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갈등 속에 살아갑니다. 그 갈등을 요약하면 이것입니다. ‘지금’ 보상을 받을 것인가? ‘나중에’ 보상을 받을 것인가? 즉, ‘지금’과 ‘나중’의 싸움입니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데이비드 이글먼/김승욱 역)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사람들이 집을 샀습니다. 대출받은 사람들의 80%가 변동금리였습니다. 이자가 오를 것은 ‘나중’입니다. ‘지금 당장 원한다’는 마음을 이용한 상품입니다. 그 대가는 비쌌습니다. 변동금리나 이자가 올랐습니다.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높아진 금리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100만 채의 집을 압류당했습니다. 엄청난 경제 손실과 충격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지금 구입하지 않으면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라는 광고가 가득합니다. 5만 원 짜리를 3만 원에 샀다고 좋아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아예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업은 ‘지금’ 지갑을 열어야 판매할 수 있음을 잘 압니다. 다양한 전략으로 소비자를 공략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는 말은 아주 특별한 힘을 갖습니다. 만족을 뒤로 미루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학생들이 공부보다 게임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공부는 ‘나중에’ 보상을 얻지만, 게임은 ‘지금’ 보상을 얻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즉각적인 보상을 선택할 때 우리의 뇌 중 감정에 관여하는 부위가 크게 활성화됩니다. 반대로 미래에 더 높은 보상을 받는 선택을 할 때 고등 인지기능과 신중한 사고를 담당하는 부위가 활성화됩니다. 계속 ‘지금’ 보상을 얻는 것만 따라가면, 깊게 사고하지 못하고 감각적으로 살아갑니다. 인지기능이 떨어집니다. ‘지금’에만 만족하다 보면 우리의 뇌가 망가집니다. 세상은 그것을 노립니다. 더 쉽게 지갑을 열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도 ‘지금’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가 있으니까요. 더 극단적으로 술, 도박, 마약 등이 ‘지금’ 우리를 만족시키기 위해 유혹합니다. 반면, ‘나중에’ 더 좋은 보상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성숙합니다. 실수가 적습니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악마는 먼 미래에 우리 영혼을 가져가는 대가로 지금 우리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활동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배고픈 상태입니다. 이때 사탄이 찾아와 유혹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복음 4:3) 자기가 돌을 떡으로 만들어 갖다주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배고프지? 너 할 수 있잖아?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 지금 배를 채울 수 있잖아?”라는 유혹입니다. 가장 힘들 때. 즉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유혹은 얼마나 강렬합니까? 이기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태복음 4:4)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 당장 굶주린 배를 채우며 만족하는 삶이 전부가 아님을. 하나님 나라가 있고, 그것이 더 큰 만족과 보상임을 말씀하십니다. 동물처럼 감각적으로 ‘지금’ 당장 반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신중하고 깊이 생각하며 사는 법을 알려주십니다. 악마의 유혹을 이김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내세와 천국을 오해합니다. ‘현재를 무시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팔아먹는 사기 아닌가?’ 의심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내세와 천국은, 보상이 ‘나중에’ 이루어지지만, 분명히 이루어질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으로 ‘지금’만의 보상을 꿈꾸며 비이성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하며 살도록 돕습니다. ‘지금’만을 생각하도록 하는 세상에 저항하며 ‘나중’도 있음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삶에 균형을 잡도록 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내세의 유익입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처럼 지금 배를 채우라는 유혹을 이기며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교회는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지금’에 만족하며 살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나중’도 있음을 알고 유혹을 이기며 살기 원하십니까?
우리는 언제나 ‘지금’과 ‘나중’의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의 본질을 잘 기억하고,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도, 우리교회 성도들도 여러분을 응원하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번 한 주도 평안하십시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