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신문학상 수상작) 가작 - 글이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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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문학상 수상작) 가작 - 글이 쓰고 싶다

글 /이정애 몇 주 전 대학원 숙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신문 갈피에 끼어 들어온 ‘동신 문학상 공모’를 보았다. 갑자기 아름다운 우리글 ‘한글’로 글 쓰고 싶다는 욕구가 막 일었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 온통 영어로 수업을 듣고 영어로 리포트를 써야 하는 곤욕을 그것도 대학을 졸업한지 거의 20년 만에 치르고 있는 터라 더했을 것이다. 내가 한국말은 읽고 쓰고 말하기를 얼마나 잘하는데 말이다. 어쨌든 바쁜 일들 때문에 시간을 못 내다 어젯밤 박완서 할머니의 수필집 “두부” 중에서 ‘복수로서의 글쓰기’ 부분을 읽다가 정말 글 쓰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빈약한 상상력 때문에 소설은 못 쓰더라도 수필은 정말 써 보고 싶었다. 그래 오늘 아침엔 글 쓰고 싶은 욕구를 한번 토해내 볼까. 내가 잘하는 한국말로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지. 내가 문학소녀였다는 말을 하면 나를 아는(어쩌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까무라칠거다. 내가 나의 모교인 연세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도 중학교 때부터 거의 다 외우다시피한 윤동주 시집 때문이란 걸 알면 말이다. 윤동주 시집에는 ‘동주 형’(시집 후문에서 그의 사촌 동생이 부른 것처럼 젊은 날에 간 그를 나도 그렇게 불러 보고 싶다)이 연세대 교정에서 찍은 사진과 윤동주 시비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외국생활이 10년이 넘으니까 아이들은 거의 외국에서 자랐다. 그래도 한국말은 물론 잘 한다. 감정표현 특히 욕은 한국말로 하면 더 시원하게 느끼는 것 같다. 엄마가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는 만큼 국어 선용에 앞장서야겠지만 정확한 한국말로 표현하면 나쁜 말도 가끔은 봐 준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잘못 알아 들을까봐, 그리고 그걸 보고 내가 쇼크 받을까봐 아이들에게 어려운 말은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하면서 산다. 얼마 전에도 난 아이들과 아침부터 식사하면서 V채널을 틀어놓고 있는 아이들에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문화적 획일주의’야! 그런데 너희들도 그게 심해. 좋아하는 음악, 영화 다 비슷하잖아. 그리고 그게 다 미국식 상업주의 문화 아냐. 그래도 나는 너희들 좋아하는 거에 관심을 가지려고 여름 방학 때 힙합 댄스도 같이 배우고 그랬잖아. 너희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 봤어? 그리고 엄만 한국어 같이 소수민족의 언어를 가르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그런 소수민족의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정말 수준 높은 사람들이야”라고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토해냈다. 아이들은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줄줄이 설명을 늘어놓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서둘러 학교에 갔다. 난 엄마의 잔소리는 곧 국어시간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아이들이 고마워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잔소리를 들을 땐 아이들도 정말 싫을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나간 후 집안 정리를 하며 빨래거리를 찾다 우연히 큰 아이의 가방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그 가방 속에 윤동주 시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가 나왔다. 갑자기 문화적 획일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딸을 매도한 내가 좀 미안해 졌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던 시집의 제목은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시”였다. 딸이 갖고 있는 이 시집은 이번 여름에 백두산 천지에 갔다가 내려오면서 용정에 갔다가 윤동주 시인의 모교에서 산 거였다. 윤동주 기념관에서는 사진과 기념품을 전시해 놓고 기부금도 받으면서 일종의 장학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 앞 버드나무 밑에는 윤동주 시비가 있었다. 아이들이 시비에 적힌 ‘序詩’를 읽는 동안 나는 뒤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가을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니 올 여름 방학 때 시어머님을 모시고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방을 여행했던 일이 추억처럼 찾아 든다. 단둥,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 등등. 다니면서 어머님을 모시고 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님은 가는 곳마다 감동의 연속이었다. 고향이 이북인 것도 아닌데 부러진 압록강 철교 위에서는 정말 그때 그 역사의 현장에 계셨던 것처럼 너무 감격스러워하시면서 아이들에게 B29가 날아다니던 장면이며 6.25 때의 이야기들을 해 주셨다. 그리고 누런 종이 몇 장을 접어서 가방에 넣고 다니시면서 차를 타면 꼭 오늘 우리가 어디에 갔었지 하시면서 지나온 곳들을 기록하셨다. 홍콩으로 돌아와서 나는 아이들에게 방학 숙제를 하나 내 주었다. 바로 ‘기행문 쓰기’ 그리고 “기행문은 어떻게 쓰는 거예요?”하고 묻는 아이들에게 아무 설명도 없이 유홍준 씨가 쓴 “금강산”을 던져 주었다. 언제까지 써야 되느냐는 질문에 학교 숙제하듯이 열심히 해보라고만 했다. 그리고 나는 바쁘게 한국어를 가르치러 다녔다. 그럼, 가끔 아이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엄마! 인터넷에 찾아 봤는데 백두산에 얽힌 전설이 너무 많아요. 하나만 써도 돼요?” 물론 나의 대답은 “네가 하고 싶은 데로 해!” 배움에 있어서 중요한 건 양보다 질이라고 그리고 그 질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할머니와 같이 한 여행이 아이들에게 많은 감동을 남겼으리라 믿는다. 요즘 아이들 때문에 알게 된 그래서 즐겨 부르게 된 노래가 있다. 바로 에릭 클렙튼의 “Tears in heaven(하늘나라의 눈물)”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에릭 클렙튼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다. 웹사이트를 통해서 그가 직접 노래하는 것도 보았다. “내가 만약 하늘나라에서 너를 만나면 너는 내 이름을 기억하겠니? 내가 만약 하늘나라에서 너를 만나면 너는 똑같은 모습일까?”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난 생각했다. 에릭 클렙튼에게 노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일까. 윤동주 시인에게 시가 있었던 것처럼. 그가 노래할 수 없었다면, 그가 표현할 수 없었다면 그래서 그의 마음을 같이 나누고 슬퍼할 수 없었다면 그는 어떻게 그 큰 슬픔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나도 가끔 나의 작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리고 같이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그의 노래를 들어보았다. 물론 영어로 된 노래다. 영어로 표현된 노래니 영어로 부르는 것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면서 나의 작은 욕심 하나가 생긴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노래, 한국의 시도 한국말로 읽고 부르면서 느낄 수 있도록 더 좋은 한국어 선생님이 돼야지! 그리도 40이 넘어 글을 쓰기 시작한 박완서 할머니처럼 글을 쓰고 싶을 때 글을 쓰자. 그리고 지금 내가 겪는 외로움, 힘듦, 이해할 수 없음... 그런 것들은 모두 내가 글을 쓰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해두자. 그것이 없으면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일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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