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집과 교회를 매일 걸어 다닙니다. 버스를 타도 한 정거장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거장에서 내린 뒤 교회까지 걷는 거리를 생각하면 처음부터 걸어 다니는 쪽이 더 빠릅니다. MTR도 비슷하고요. 교회와 집을 오가는 길에 많은 가게가 있습니다만, 유독 제 눈에 띄는 한 커피집이 있습니다. 많은 집 중 눈에 띄는 이유는, 커피집 앞에 작은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그 집 앞을 지나갈 때쯤이면 언제나 같은 시간에 할아버지 한 분이 제 앞을 걸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천문대 길 언덕을 올라가는데, 일반인 보폭의 1/3 수준으로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아마도 뇌졸중 후유증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한 걸음씩 옮기는 모습을 보며 감동받습니다. 테이블이 놓인 평범한 커피집이, 같은 시간 만나는 할아버지와 연결되며 제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마치 연극의 장면과 소품처럼요.
교회 사역을 마치고 집에 갈 때도 비슷한 일을 경험합니다. 커피집 앞에 놓인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밝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집에 갑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런 마음이 듭니다.
‘나도 저기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길에 다니는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입니다. 그저 커피 한 잔 마시는 일일 뿐이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실제로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바쁘기도 하고, 자꾸 ‘다음에 하자’라며 미루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룸이 동경이 되고, 동경은 이윽고 하나의 성취 목표가 되어버립니다. 우리 삶에 이런 일들이 종종 있지요. 유튜브나 방송에서 맛집이 소개되면 한 번 가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을 찾아가 먹음으로 소소한 행복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제게는 지나다니며 보는 커피집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해가 가기 전 꼭 이 일을 이루고 말겠어’라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찾아갔습니다.
여느 커피집과 비슷한 가격에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차 한잔을 주문하고, 그렇게 원했던 자리- 밖에 놓인 테이블에 앉습니다. ‘다 이루었다.’ 혼자 만족하며 가만히 길에 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풍경이 보입니다. 아, 이곳에서는 이렇게 보이는구나. 저 앞의 회색 건물이 저렇게 높은지 몰랐습니다. 구석에 저런 건물도 있었구나. 저 길을 내가 매일 걸어 다니는구나. 내가 매일 다니는 길이 이쪽에서 보니 이렇게 보이는구나. 멍하니 앉아 주위를 관찰합니다. 같은 곳이지만, 잠깐 위치를 바꾼 것으로 다르게 보입니다. 흑백영화에 색이 입혀진 듯, 새롭게 보입니다. ‘우와. 외국에 온 것 같아’
하지만, 혼자 흐뭇해하며 고요히 생각하는 저의 행복은 10분도 되지 않아 깨지고 말았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담배 연기를 뿜어냅니다. 콜록대며 연기를 견디지 못하고, 실내로 도망치듯 들어옵니다. 그리고 구석에 자리를 잡아 저는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행은 여행일 뿐. 다시 삶으로 돌아와야죠. 잠깐의 일탈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은 또다시 살아갈 힘을 줍니다. 저의 작은 다짐과 도전. 용기. 그리고 현실로의 복귀는 불과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일어났을 뿐이지만, 이 글을 쓸 힘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이와 같은 일들의 연속입니다. 2025년과 2026년은, 실은 아무 변화 없는 날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흘러가는 시간을 구분하며 한 해를 매듭짓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은 변화를 통해 같은 시간이지만 다른 풍경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지혜일 것입니다. 시간을 구분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결심도 하고. 용기도 내고. 그래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게 하죠. 작은 일이라도 지금까지 하지 못한 것을 떠올리며 새롭게 결심하고. 그것을 하며 성취감과 행복을 얻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써 내려가는 당신의 이야기’로 설명합니다. 구약성경의 전도서 말씀입니다.
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구약성경 전도서 3장 11-13절)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 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해야 하는 것은,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도, 살아가며 최선을 다해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합니다.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기뻐합니다.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음이, 일 할 수 있음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생각하고 겸손하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삶이 될 때, 우리 인생이 아름답게 됨을 알려주십니다.
새로운 한 해가 되었습니다. 같은 곳에 있지만, 다른 시간을 살아갑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 새로운 시선으로 새롭게 결심하고 작은 행복을 찾으며 여러분의 이야기를 멋지게 써 가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올 한 해도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께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와 홍콩우리교회는 언제나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