 사이잉푼에 개설된 필립 덴탈 병원의 개원식에 참석하여 테이프 커팅을 하였다. 이 병원은 현재 홍콩인들이 ‘필립공’하면 먼저 떠올리는 곳이 되었다. 


1983년에는 에든버러(필립공) 공작상 훈련 캠프 개명식을 주재했다. 에든버러 공작상은 국제 어워드 행사로, 우수한 젊은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되었다. 



왕실 부부가 함께 방문한 1986년의 일정은 꽤 길었다. 중국과 홍콩 간의 주권 이양 체결이 이루어진 다음 해였다. 영국 왕실의 방문은 사회적 격변기를 앞둔 홍콩인들에게 체제 보장을 확인 시켜주기 위한 행보였다. 


여왕은 새 입법회 건물을 공개하고 공공 주택 단지 주민들을 방문했다. 부부는 홍콩 컨벤션 및 전시 센터 기공식, 기념 경마 대회, 그리고 왕실 예술 공연에도 참석했다. 

3일 후 여왕은 귀국했지만, 왕자는 후속 일정을 소화했다. 자신이 설립한 세계자연기금(WWF) 총재 자격으로 윈룽에 있는 마이포 습지를 방문하여 WWF 홍콩 지부가 개관한 교육 센터를 공개했다. 

이 외에도 필립공은 홍콩의 국제적 문화 교류, 교육, 환경 보호, 공익사업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렇게 그는 틈틈이 홍콩을 방문하며 인연을 이어 나갔다. 


2021년 4월 9일에 전해진 비보에 영국뿐만 아니라 홍콩인들도 슬픔에 잠겼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들은 홍콩인들은 영국 대사관 앞에 필립공을 기리는 꽃을 놓으며 추모했다. 필립공의 장례식은 홍콩에도 생중계되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멀리서 그의 명복을 빌었다. 영국 왕실의 남자 필립공은 오랜 시간 홍콩인들의 가슴속에 머물러있을 듯하다.


 

< 참고 자료 >

‘74년 여왕 곁 지켰다…英 엘리자베스 2세 남편 필립공’, 중앙일보 

Prince Philip andHong Kong: The day he distributed candy to the women workers of the Tanka boatcompany on HMS Tamar after the Japanese surrender, BB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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