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20억달러(약 2조31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시장을 깜짝 놀래켰던 보석회사 저우다푸(周大福). IPO 성공으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으며 올해 86세인 정위통 저우다푸 명예회장 겸 최대주주(사진)도 홍콩 재계의 확실한 거물로 떠올랐다.
이번 IPO를 통해 정위통 일가는 총 160억달러의 자산을 보유,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부자 지위를 확고히 하게됐다.
정위통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 종류는 뉴욕 칼라일호텔, 중국 페라리 딜러 체인 등으로 보석만큼이나 호화롭다.
1925년에 태어난 정위통은 15세의 어린 나이였던 1940년부터 보석 사업에 투신했다. 하지만 그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준 저우다푸는 직접 만든 회사는 아니다.
저우다푸는 본래 친구인 저우츠위엔이 만든 기업으로 정위통이 저우다푸의 경영에 뛰어든 것은 그의 딸과 1942년 결혼하면서부터다. 이후 정위통은 1946년 홍콩에 저우다푸 매장을 열면서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제레미 리치데일 보석 제조업자는 "홍콩에서 저우다푸의 사업은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면서 "저우다푸는 특히 돈을 버는 사업가들의 아내를 타깃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중국 문화에서 금은 매우 중요한 귀금속이다.
부의 축적 수단으로도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돌, 결혼 등의 행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선물이 금이다.
선물용 금으로는 품질이 높은 제품이 선호된다.
저우다푸는 그 수요를 노렸다. 순도 999.9의 24캐럿 순금 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나선 것이다.
그가 부를 축적한 수단은 금뿐만은 아니었다. 지난 1950~1960년대 초 주변의 권유로 시작한 부동산 투자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특히 그는 1989년 톈안먼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중국 시장 개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베팅, 부동산 투자사 신세계발전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은 높은 통찰력이었다. 다만 1990년대 초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면서 신세계발전의 주가가 97% 가량 폭락, 대부분의 자산을 매각하는 등 고전하기도 했다.
손실을 상쇄해준 것은 저우다푸였다.
1998년에 처음으로 중국 매장을 연 저우다푸는 2010년에 1000번째, 지난해 9월 1500번째 매장을 열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지난 3년간 매출만도 47% 급증했다.
어마어마한 재산과는 다르게 그는 소탈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점심시간에는 견습생때 그랬듯 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수다를 떨며 평범한 중국 전통요리를 먹는 편. 맞춤형 정장에 가장 좋아하는 신발은 나이키 스니커즈다.
하지만 일에 있어선 철저하다.
정위통의 친구인 찰스호 싱타오뉴스코프 회장은 지난 2009년 그와 상하이에서 만나 한나절을 꼬박 자사 지점 상황파악에 열중했던 경험을 회상하면서 "정위통은 여전히 회사의 재고상태와 보석가격을 알고 있는 꼼꼼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