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제조 의사 없다’ 입장도 동시 천명 --양면전략 주목
북한이 지난 10일 정부 성명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다고 전격, 선언하고 나서자 정부가 관계장관 회의를 긴급, 소집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국제사회도 ‘탈퇴 선언’ 취소를 요구하고 나서는 등 북핵 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미국의 CBS와 MSNBC, ABC 및 영국 BBC방송 등 주요 언론들은 북한의 NPT 탈퇴 선언 직후 일제히 이를 뉴스 속보로 보도하는 등 ‘북핵 사태’가 한층 숨가쁜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BBC를 비롯한 해외 언론들은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의 면담 제의를 수용하는 등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고 북한의 NPT 탈퇴 선언이 나옴으로써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한층 고조될 것으로 내다봤다.
ABC는 북한이 지난 93년에도 NPT를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가 이를 유예하고 미국과의 대화에 착수한 적이 있다고 지적하고 북한의 NPT탈퇴선언은 북한이 핵무기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거나 협박전술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보장이라는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압력을 넣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NPT에서 탈퇴하고 핵 안전조치협정(Safe guards Agreement) 준수 거부를 선언한 배경은 일단 미국을 겨냥해 단계적으로 대응 수위를 높여 나가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미국의 '선 핵개발 계획 포기' 요구를 거부하면서 북미(朝美)간 불가침조약 체결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북한은 특히 미국이 지난해 11월1일부로 대북 중유지원을 중단하자 핵동결 해제 및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한 데 이어 동결된 핵시설의 봉인 해제에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원을 추방하는 등 잇달은 강경 조치로 맞서왔다. 10일 발표된 NPT 탈퇴 선언도 북한이 이같은 수순에 따라 대응 수위를 높여 가면서 미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비록 대화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의 태도가 보상이나 협상의 의지가 약하다고 판단, 강공책을 구사함으로써 최대한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벼랑끝 전술'로 이해된다. 특히 전력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의 중유제공 지원 중단까지 겹쳐 전례 없는 혹한을 견뎌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전력문제가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는 만큼 전력문제를 이슈화, 미국측이 협상에 나설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NPT 탈퇴 선언 중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다"고 강조한 점을 들어 이를 ‘미국과의 대화를 촉구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날 성명이 "미국이 우리(북)에 대한 적대시 압살 정책을 그만두고 핵위협을 걷어치운다면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조미(朝美) 사이에 별도 검증을 통하여 증명해 보일 수도 있다"고 강조한 것은 북한의 대화 '의중'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는 북한이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그동안 미국이 요구해온 '검증가능한 방법'도 수용할 뜻이 있음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미국이 이라크전을 수행하기 이전에 핵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즉 NPT 탈퇴와 함께 북한의 입장을 명백히 함으로써 핵문제의 '공'을 미국에 넘겼다는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이에 대해 "북한의 이번 조치는 미국의 태도에 강력히 반발, 위기를 고조시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미국과 KEDO, 국제사회에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 제조 의사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동안 국제사회가 요구해온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포기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또 “미국의 중유공급이 재개된다면 NPT 탈퇴를 재검토 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이번 조치가 위기를 고조시키기 보다는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반영했음을 보여준다.
우리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NPT 탈퇴 선언에 대해 "북한은 미국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정부성명에 강경과 온건 두 가지 내용을 모두 담은 것으로 본다"며 "공식적으로 핵포기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핵무기 제조 의사가 없음을 밝히면서 검증을 언급한 것은 미국이 그동안 요구해 온 내용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미국이 대화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NPT 탈퇴라는 강수도 함께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핵확산금지조약(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NPT)은 핵무기의 확산을 막고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미국과 구 소련이 토대를 마련, 유엔총회의 의결을 거쳐 지난 70년 3월5일 발효된 국제조약이다. 이 조약의 주된 목적은 핵보유국(미.중.러.프.영 등 5개국)이 핵무기 및 관련 장비와 기술을 핵비보유국에 이양하는 것과 핵비보유국이 새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 조약에는 지난해 2월 현재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 쿠바 등을 제외하고 한국(75년4월23일 가입), 북한(85년12월12일 가입) 등을 포함해 전세계 187개국이 가입해 있다.
NPT는 핵무기확산금지 원칙의 이행 여부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3조4항에 조약의 최초 발효일 이후 18개월 이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안전조치협정(safeguards agreement)을 체결, 발효시키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북한은 1985년 12월 구 소련의 설득으로 NPT에 가입했으며 지난 92년 1월 IAEA와 전면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하고 IAEA의 사찰을 받았지만 IAEA가 북한의 핵개발 실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93년 3월12일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중앙인민위원회 제9기 7차 회의를 열어 NPT 탈퇴를 결정, 북핵 위기를 고조시켰다. 북한은 그러나 탈퇴 효력(3개월 후) 발생을 하루 앞둔 6월11일 미국과 가진 ‘북미 1단계 고위급회담’에서 NPT 탈퇴를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북한은 IAEA 특별사찰 요구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NPT 탈퇴를 유보한 특수 상황(혹은 지위)'을 내세워 특권을 요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