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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금 홍콩에는 ‘저렇게 까지 입어야하나?’라는 혹평에서 ‘저렇게도 입을 수 있구나!!’라는 칭송을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패션계의 펑크’, ‘영국 패션계의 살아있는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어 라이프 인 패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패션에 대해 잘 모르는 기자도 전시회장에 가서 의상과 장신구 작품들을 보면서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 현장을 여러분께 소개한다.
‘수요저널’ 12월 24일자에 실린 전시회 일정을 참조하고 기자는 1월 3일 전시회를 보러 아티스트리(ARTISTREE)로 출발하였다. (수요저널에 나온 웹 사이트 주소는 wivian으로 오타가 나 있었다. 독자께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다. 실제 주소는 vivianwestwood.com.hk 이다.) 쿼리베이(Quarry Bay) MTR 역에서 내려 A출구로 나가면 좌측에 데본하우스(Devon House)라는 큰 빌딩이 보인다. 실제로 전시회가 열리는 콘월하우스(Cornwall House) 건물로 직접 가는 것 보다 데본하우스 건물 안쪽에 연결된 통로로 전시회장을 가면 더 편하게 갈 수 있다.
전시회 장소에 도착하면 입장하기 전 부스 앞에서 이번 전시회의 위치 그리고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약력 및 디자인 역사가 설명된 책자를 나눠준다. 이것을 받고 입장하면 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전시회에는 한국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가 세팅되어 있는 오디오 설명기가 준비돼있기 때문에 외국어를 못하는 한국 교민들도 편하게 전시회를 즐길 수 있다.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가면 1970년대부터 2000년도 후반까지 그녀가 직접 디자인하고 전 세계 언론의 유명세를 탓던 화제의 작품들을 연도별로 감상할 수 있다. 매장 직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진이나 영상 매체를 통해 바로 코앞에서 유명한 디자이너의 작품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기분은 색달랐다.
전시회장에서는 그녀의 패션철학이 담긴 내레이션을 삽입한 패션쇼와 그녀의 작업과정을 다룬 영상물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옷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패션쇼 목적으로 디자인한 다양한 장신구들도 선보이고 있다. 그 중 가장 관객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바로 20센티가 넘는 높은 보라색 가죽 플랫폼 슈즈다.
이 보라색 하이힐이 관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이유가 있는데 패션쇼 무대에서 완벽한 캣워크를 선보이며 워킹의 천재라 불리는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을 1993년 가을 겨울 패션쇼 무대에서 넘어지게 만든 바로 악명 높은 하이힐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각종 뉴스 및 화제의 사건으로 전 세계 여론에 언급된 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고 무대 위의 실수를 웃으며 잘 대처한 모델 ‘나오미 캠벨’의 주가도 더욱 상승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30년간 작업해 온 그녀의 2백 여벌의 옷들과 소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이며 전시회장을 나서면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제작한 한정판 티셔츠, 메모 수첩, 핸드폰 줄, 목걸이 및 팔찌 등 다양한 제품들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입 할 수 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 펑크패션의 선구자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미니스커트의 창시자 마리콴트 이후 영국디자이너로서 두 번째로 파리에서 패션쇼를 개최한 진보적인 인물이다. 70년 후반 이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간 펑크 패션은 그녀의 명성을 상승시켰고 계속해서 파리패션쇼에 참가하는 것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패션에 대한 기여도가 크게 인정되어 1990년, 1991년 두 차례나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 상을 수여하였다. 또한 1992년에는 영국 여왕의 훈장을 받기도 하였는데, 당시 시상을 위해 버킹햄궁에 나타난 그녀는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속이 비치는 블라우스와 치마를 매치한 의상으로 참석하여 전 세계 언론에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사람들은 그녀가 추구하는 반항아적인 펑크패션 철학의 한 면을 읽을 수 있었다.
비비안은 1941년 맨체스터 근처 더비셔에서 태어나 16살 때 런던으로 이동하였다. 그녀의 예술적 잠재력은 하로우 아트 스쿨에 입학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초등학교 미술 선생님의 경력을 갖고 있는 그녀는 5살 연하의, 두 번째 남편 Malcolm McLaren을 만나면서부터 패션영역에 입문하였다.
현재 전 세계 30개 나라에 걸쳐 550개의 샵을 소유한 그녀는 총 거래액이 연 2천만 파운드(약3백8십6억 원)나 되는 성공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패션은 항상 한발 앞선, 어찌 보면 평범한 이에겐 그녀의 패션이 어렵기도 하지만, 아름답고 화려하기 보다는 창조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어 기존에 정의되었던 의상이라는 개념을 예술적 가치로 향상시키는 데 일조 한 디자이너로서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마침내 그녀의 패션철학은 패션계의 발전 공로로 인정되어, 2006 새해,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남작 (Dame)’이라는 훈장을 수여받아 ‘남작 비비안 웨스트우드(Dame Vivienne Westwood)’라 불리게 된다. 이는 매년 여왕이 여러 분야의 공로자에게 수여하는 훈장(O. B. E.-Order of the British Empire)으로 비비안이 공식적인 패션계의 선구자로 인정된 것이다. 전시회 일정 및 자세한 내용은 http://www.viviennewestwood.com.hk/common/index.htm 참조
정수태 리포터
(ivanjung@wednesdayjourna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