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 여행, 이건 알고 가자~ (2) - [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선전 여행, 이건 알고 가자~ (2) - [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지난주 칼럼에서는 선전의 경제 특구 지정 배경에 대해 소개하였다. 덩샤오핑은 1978년 11기 3중전회 이후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하면서 광동성의 선전, 주하이, 산터우와 푸지엔성의 샤먼 4곳을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이는 홍콩, 대만 및 해외 화교 자본 유치를 목표로 한 실험적 조치였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 천윈의 새장 경제론

 

 

경제특구는 향후 중국의 개혁개방 성공 여부를 가늠할 실험적 성격을 띠었다. 경제특구 메커니즘은 다음처럼 도식화된다. 먼저 중앙이 정책 목표(개방·성장)를 제시한다. 다음으로 특정 지역에 제도적 예외성(유연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외자 유치 및 운영이 돌아가는지 검증한다. 마지막 단계로 성과를 확대 적용하고 실패 요소는 조정한다. 

 

덩샤오핑은 경제특구를 통한 개혁개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이론을 내세운다. 그중 유명한 것은 ‘흑묘백묘론’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주장이다. 파리와 벌레가 집안으로 들어올까 봐 창문을 닫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도 비슷한 입장을 담고 있다. 중국이 결국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냐는 대내외적 시각과 비판에 대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즉 중국만이 지닌 독특한 사회주의라 말한다. 

 

하지만 개혁개방을 추진하는과정에 있어 부작용과 몇몇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 특구가 선전을 비롯하여 주로 광동성 및 푸지엔성에 집중되다 보니, 중국내에서 경제 격차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는 모두가 평등해야 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모순되는 현상이다. 

 

내부적으로도 급격한 개혁개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특히 경제학자 관료 출신인 천윈은 중국이 사회주의 궤도 이탈로 불안성을 맞이할 수 있음을 경계하였다. 그의 ‘새장경제론’은 이와 같은 우려에서 탄생하였다. 새(시장 메커니즘)가 움직이되 새장(계획 경제, 통제의 틀)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속도 조절의 필요성과 궤도 이탈의 위험성을 경고한 천윈은 일종의 레드팀이라 할 수 있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개혁파 덩샤오핑, 새장경제론을 주장하는 보수파 천윈의 의견 차이는 극한의 대립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논쟁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추진 중인 개혁개방의 성과를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덩샤오핑이 선전을 다녀간 남순강화는 이러한 배경으로 추진되었다. 


그래서 찾아간 선전 ! – 역사적 남순강화

   

 

남순강화 南巡講話.jpg

 

 

 

덩샤오핑은 1984년 1월에 광동과 푸지엔  시찰에 나섰다. 이는 1992년 남순강화와 구분되는 ‘작은 남순’으로 불리며, 개혁개방 초기 특구 정책을 점검, 지지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남순강화(南巡講話)’는 남쪽을 순회(시찰)하며 개혁개방이 옳으니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한 것이다.    

 

1984년의 남순강화는 1월 24일 시작되었다. 먼저 선전, 주하이, 샤먼을 시찰했다. 양상쿤, 왕전 등 군, 정 실세들이 동행해 정치적 무게를 더했다. 선전을 방문해서는 ‘선전의 발전과 경험은 중국이 경제특구를 설립한 정책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입증했다’는 휘호를 남겼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리엔화샨 공원의 덩샤오핑 동상에 새겨진 문구가 바로 이때 쓰여진 것이다. 그리고는 특구를 기술, 관리, 지식, 대외개방의 창구로 규정하고, ‘한 지역이 먼저 부유해져야 한다’는 ‘선부론(先富論)’의 초기 아이디어를 밝혔다. 선부론은 개혁개방이 추진되는 광동성 등 연안에서 먼저 부를 이루고, 이후 점차 중국 내륙으로 부를 확대해 나간다는 뜻이다. 개혁개방으로 인한 지역적 경제 격차를 인정한 셈이기도 하지만, 이는 개혁개방 초기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결국 장기적으로는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이라 주장이다. 

 

이 시찰 후 1984년 3~4월, 중앙이 14개 연해 도시를 추가로 개방하기로 결정하는 등 개방 정책이 가속화되었다. 1984년의 남순강화는 특구 정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선부론 先富論.jpg

 

 

남순강화는 1992년 한 번 더 진행된다. 당시 덩샤오핑의 나이는 87세의 고령이었다. 이때의 남행은 8년전의 것과는 배경이 다르다. 1989년 천안문 사태 후 개혁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를 재점화한 승부수였다. 반면 1984년 방문은 개혁 초기 불씨를 지피고 확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개혁개방의 상징과도 같은 선전

 

 

시진핑 주석은 두2012년과 2020년, 두 차례 리엔화샨 공원의 덩샤오핑 동상을 찾아 추도하였다. 특히 2020년은 선전 경제특구 지정 40주년을 맞아 방문한 것이라 의미가 컸다. 여기서 시 주석은  개혁개방의 성과를 기념하고, 새로운 시대에도 이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덩샤오핑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선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선전 방문 시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유다. 개혁개방 초기 최초의 경제 특구로 지정된 선전은 이에 보답하듯, 발전 성과를 보이며 덩샤오핑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선전을 방문한다면 한 번쯤 리엔화샨 공원에 들러 개혁개방의 아버지라 불리는 덩샤오핑을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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