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홍콩우리교회 서 현 목사
우리는 모두 친절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친절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바로, 시간이라는 조건입니다. 이것은 심리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1970년, 프린스턴 대학의 심리학자 존 달리와 대니얼 뱃슨은 한 가지 실험을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착한 마음에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라는 실험입니다. 소위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리는 비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실험입니다. 이 비유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이라고 해도 한 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누가복음 10장 25-37절에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찾아와서 질문합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하시자, “그럼,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입니다.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납니다. 구타당해 죽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를 피해 지나갑니다. 오히려 하나님도 모르고 멸시당하는 사마리아 사람이 자기 재산을 사용하면서까지 강도 당한 사람을 치료하고 돕습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에게 묻습니다. “이 세 사람 중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실험 대상은, 목회 준비를 하는 프린스턴 대학의 신학생들이었습니다. 실험 방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부랑자를 준비시킨다. 2)신학생이 다가가면 부랑자는 기침을 한다. 3)신학생이 “괜찮아요?”라고 하면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 “가만히 몇 분 앉아 있으면 괜찮아 질 겁니다. 가던 길 가세요” 이 때 몇 가지 변수를 두고 47명의 학생을 3일 동안 실험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여러 변수 중,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에 영향을 미친 유일한 조건은 ‘시간적 여유’였습니다. 특별한 약속이 없고 다음 강의까지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도왔습니다. 심지어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내용으로 과제 발표를 준비하던 학생도, 시간이 없으면 돕지 않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 실험 결과에 신학생들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이정모. 참조)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려면, 일단 넉넉한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실험의 결과입니다. 물론, 바쁘다는 것이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신을 변명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넉넉한 시간을 내기 어렵습니다. 직장에서 늦게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옵니다. 집에 와도 쉴 수 있는 여유는 없습니다. 가족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혼자 살아도, 빨래며 가사를 해야 합니다. 하루하루 정말 바쁘고 지치게 살아갑니다. 홍콩의 거리를 걷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릅니다. 출퇴근 전철과 버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나마 시간이 나면 그 시간을 쪼개어 자기 개발에 힘씁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하는데 점점 친절이 사라지고 삭막해짐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요? 우리 모두 시간의 여유 없이 바쁘게 사는 대가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성경은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라고 말씀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문제인데, 어떻게 시간을 냅니까?” 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질문을 아시고, 하나님은 쉬는 것을 아예 법으로 만드셨습니다. “6일 동안 일하고 7일 째는 쉬어라”라고 말입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열 가지 계명 중, 무려 네 번째 계명에 넣으실 정도로 강조하신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쉬지 못하는 것을, 쉴 수 없음을 하나님이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계속 분주하게 시간 여유 없이 살아가다보면 마음과 몸이 망가집니다. 친절은 사라지고 갈등과 분노와 대립과 감정이 폭발하는 사회가 되고 맙니다. 오래 전부터 근로자의 근로 시간을 보장받기 위해 힘써온 이유, 사람들이 워라벨을 주장하는 이유는 결국 친절할 수 있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물리적인 시간만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근본적으로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바쁘신 분인데도 여유 있게 지내는 분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 보아도 한가한 사람인데 헛되게 시간을 쓰면서 항상 바쁘다고 하는 분도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니 마음에 여유가 없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에 익숙해지니, 물리적으로 시간이 날 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합니다. 유튜브나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맵니다. 그러다 결국 간신히 생긴 시간을 헛되이 보냅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쉬신 하루를 기억하고 주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바쁘고 분주한 일상을 끊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녀도 오히려 더 바쁘고 분주합니다. 여러 봉사를 해야 하고, 일을 해야 하고, 모임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것에 지쳐 교회 생활을 쉬고 싶다는 분도 많이 만났습니다. 예배만 드리고 빨리 돌아가시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교회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교회입니다. 예배 끝나고 다같이 친교실에서 교제를 합니다. 간단한 다과와 차를 나누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삶을 나눕니다. 누구 할 것 없이 다 같이 준비하고, 다 같이 나눕니다. 물론 바쁘신 분은 먼저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서로에 대한 안부와 인사. 그리고 마음의 여유는 잊지 않기를 원하며 서로를 격려합니다. 주일 오후 2시에 모여 넉넉한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드리고 서로 교제하는 것으로 주일을 보냅니다. 그것이 한 주를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긴장을 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 힘을 얻는 공동체.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서로 기도하는 공동체. 생일이 있으면 축하해주고. 어른부터 학생들까지 같이 찬양 드리는 공동체. 교회 이름 그대로 ‘우리’로 지내는 것이 좋은 모임. 그것이 지금 우리교회가 모이는 모임의 모습입니다.
친절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실험 결과가 알려줍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시간을 내야 시간의 여유를 만들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주간 바쁘게 사신 여러분. 물리적으로 시간을 한번 내어보시겠습니까? 시간이 없으셔도 마음에 여유를 잠깐 가져보시겠습니까?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친절하고 인간답게 사는 모습을 생각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주일 오후, 여유 있게 집을 나서며 우리교회를 방문해주셔도 좋겠지요. 언제나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