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에게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창밖에는 온갖 꽃들과 신록으로 화려하지만, 달력이 보여주는 스케줄은 나로 하여금 봄을 체감하지 못하게 만들어 겨울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차갑고 어두운 겨울 같은 학업의 중압감을 잠시나마 내려놓고자 홍콩의 서쪽 끝, 유서 깊은 섬 청차우(長洲 Cheung Chau Island)로 혼자만의 취재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정은 홍콩의 자연을 몸소 체험하며 남은 수험생활을 버텨낼 에너지를 얻기 위한 스스로의 처방전이었다.


청차우로 향하는 여정은 센트럴 5번 부두(Central Ferry Pier 5)에서 시작되었다. 집에서 지하철(MTR)을 타고 홍콩역에 내려 부두까지 걷는 동안, 빌딩 숲 사이로 부는 바닷바람이 여행의 설렘을 깨워주었다. 부두에서는 고속 페리(Fast Ferry)와 일반 페리(Ordinary Ferry)중 선택할 수 있었다. 고속 페리는 약 35분이면 도착하지만(평일 기준 28.1홍콩달러), 나는 60분 정도 소요되는 일반 페리(평일 기준 14.2홍콩달러)의 2층 데크에 앉아 바다를 더 오래 눈에 담기로 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요금이 조금 더 오르지만, 평일 오전에 떠난 덕분에 한적한 바다를 만끽할 수 있었다.
약 1시간의 항해 끝에 도착한 청차우는 자동차가 없는 섬답게 자전거 소리와 사람들의 활기찬 대화 소리만이 가득했다.

청차우 부두에서 내려 서쪽 해안 산책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어가면, 이 섬의 하이라이트인 청포차이 동굴(Cheung Po Tsai Cave 張保仔洞)에 다다른다. 18세기 전설적인 해적 청포차이가 보물을 숨겼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비집고 들어갈 만한 좁고 가파른 바위 틈새가 마치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통로처럼 보였다. 동행이 없는 혼자만의 탐험이었기에 좁은 입구로 들어가는 것은 긴장을 배가시켰다. 스마트폰 손전등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발을 들인 동굴 내부는 서늘하고 습한 공기가 가득했다. 거대한 바위들이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로 같은 동굴을 걸어가면서, 300년 전 이곳에 숨어들어 바다를 응시했을 해적들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당시 선원들은 보물을 찾아 나서는 긴 항해 기간 동안 남의 배를 약탈하는 해적질도 겸했다는 사실을 어디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보물을 찾아낸 그들은 정말로 이곳에 많은 보물들을 숨겨 놓았을까? 그리고 그 보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보물들은 그들의 모험과 고난을 보상해 줄 정도로 충분했을까? 좁고 어두운 굴을 걸어 나오며 여러 의문들이 떠올랐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해적들의 삶과 사라져 버린 보물들을 헤아리면서 그들 역시 최선을 다해서 살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다시 한번 동굴을 돌아보게 되었다. 긴 어둠을 통과해 출구에서 다시 마주한 눈부신 햇살은, 지금 나를 무겁게 내리누르는 고3이라는 이 시간 역시 끝나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긴 동굴 탐험 뒤에 느끼는 허기는 청차우의 유명한 길거리 음식들이 달래 주었다. 다시 항구 쪽으로 걸어 나오며 이 섬에서 꼭 맛봐야 한다는 별미들을 찾아 나섰다. 먼저 줄을 서서 사 먹은 대형 커리 어묵(Giant Curry Fish Balls)은 한 꼬치에 10~15홍콩달러 정도로 저렴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이어 디저트로 선택한 망고 찹쌀떡(Mango Mochi)은 얇은 피 속에 생망고가 큼직하게 들어있어(약 18홍콩달러) 입안 가득 상큼함을 선사했다. 바닷가 벤치에 앉아 달콤한 찹쌀떡을 베어 물며 바라본 청차우의 전경은 자연이 내게 베풀어 준 어떤 보물보다 값진 선물이자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가족도 친구도 동행하지 않고 혼자 청차우 섬으로 떠났던 봄 나들이는 단순한 야외 소풍을 넘어,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한 앞으로의 나의 진로를 고민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홀로 걷는 길은 쓸쓸하기도 했지만, 인생의 새로운 장을 준비하는 현재의 나에게는 마음의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무심하게 살고 있던 홍콩이라는 섬의 독특한 지형과 역사를 다시 한번 조명해보는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에너지를 얻었다. 내가 찾는 진짜 보물은 동굴 속이 아니라, 이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나 자신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섬을 떠나는 페리에 올랐다.
글/사진 강우준 학생기자(KIS 학생기자단)
사진 엑스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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