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콩의 대형 스타 한 명이 또 숨졌다. 작년 2003 한 해는 유난히 일이 많았다. 연초부터 불어 닥친 Sars가 1년 내내 홍콩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루 말 할 수 없는 정신적 물리적 고통에 시달리게 했다. 연말쯤 극복된 사스와 불황에 시달리던 홍콩 경제 회복설도 고개를 서서히 들고 있어 한숨 돌리나 했더니, 새해를 이틀 앞두고 갑작스런 사건이 연말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홍콩, 대만, 중국 등 중화권에서는 여걸의 이미지로 굳어진 매염방(梅艶芳, Anita Mui)은 1963년생이다. 어려서 아버지가 일찍 사망해서 캔토니스 오페라단에 있던 어머니 영향으로 4살 때부터 언니와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며 그 대가로 집안을 이끌어 나가는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게 된다.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중학교도 졸업을 못했다. “난 변호사나 경찰이 되어 정의를 지키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서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죠. 당시 내 상황에서 내가 가장 자신 있고 또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 길뿐이었어요. 무대에 서는 느낌은 아주 포근해서 마치 고향에 돌아간 느낌이 들지요.”라고 생전에 응했던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무대에서 자랐던 매염방이 연예계에 본격적으로 데뷔하게 된 것은 1982년 19살의 나이에 신인가요제에서 우승하면서부터. 그 후로 특유의 프로 근성으로 최고 정상에 오른다. 21년간 가요계 생활에서 40여장의 음반을 냈고, 94년에 이미 음반판매 천만 장을 돌파했으며, 3백여 회의 콘서트...수많은 히트곡 등 많은 진기록을 세웠다. 그녀는 유행의 첨단을 걷고, 늘 변화하는 이미지로 팬들에 뇌리에 카멜레온 같은 변신의 달인으로 각인 됐다.
대다수의 홍콩스타들이 그렇듯이 그녀도 노래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TV연속극과 영화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맡는 엔터테이너로서 빛을 발했다. 20년 지기인 장국영과 열연한 연지구(臙脂口, 1988년)로 홍콩과 대만의 영화상 여주주연상을 받았을 만큼 영화배우로도 성공했다. 전성기였던 80~90년에 주성치, 성룡, 주윤발, 장국영 등 스타들과 호흡을 함께 했다. 최근작인 ‘남자 40세(男人四十, 2002년)’에서 장학우의 부인역으로 한층 원숙한 내면의 연기를 보여 높은 평을 받았다. 그녀는 장예모 감독의 작품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혹 그 작품에서 막 물이 오르기 시작한 명연기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사생활은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선 사랑했던 남자들과는 이별이란 결말을 맺었고, 또 많은 남자들과의 스캔들 등 부정적인 이미지에 시달렸다. 그 중에서 그녀가 ‘참 좋은 남자’로 형용한 유덕화와의 핑크빛 염문은 그녀가 죽기 전까지 이어졌다. 20년간 돈독한 우정을 쌓아왔던 장국영의 작년 4월 1일 죽음으로 깊은 슬픔을 맛보기도 했다.
노래와 연기만큼 자선행사에도 활약이 컸다. 연예활동 연배만큼이나 각종 자선행사에서 앞서서 일했다. 작년 5월 사스 극복을 위한 ‘1:99 콘서트’를 주재해 200만불을 성금을 전달했다. 작년 가을쯤인가 파파라치들에 의해 암이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급기야 그녀는 작년 9월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궁경암 양성임을 밝히고 치료를 받고 있으며 건강을 뒤 찾을 것을 약속했었다. 사실 3년 전 암 선고받았는데 바쁜 일정 때문에 화학치료를 미뤄왔었다고 할 만큼 일 욕심이 많았으며, 심지어 그녀가 암임을 직접 선언하고도 여러 가지 일을 몰아쳐 하며 자신을 마취시켜 병을 잊었다고 그의 측근은 회고했다. 작년 11월 6일부터는 8회의 콘서트를 가졌으며, 일본으로 건너가 광고도 촬영하는 등 그 어느 때 보다 왕성한 활동을 했다.
]]2]]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프로그램에서, 웹사이트에서, 매체를 통해서 팬들이나 동료, 후배, 제자들은 홍콩의 연예계에서 그녀의 위치가 얼마나 높고 컸는지 그녀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회고했다. 한 음악평론가는 로만(羅文), 장국영과 매염방의 잇단 죽음으로 홍콩 가요계 전성기의 한막이 내려졌으며, 이들처럼 무대를 휘어잡는 파워풀하고 카리스마적인 대형 스타들은 앞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매염방은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대중 앞에서 늙어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아요, 더 나이 먹게 되면 대중 앞에서 사라져 숨어 지내고 싶어요.” 라고 했다. 그 말처럼 2003년 12월 30일 새벽 2시 50분, 아직은 너무 젊은 40의 나이에 많은 친구들의 축복을 받으며 웃으며 떠나갔고, HMV 등 음반점에는 특집코너를 꾸며 그녀를 기렸다. 무대에서 자라서 무대에서 진 홍콩 연예계의 큰 별 매염방은 노래와 연기로 팬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